일어나, 달리러 나가자.
서술하고 싶은 느낌이 있다. 시린 공기가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내 몸에 부딪혀도, 그 공기는 그래봤자 어제의 것보다 누그러졌다는 감각. 그리하여, 어제도 이리 달릴 수 있다면 오늘도 틀림없이 그럴 수 있으리라는 예감. 그 안에서 몸은 부단히도 변화한다. 적응을 넘어 그 자신을 탄탄히 받쳐주는 것이 느껴진다. 앞도 뒤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던 몸짓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를 그제야 알게 되는 것만 같다. 그 기분으로 있자면 모든 것에 하염없이 낙관적이게 되어서는, 무엇이든 약속하고 싶은 기분이다. 세상을 줄게- 누구에게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줄게- 그렇게 지껄이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나, 그 하염없는 낙관 안에서 다시금 앞질러 달려가는 마음이 있고, 몸은 그 마음을 추적해서 다시 내 가슴에 그 생각들을 담아내려 애를 쓴다.
며칠간 하이데거를 두고 씨름했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이해하려던 것을 이해하고 싶다. 그 끝에서는 자연스레 내 한계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을 읽을 수는 없어도 무엇 하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가. 그러나 그러한 이해조차 완성하지 못하리라는 불안이 엄습할 때, 나는 내 삶의 지평과 내 언어의 끄트막에서 지쳐 쓰러질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하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하염없이 생각하고 부단히 생각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리하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생각하자. 마음은 다시금 길을 잃고 방황한다. 하나를 이해하면, 이해했다 다른 믿은 것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미끄러운 공을 하나도 빠짐없이 품에 안고 걸으려는 듯이. 그러던 그 사람은 하나를 주우려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그가 정녕 무언가를 주우려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그가 주운 것은 무엇이었는가. 생각은 다시금 잃은 것이 아니라 손안에 남은 그 하나를 쥐고서 그렇게 또 하루를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불어오는 바람이 더는 날카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혹독한 생각의 끝에서, 그래봤자 오늘에 주어진 것들은 어제에 비하자면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들이다. 나는 언제라도 그것을 편안하게 꺼내볼 수 있을 테지만, 그때마다 더 빠르게 달려 나가고 싶어진다. 다시금 더 많이 더 게걸스럽게 내 생각들을 탐닉하고, 어디로 가는 줄은 몰라도, 도대체 어디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지, 어디까지 달려볼 수 있는지, 그래서 도대체 내가 어디쯤에서 어떻게 완전히 지쳐 쓰러질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힘들다. 아니, 힘들지 않다.
부단한 생각, 부단한 달리기, 부단한 글쓰기, 내 삶을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과 그에 대한 경험과, 그 모든 것들로부터 전래되어 존재하는 여기 있는 나.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서는, 그 모든 것의 응집으로 한 번 더 살아보고 싶다. 나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그러고 싶다. 머물러있고 싶지 않다. 어떤 말이 다시금 내 안에 흘러들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전래되는 생각들에 맞춰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게 될 것인가. 그 안에서도 몸은 그 생각을 지탱하고, 여전히 착착 땅을 짚어내며 발을 구르고 있었고, 시린 바람 안에서도 땀이 흐른다.
그리고 뒤돌아섰을 때, 맞서던 바람은, 이제 나와 함께 달린다. 그 감각을 서술하고 싶다. 바람 안에 있을 때, 그리하여 바람과 함께 달리고 있을 때, 귓바퀴를 긁어대며 자신을 드러내던 그는, 거짓말처럼 자신을 감춘다. 바람의 품 안에서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하여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몸은 가벼워지고, 그 무엇도 나를 막지 못한다. 내 몸은 구르는 만큼만 정직하게 나아가고, 혹은 그 이상으로 덤을 얹어 나아간다. 바람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지만, 내 주위에 나뭇잎과, 현수막이 나 달리는 그 방향으로 흔들리고 휘날린다. 그 사실이 내가 당신의 품 안에서 달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 안에 고요.
바람이 사라지면 내 숨소리가 들린다. 땅을 긁어대는 신발 밑창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나는 고요 안에서 내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 사라지면, 다시 또 부단히 달리며, 무언가를 생각한다. 가벼워진 몸은, 방해 없이 빨라지는 다리는, 거침없는 생각은, 모든 것을 노력 없이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서서히 모든 것은 다 함께 지쳐온다. 소리 소문 없이 지쳐간다는 감각. 그 안에서, 마침내 피어나는 서슬 퍼런 마음이 있다.
애쓰고 싶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살고 싶지 않다. 무엇이든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피눈물 흘릴 리 없도록, 나를 단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칼은 언제든 항상 벼려져 있는 것이 좋다. 무엇을 베게 될 줄 몰라도, 언제라도 잘라낼 수 있을 것처럼. 얼마나 달릴 줄은 몰라도, 언제든 달릴 수 있을 것처럼. 무엇을 말하게 될 줄 몰라도, 무엇이든 말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러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천천히 달리고 또 멀리까지 달려서, 진정한 순간이 온다면, 그저 태평하고 여유롭게 그 순간을 시작하고 또 끝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그 어떤 준비도, 언젠가는 준비된 것을 넘어선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 안에서, 준비 없이 발을 내디뎌야 하는 순간이, 그 어떤 준비된 생각 없이 말을 골라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완전히 지쳐있고, 그 끝에서야 비로소 평가받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한 번 더 질주해 보고 싶은 마음. 모든 채비들로 단단히 무장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언어. 그것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내 몸과 마음을 비집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순간. 참아 온 줄도 모른 채로 잊어왔던 어떤 마음이 다시금 솟구치는 그런 순간. 그때,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의 끝에서, 그 모든 것을 응집해, 혼신의 힘을 다해 태어나는 어떤 말을 게워내고 싶다.
그때 언제나, 내가 멈춰야 할 곳은 미래에서 나타난다. 나는 내 과거를 살아, 새로운 것을 미래에서 만난다. 그 순간에 나는 하나의 삶을 이해해, 그 삶을 말하려고 했으나, 삶은 미래를 만나 언제나 내 언어 이상의 모습으로 내 온몸에 들이친다. 혹독하게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마음은 다시금 계절과 함께 녹아 사라진다. 겨울이 어디로 갔느가. 나는 하나도 모른다. 땀이 뚝뚝 흘러 몸 안에 깊게 스미고, 삶은 여전히 하염없다.
힘들었는가.
그래봤자 어제보다 따뜻한 날이다.
내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다시 만나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장 찬란한 계절로 간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