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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en Sunggu Kim Jun 25. 2020

멍청이

기준은 뭘까?

 지난밤에 집사람이 큰 아이 학교 엄마들과의 독서 모임이 있어서 저녁시간을 아이들과 셋이서 보내야 했다. 자기 전에 루틴으로 엄마가 매일 읽어 주던 책을 아빠는 읽어주지 않는다. 이유는, 아빠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들의 지능이 높아진다는 믿기 힘든 통계가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굳이 책을 읽어줘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노'이다. 그 앞에는 당연히 '귀찮음' 이 버티고 있다. 책을 읽어주지 않는 대신, 집사람은 아이들에게 텔레비전 시청을 제안했고, 아이들은 그 딜을 받았다. 약속은 행해졌고, 나는 예외적인 크레디트까지 제공했다-귀찮으니까 텔레비전을 좀 더 보다가 자라는 의도로. 얼씨구나 하고 그 선물까지 받아먹은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이내 면을 바꿨다.

"엄마는 책을 읽어줬는데..."

"아빠는 영어를 몰라."

"(구라쟁이) 그럼 한국 책을 읽어주세요."

"싫어. 아빠도 잘 꺼야."

잠시 후, 작은 아이가 연기를 시작하면서 거실로 나타났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겠단다. 당연히 나는 계약위반이므로 들어가라 하고 소리를 쳤다. 질질 짜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나도 성질이 나서는,

"너 나와서 거실에서 자지 말고 엄마 기다려."

그러고는 나는 잤다. 잠깐 졸다가 양치질을 하려고 일어나 보니, 작은 아이는 책을 보고 있었다. 이건 뭔가? 그냥 질질 짜다가 잠일 들었겠지 했는데, 독서라니. 딱 이 표현이 맞겠다. '헐~~~'. 지 엄마 닮은 게 맞는 것 같다. 나라면 그냥 내 쳐 잤을 것이다. 양치질을 마치고 나는 그냥 잤다. 피곤한 월요일이었다.


 아침이 되었다. 작은아이가 지 엄마한테 고자질을 이미 다 했다. 아빠가 자라고 했는데 안 자서 아빠가 화가 났다고 리포팅을 하셨단다. 사건의 요지는 파악하고 있구나.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는 건, 멍청이가 하는 행동이야"

아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냐? 하는 것과,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의 표현 같았다.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지난밤의 아이의 행동과 연결이 지어졌다. 과연 이 사람이, 멍청한 행동을 한 것인가? 주어진 환경,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의 불편함을 주위의 유일한 어른인 아빠에게 토로했고, 그 대가로 잠자리에서 쫓겨나서 거실에 앉아있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러다가 추워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곯아떨어져 잤으니까.


 본 사건을 정리하는 이 시점에서 누가 멍청이 었는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멍청이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가... 지위상의 우위를 악용한 자가 멍청이일 텐데. 따지고 보면 그렇겠지만, 여하튼 어제의 작은 아이의 아빠라는 자는 만사가 귀찮았으므로 멍청이가 되어도 할 말이 없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얼마 안 있어 저 작은 아이라는 사람도 데시벨을 올릴 것이다. 소통은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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