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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en Sunggu Kim Jun 25. 2020

낚시

정말 낚시에 인생이 녹아 있는가?

 일 년이 넘게 덮어둔 여기가 문득 생각났다. 여러 SNS들을 통해 속에 있는 말을 꺼내 보여줄 수 있지만, 굳이 뭐... 가급적 안 봐주는 게 좋다. 내가 끄적인 것들을 봐줬으면 하는 사람은 몇 안되니까 상관없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서 어렵게 어렵게 "삼시 세 끼 어촌 편 5"를 보고 있다. 시원하게 한 시간 이상으로 제대로 편성된 버전을 보고 싶지만, 이역만리 타지에 사는지라 해외에서는 액세스가 안된단다.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볼만큼 부지런하지도 않다. 유해진 배우님께서 아빠의 역할로(?) 분하고 계신데, 그 모습이 정말 한 집안의 가장 같아 보일 때가 많다. 최근 식구들 모두가 선상낚시를 나간 적이 있다. 이후 엄마의 역할을 하고 계신 차승원 배우님께서 따로 하신 인터뷰와, 두 분이서 함께 나누신 대화를 유튜브를 통해서 참고 바란다. 요약하면, 직접 바다에 나아가 낚시를 해 보니, 그간의 그 노고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고맙다, 정도가 되겠다.

 이 모습이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비쳤다.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돌아가신 지 2년밖에 안 되어서 그런지 사실 잘 느껴진다고 해야 하는 건가. 매일 눈을 뜨면 생각한다. 아... 이제 안 계시지. 에이... 참...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가장이라 함은 보통 집안을 이끄는 사람이다. 꼭, 아버지이고 남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소년, 소녀 가장도 있고 하니까. 내 경우에는 2년 전까지 내 집안의 가장은 아버지였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나도 언제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셨다. 이후 후회의 쓰나미는 다들 예상하고, 혹은 겪은 것처럼 상당히 크게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좀 차린 후에는 그분의 인생에 대한 가여움이 고마움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렇다. 다들 그러할 터이니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한번 따로 적어보겠다.


 낚시 나가는 가장의 마음. 매일, 낚시를 나가야 하는 가장의 마음. 고기를 잡아서 돌아가지 못하면 저녁도 없고, 그 고기를 팔아서 마련할 무언가도 없다. 하지만, 드넓은 바다는 고기를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이 지구의 70% 정도가 바다라고 하고, 그 넓은 바다에 물고기가 얼마나 많이 있겠냐만은, 오늘, 이 순간, 물고기가 꼭, 간절히 필요한 이때, 쉬이 내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아부지! 경규가 왔어요!"를 외쳐도, 어복은 이경규 아저씨에게만 있는지도 모른다. 일터에 일을 하러 나가는 우리들의 가장. 든든한 일자리가 있고, 괜찮은 보수가 보장된다면 부러울 것이 없는 것은 떠나서, 우선은 안심. 속을 끓일 일이 줄어든다. 마음의 평화만큼 중요한 평화가 있을까? 젊은 나이라도, 가정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면 속이 편하기만 하지는 않다. 일과 후의 친구, 동료들과의 한잔도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할 일은 아닌 것이 되기 십상이다. 따지고 보면, 딱히 좋은 게 별로 없다. 가장이라고 감투를 씌워놓고, 새둥지 속의 아기새들처럼 짹짹대면서 가장을 기다린다. 목이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딱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시간과 장소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모습 속에서 불안함을 보았다. 동시에 그 무거운 불안함을 견디게, 혹은 극! 복! 하게 해 준 것,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인생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특별한 것 없어."라는 말씀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된다. 나름 한 극성하시는 내 엄마조차 이제는 멀리 있는 아들이 안위를 먼저 걱정하신다. 그러면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의 기대가 없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답은 아직은 못 찾았다. 쉬운 후보로는, 가족에 대한 사랑, 사회적 통념에 대한 가장의 책임 등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닐 것 같다. 평생을 따라다녔을 그 불안함. 그래서 내 아버지가 안쓰럽다.

 

 오늘 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해서이다.

"내 아버지는 무슨 재미로, 낙으로 살았을까? 그래서 나는 무슨 재미로 낙으로 살아가야 할까?"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자기 업 찾아서 밥벌이 하고, 짝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고... 이것만 해 드리면 된다? 내가 신나면 내 아버지도 신이 나는 건가? 내 아이들 봐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직까지... 아이들이 가끔 무지하게 귀찮을 때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나중에 이 글을 읽고 뭐라고 해도 할 말은 있다. 이 질문을 직접 드렸어야 하는 건데, 참 아쉽다. 언제라도 한국에 들어가 친구들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여쭤본 뒤에 이 글의 업데이트 버전을 다시 한번 쓰겠다. 이런 것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원격 조정하는대로 잘 가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그런 오차들이 살면서 재미라 고하면 할 수 있을 정도였고, 힘은 들지만 그 기억들이 쌓아준 큰 믿음 때문에 본인을 불살라왔던 건 아닐까.


 오늘은 여기 달력에 아버지의 날로 되어있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카드라고 개발새발 쓰고 그려서 내게 줬다. 사랑한단다. 나도 어렸을 때, "아빠 사랑해요!" 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보내드리는 자리에서도 너무 죄스러워서 저 말씀은 못 드렸다. 내겐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 중의 하나다. 마음은 다들 갖고 있겠지만, 목구멍으로 그 소리가 나오는 게 힘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부탁한다. 애인이나 배우자, 아이들에게만 사랑한다고 할게 아니라, 부모님. 특히, 가장 님에게는 그 예를 "사랑합니다"를 통해서 표 하기를 부탁한다.


 내일 엄마한테라도 사랑한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또 무거워진다. 아이들보다 무거운 게 몸뚱아리의 무게뿐만은 아닌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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