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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Oct 08. 2023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다




멀찍이 서서 대강 다른 삶을 훑어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 아주 동그랗거나 조금 길쭉하게 동그랗거나 한쪽이 조금 구겨졌거나 그런 차이이지 얼추 다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 한걸음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알지. 다 다른 모양이라는 걸. 심지어 내가 처음 보는 모양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모양으로도 잘 살아진다는 걸.


문제는 살면서 그런 다양한 모양을 마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어릴 때부터 끼리끼리 놀게 된다. 그래서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러니까 내 옆엔 나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사람들뿐이라 그 바깥을 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이 대부분 비슷한 환경인 중학교 생활 후, 훌쩍 혼자 먼 곳의 예고를 선택했을 때, 거기서 마주한 모양들만 봐도 그랬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게 뭐지? 이런 건 또 뭐지? 하고 당황하는 날들이 많았다. 죽어라 싫은 공부를 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흠뻑 하면서(물론 힘들 때도 많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목적을 갖고 있으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또 편부 편모 친구들이 많은 것도 처음이었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에서 혹은 편견 안에서 살았는지 그 나이에 이미 후두둑 깨졌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보수적인 대학 사회 안에 살면서 그 바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과 생각들에 질린 적도 있다. 일상과 일치되지 않는 저 학술적 언어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슷하거나 완전히 같은 모양의 말만 자꾸 빚어내는 대학 사회는 바깥의 일상을 담아내기에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모양을 찾아 헤맨지도 모른다. 동대문 밤공기를 마주한 첫날을 잊지 못한다. 이 시간이 이토록 대낮 같다니. 그리고 이 시간을 당연하게 살아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사람을 밀치고 가는 저 사입가방의 무게가 이러했다니. 2년 동안 시장을 드나들며 매번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미처 모르는 때가 있었고 아직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알지만 여전히 두려운 경우도 있다. 무엇 하나 잘못된 것은 없다. 그저 각자의 마음과 상황과 가치관이 결정할 뿐이니까.


오늘날의 내가 수년 전의 판단과 결정대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결국 주어진 상황과 예측할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남들과 같은 모양을 추구한다고 해서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 결국은 나여야만 하지.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진다. 오늘도 주문처럼 외운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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