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 한인 민박

예수 믿으세요

by Massoud Jun


***알제 한인 민박집



민박집은 이슬람 국가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장로와 집사들이란 얘기를 들었다. 한 번씩 목사가 집을 방문해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손님이라곤 이 부장과 나 밖에 없어 고즈넉한 분위기여서 숙소 생활은 적막했지만 공무 일을 담당하는 이 부장은 본사에 보고할 게 많아 언제나 책상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도 외출도 거의 없이 일하는데 계약서나 파고 있던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좀이 쑤셔 알제 시내 관광지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졸랐다. 원하는 만큼 보고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 전문가를 자처했기 때문에, 알제의 유명한 카스바의 빈민촌이나 잘 알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녀 보고 싶은 욕심이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방문했으니 당연하게 생겼다.

밋밋한 도시, 132년간의 프랑스 식민지배로 파리의 건축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도시 구경은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와 바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그곳의 멋을 즐기는 나로서는, 딱 정해진 관광지를 선호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거리를 걷다가 피곤하면 노상 카페에 앉아 주변 사람들과의 스스럼없는 대화가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알제는 아시아인을 무조건 중국인으로 보고 무례하게 구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아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에 기분 상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즐거운 여행을 즐기러 나갔다가 속상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알제 항구, 출처 http://blog.daum.net/snuljs/16500780



그리고 저녁이 되면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한식을 안주 삼아 먹으려 소주를 주문하니 한 병에 30유로(4만 원 정도)에 팔았다. 파리 식당에서 2만 원에 사 먹을 수 있는 소주를 이슬람 국가의 심장에서 구하기도 힘들 테니 스페인에서 공수해 온다고 했다. 파리의 한국인 마트에 가면 만원, 중국 슈퍼에 가면 5천 원에 살 수 있는 소주를 특별 안주 회와 함께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이 부장이 기분 좋게 알제리 회 맛을 보자며 주문했다.


둘은 죽이 맞아 주거니 받거니 술을 기울이며 파리보다 비싼 소주로 저녁을 즐기는 사이, 주인 내외에게 파리에선 식당에서 사 먹으면 2만 원인데, 너무 비싸다고 놀라서 말하니 '파리 어디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주말에 파리를 다녀오면서 한 박스 사 오겠다고 말하면서 이 부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원래, 현대건설과 한 몸이었는데 독립해서 나갔지. 대개가 한양대 출신 공돌이들인데 공학도가 별로 없으니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걸리적거리는 게 대개 한양대, 홍대 그래! 그래도 선후배 사이의 교류는 있겠지만 회사에선 철저하게 인맥이니 학맥을 타파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어. 그래도 현대 계열사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외부로 돌아다니면서 지금처럼 대형 프로젝트로 성공한 것은 그런 정책들 덕분이지. 엄청난 성공을 거둬 지금처럼 곧 계동 본사에 합류한다고 하니 금의환향하는 거지!"


이 부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대기업 중에 사람인이나 잡 코리아를 통해 채용을 하는 곳은 없었다. 대개, 헤드헌트를 통해 채용했기 때문에 보통 1인 급여가 1.2백에서 1.5백에 하청을 주는 것과는 달리 현대엔지니어링은 구인광고를 통해 직접 채용을 하니, 과연 그 말이 맞다 싶었다. 이 부장은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려 하는데, 교회 다닌다는 어떤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이 부장이 일어나 인사했다. 같이 현엔에 다녔던 선배인데 퇴직하고 개인 영업일을 한다고 했다. 인사를 하고 저녁을 다시 들기 시작했다.


"이 부장, 지금 소넬가즈에서 발주한 복합 화력 6기 중에, 나에게 두 개의 계약서가 있어. 수행할 회사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


이 부장이 식사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고 그를 보더니, '그거 지금 우리가 수행하러 왔다'라고 답하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부장은 본사에 보고했다.


이 부장은 일과가 끝난 후에도 민박집 자기 방에서 업무에 매달렸다.

아침, 저녁이 제공되는 숙소는 한 번씩 들어오는 목사와 기도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의 나라, 그것도 이슬람 국가에 와서 기독교 포교 활동을 하는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은 이미 많은 병폐를 만들었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몰상식하면서도 몸서리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통성 기도였다. 멀쩡한 사람이 기도하다가 갑자기 그렇게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고 울면서 통곡을 하는 것은 제정신으로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괴기하고도 기이한 광경이었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얼굴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광경은, 어릴 때 보았던 조그만 시골 교회에서의 기억에서도 잊히지 않는 충격적으로 남아 있었는데, 개인 집에서, 민박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보는데도 아랑곳 않고 통곡을 하는 모습은, 기도가 아니라 광신도들의 통곡으로 비쳤다.


이 부장도 나도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지극히 업무적인 얘기 외에는 상대를 하지 않았다. 이런 영업집에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아침, 저녁 끼니 걱정이 없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었다.






휴일을 이용해 나는 파리를 다녀왔다. 소주와 쏘씨송을 사 왔다. 저가 비행 편 에글 아쥐르로 왕복 4시간에 20만 원 조금 넘게 소요됐다. 사실, 스킥다에 다녀와야 했지만 이스마 아버지를 만나는 날 다시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었다.


파리의 중국 슈퍼에서 5천 원에 소주 한 박스를 사 오고서야 그들의 상술에 똥 침을 놓을 수 있었다. 이 부장이 그렇게 좋아했다.


파리 13구 차이나 타운의 베트남 쌀국수집. 눈물 없이 먹을 수 없는 맛집으로 한국 유학생들의 단골집이다.
파리 15구, 지인을 만나기 위해 한인 식당으로 향했다.


민박집은 회는 물론, 삼겹살도 따로 팔았기 때문에 사람 좋은 이 부장이 한 번씩 회와 삼겹살을 샀다. 같이 술을 마실 때면 IMF 때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무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를 떠올리면서, 아이가‘아빠, 왜 일하러 안가?’는 질문을 받고 한없이 울었다고 회상에 젖어 말했다. 다시 들어온 현대에서 얼마나 일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면서도 현대는 사 번이 깡패라는 말을 농담 삼아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도시 같았다.

건축물과 도시 구성도 활기가 없어 보였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특색 없이 유행이라는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밋밋했다. 히잡을 쓰고 전통 아랍인 복장을 한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체육복 같이 간편한 옷을 입고 대부분 덥수룩한 수염을 길러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파리에서 많이 본 건축물에, 파리를 혐오스럽게 만드는 북아프리카 출신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도시를 가로질러 민박집에서 발주처 건물이 있는 곳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선발대로써 계약금액 15%로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발주처의 동태를 살피며 본대가 들어올 때까지 준비를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현재 파견된 인원은 건설현장인 아인 아르낫이란 현장에 가 있는 토목 담당 차장과 이 부장과 내가 전부였다. 무료할 것도 없이 발주처와 숙소, 알제의 부유한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현대 건설 지점에 들어가 사무 일을 보는 일이 전부였던 우리는, 관리팀에서 들어와 직원 숙소를 구할 때까지 서울 본사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따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본대가 기술 회의를 하기 위해, 소장 이하, 각 공구장들이 알제에 들어오는 날짜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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