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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2. 2019

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1, 갑질의 정수



삼성중공업(SHI)



 이번엔 삼성 중공업으로 향했다.

이번 팀은 팀장이 나와 같은 나이여서인지 고작 4개월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일당이 올랐다. 이번에도 거실을 숙소로 사용하는 팀이었다.


 사람들은 좁은 방에 이불을 반으로 접어 칼잠을 자야 했다. 곧 팀장이 새로운 방을 소개해주었고 나는 꽤 괴물 같은 스타일에 같은 팀 원과 같은 방을 사용했다.


 중공업이 있는 장평동은 노동자의 삶만큼이나 건축물과 마을의 짜임새가 삭막했다.

가파른 언덕길도 그랬지만 숙소는 거실이 좁고 방이 큰데 비해, 방이 작으면 거실도 작았다. 거기에 신발 벗는 입구가 작아 불편했다. 보통 1인이 잘 만한 방에 성인 2인이 들어가니 이불을 반으로 접어 상대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범위를 좁혀야 했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된 곳이 거의 없이 찌든 떼가 묻어 누렇게 변했고 창문틀엔 먼지와 머리카락이 쌓였다. 아무도 청소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그럴 이유가 명백하게 없는 것처럼 아무도 하려 들지 않았고 할 이유도 없었다. 건물들의 구성과 구조가 모두들 비슷비슷했다. 한두 사람 들어와 살 집에 네댓 명이 기본으로 들어가 살았고 숙소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노동자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 썼다. 어차피 일 그만두고 떠날 때 사용할 것들이라 값싸고 자신만 사용할 물품들이었다. 애정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고 숙소에 애착이 갈 리도 없었다. 그 삭막한 숙소 환경만큼이나 한산한 거리마저도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숙소에서 한 블록을 내려오면 하나 있는 편의점은 그런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힘들게 번 돈으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 사 먹기도 고달픈 노동자들 신세였지만 막상 주변 환경마저도 그러하니 마음이 어두웠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했던 탓에, 최소한 세계 유수의 중공업 주변엔 개인 침대나 다수가 사용할 만한 식탁 등의 편의 시설들이 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한 대접 속에서 스스로가 몰락하고 있음을 깨달어가며 환경을 받아들였다.


 이런 물량 팀들에겐 내가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할 필요도 이력서에 기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가 일을 해본 사람인지, 오랫동안 같이 할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거기에 일하는 작업자들로부터 일명 ‘똥띠기’라는 팀 단가에서 남은 돈을 팀장이 먹는 구조였기 때문에 결근을 하면 팀장으로서는 손해였다.


 삼성 중공업은 현장통제가 심했다. 

현대에서 보았던 자들보다 훨씬 심했다. 회사 운영 시스템 자체가 ‘통제와 감시’였다. 그 통제와 감시는 삼성의 말단 사원이 하는 것이 아닌 바로 팀장과 그의 오른팔들이 실행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못하게 통제하고 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못하게 통제했다.



 현장은, 세계 최초라는 셸(SHELL) 사의 FLNG 프로젝트로 삼성과 프랑스의 설계, 감리, 공정, 시운전, 구매를 담당하는 테크닙(TECHNIP)이 컨소시엄으로 진행하는 6조 짜리 공사로 단일 계약으로는 최대 규모라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면을 들여다보면 4조 5천억이 프랑스의 테크닙, 나머지가 삼성의 건설비용인데 건설 외에 기술력이 없는 삼성중공업이 EPCC(설계, 시공, 시운전, 구매)를 하겠다고 덤벼든 사업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에서 가~~족 같은 부장, 과장, 사원이 배에 올라와 12시 점심시간 전에 노동자들이 배에서 못 내려가게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 착취해서 빨리 만들어내는 것 밖에 없는 삼성 중공업이 이번에는 엄청난 기술력과 알짜배기 돈이 되는 구매, 설계, 시운전까지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삼성은 결국 돈을 잃었고 삼성중공업사장은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삼성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의 밥값을 급여에서 떼겠다고 읍소했다. 새로 들어온 베트남 삼성전자의 사장이었던 사람이 야드 사장을 맡아 9개의 혁신 팀을 만들어서는 한다는 짓이 더더욱 더 가열찬 ‘감시와 통제’를 시전 하기에 이르렀으니,


- 일 열로 출근하기,

- 점심시간 12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 배에서 내려오게 하기,

- 일과 중에 배 아래 누구도 얼거리지 못하게 하기,

- 배에서 금지된 혼재 작업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시전 하기,

- 협력업체 사장단들 모두 ‘시종 시간 준수’라는 가슴 띠를 두르고 시종 시간 이전에 내려오는 사람 인적 사항 파악해 불이익 주고 모욕주기,

- 기성으로 협력업체 길들이기

- 출근 시간 30분 앞당겨 7시 30에 조회하는 ,


 노동자를 어떻게 하면 개돼지 노예 취급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더욱이 협력업체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에게 7시 30분 이전에 출근 확인하지 않으면 1시간 깎고, 잊고 출근 확인하지 않으면 오전을 날려버리고는 협박은 물론, 야간 잔업 시, 의무적인 1.5 공수가 아닌 시간당 1.5000원에 계산해주는 꼼수로 ‘지옥 삼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자사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임원급이나 과장, 차장급 인사들에게 회사를 만들게 하고 일감 몰아주기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전 관리들이 정확한 자신의 업무를 실행하거나, 삼성 관리나 협력업체 관리들이 자신들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하고 사내 규정은 명백하게 먼저 실천함으로써 작업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명백한 기본임에도 그들은 명령만 내렸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앞잡이로 활동하는 그들이 안전을 이유로 갑질을 하고 관리자라는 이유로 직권을 남용했다. 그들이 노동자에게 하는 개입은 오히려 노동자를 어떻게 개돼지 취급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것이다.


 계약은 ‘하성’과 했어도 0도 소속감 없이 가~ 같은 삼성의 하층 구조의 최 말단으로써의 소속감마저 0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것을 삼성도 알았는지 그들이 프로젝트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오로지 ‘착취’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현장에선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었고 반장이든 직장이든 대부분이 계약직이라도 부여받은 임무는 막중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얼마나 짧은 시간에, 어떤 노동력 착취를 통해서라도 이익을 내야 한다는 협력업체 생존의 비법은 오로지 지쳐 쓰러질 때까지의 착취였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28.5도가 넘어가면 점심 휴식시간이 30분, 32도가 넘으면 1시간씩 늘어나는 것이 매일 있던 때였다. 팀원들은 오후, 네 시 정도가 되면 모두들 지쳐서 서 있을 힘도 없는 것도 매일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정신인지 기량자들은 제일 꼭대기 위험한 곳에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 정신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 뜨거운 햇볕 아래, 쓰러지지 않는 그들의 정신력이 놀라웠다. 그들의 프로페셔널 한 정신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저렇게 일하니 인간대접 못 받고 노예처럼 일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일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 누구 하나 쓰러져고 잔혀 이상할 것이 없는 현장을 스스로 '지옥 같이' 여겼다.


 우리는 불판에서 익어가는 통닭처럼 얼굴이 빨갛게 그을린 채로, 오후 4시쯤 되면 거의 의식을 잃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기량자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그 더위의 햇빛에 노출된 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선주사 Shell과 삼성중공업 컨소시엄 업체 Technip


삼성중공업과 Technip이 컨소시엄으로 수행한 세계 최초 FLNG Prelude 프로젝트



 현장엔 노란 안전복을 입은 셸 감독관들과 기술자들, 빨간 안전복을 입은 테크닙 엔지니어들과 감독관들이 수시로 현장을 오가며 작업 체크를 하기에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바쁠 것 없이 서서히 여유를 즐겨가며 이런 지옥 같은 현장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해 가고 있는 와중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배관 수정 작업을 하러 팀 전체가 대기 중인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원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10시 휴식 시간이기도 해서 근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셸 엔지니어에게,


“무슨 일 때문에 작업이 중지되어 대기 중이야?


하고 물어보았다.

젊고 잘 생긴 엔지니어가 고개를 들더니


“설치해 놓은 족장이 심하게 흔들려. 그런데 작업을 계속해도 될지 매니저에게 문의 중이야. 영어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


“사실은, 영어보다 불어를 더 잘해!”


제임스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불어도 유창했다. 파리에서 공대를 다녔다고 했다. 우리는 불어로 신나게 대화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제임스가 내게 물었다.


“아니……. 왜 너 같은 애가 이런 데서 일하는 거야?”


“아! 알제리 가기 전에 잠깐……. 하하, 그런데 한국 사람들 일하는 게 노예 같지 않아?”


내 질문에 제임스의 얼굴빛이 변하며 놀라운 표정을 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불만 없고 일만 하고 요구 사항도 없는 일의 노예들이야, 한국인들은!”


 나는 자주, 내 생각이 틀린가에 대한 검증을 오랫동안 심각하게 했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그것이 한국의 노동문화이며 착취를 알면서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최하층에서 일당 10만 원을 받는 조공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나 하고 불만 있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100프로 노예 마인드에 더해, 갑질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엄밀히 얘기하자면 자본은 노동자들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어 가족과 같은 밀접한 연대의식은 물론, 즐거운 노동환경은커녕, 채찍과 창살만 없는 노예화된 현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서열화시켜 계급체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원인이 군대 문화에 있다는 것도 확신했다. 노동현장은 일사불란한 군대였고 상호존중 없는 반인권적 업무지시가 횡행했다. 그 결과로 잦은 작업자 교체와 팀 교체가 이뤄졌고 잦은 분란과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이뤄지는 안전교육엔 400여 명의 노동자가 모여 새롭게 들어가는 프로젝트 교육을 받았지만 1개월이 지나면 남아 있는 사람은 100여 명, 3개월을 버티기 힘든 곳이 조선소 생활이었다. 회사가 사원으로서의 대우가 부족하듯 노동자의 마인드도 결여되어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며 손가락질했지만 그들은 정작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노동자 등골 빼먹는 새끼"


누군가 조용히 증오의 얼굴로 내뱉었다. 이렇듯 불신과 통제가 팽배한 조선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일하지 않으면 그나마 일하고 싶어도 쫓겨나야 하는 서러움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나는 제임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족장의 불법적인 업무 지시와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일러바쳤다. 나는 처음부터 족장 일을 하면서 그 어떤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안전교육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또한, 현장에서 일만 하는 사람들이 기량자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시키는 일만 하지 전체적인 시스템상에서 이루어지는 안전에 대한 삼성중공업의 직무유기와 하청업체 하성의 직무유기 및 책임전가 또한 일러바쳤다.


그 효과는 다음 날 바로 일어났다.


 아침 작업 전,

 7시 30분에 조회를 끝내고 현장으로 올라가기 전,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었다. 즐거움은 담배 피우는 것뿐이고 노동은 30도를 오르내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며 감시와 통제는 나의 숨결과 발걸음과 함께 하는 현장, 아무런 희망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현장에 사교는 사치라고 여기는 현장, 온전한 정신일 수 없어서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런 내 앞으로 현장 소장이라는 자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그의 악수를 받았다.


“영어를 그렇게 잘하신다면서요? 안녕하세요, 현장 소장입니다”


“그런데요?”


“아니, 어제 제임스에게 한 말이 오늘 아침에 전 협력업체 대표들을 모아 놓고 안전교육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안전 교육과 스케폴딩 레벨 업 교육 있습니다”


소장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저는 받은 적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뭐가 잘못됐죠?”


 소장은 별다른 얘기 없이 친절한 미소를 날리며 자리를 떴고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뜨거운 햇빛을 받은 쇳덩이들에게선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품어져 나왔고 현장 작업 중, 제일 힘들고 위험하다는 족장 작업인 ‘손치기’가 시작되면 입에 게거품을 문 작업이 시작되었다. 제일 어려운 자리는 언제나 내 차지였지만 그런 힘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옥은 사람이 만들었다.


 이미, 삼성중공업이 만들어 놓은 체계적인 인간의 기계화 플랜에 따른 노동자들의 업무 역량은 150%를 넘어섰다고 나는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주 금액이 적어도 노동자들 시간과 노동력 착취를 통해 회사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파악이 되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스스로 욕을 얻어먹지 않기 위해 최고점을 항상 넘기고 있었고 그것이 평준화되어 100%라고 회사는 판단했다. 


이렇게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안전이 와서 '넘어지면 어쩌려고?' 하면서 불이익을 준다. 불이익은 해고로 이어진다.



 나는 테크닙이란 회사를 알제리에서 봤을 때, 이탈리아 회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프랑스어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장에는 테크닙 인원이 고작 한국인 감독관 1인, 매니저 1인 해서, 발주처인 셸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프랑스어를 들으니 기쁜 나머지,


“테크닙이 프랑스 회사였습니까? 제가 알제리에서 일할 때 테크닙 사람들을 만나서 이탈리아 회사인 줄 알았는데요?”


“테크닙은 글로벌 한 회사라 이탈리아에도 지사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현장에 삼성 안전과 책임자는 안 보이고 테크닙 사람들만 다니나요? 계약상, 테크닙이 수퍼바이징을 담당하지 않나요?”


“울랄라, 맞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알고 계신가요? 삼성은 인원을 보충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무슈 준!”


 그가 내 영문 이름을 보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한국에선 이름을 불리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이름을 부르는 억양과 태도에 따라 그가 지정한 내 위치, 즉, 계급이 정해졌기 때문에 내 이름을 거론하는 게 극도로 싫었다.


“무슈 세바스티앙, 당신은 한국 최악의 범죄 집단과 컨소시엄을 맺고 일하는 중입니다!”


세바스티앙은 미소로 답했다.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문득,


“프랑스어는 어디서 배웠나요?”


“외인부대입니다 무슈”


대화가 이어지자 같이 있던 반장이 짜증을 냈다.


“뭐하요? 일 하는 시간에 잡담이나 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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