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우울하고 싶었을까요?
그럴 때가 있다. 우울의 먹구름이 카페를 덮칠 때가. 그럴 때면 눅눅한 습기에 처진 손님이 꾸물거리는 우울을 타고 들어온다. 우중충한 날의 손님은 주름마저 짓눌려 밑으로 흘러내린다. 인생에 활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 보는 내가 다 불편할 정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한 표정일 수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같은 하루인데 왜 굳이 그리도 우울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벌써 삼일 째 좀비보다 푸르뎅뎅한 얼굴로 가게를 찾는 손님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푸석한 머리 당겨 묶은 그녀는 머그잔에 아메리카노나 라떼 등을 시키고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혔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구태여 돌아보지 않았거든. 혹여나 우울이 옮을까 봐. 사실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지.
몰려든 먹구름은 가실 줄을 몰랐다. 사일 째인 그 날은, 혹여나 꾸물거리던 우울이 저 구석 자리에 남아있을까 봐, 얼른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간 자리에 다시 바람이 차오르듯, 우울을 털어낸 자리엔 그녀가 왔다. 똑같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오늘도 우울하시구나….’
덩달아 힘이 빠졌다. 얼른 계산하고 음료나 만들어야지. 우울하긴 일러. 아직 갓 떠오른 해가 황금처럼 번쩍일 때였으니까.
“저….”
하지만 나의 권태는 깨어졌다. 그녀가 사일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에어컨은 일부러 끄신 건가요?”
“아… 네, 켜드릴까요?”
그녀는 작게, 바람에 떨리듯 끄덕였다. 슬쩍, 떨어지듯이, 수줍게. 머그잔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언제나처럼 가장 구석진 자리로 들어갔다. 별거 없었다. 고작 그것뿐인 대화였다. 하지만 남았다.
가슴 한편이 콱 막혀버린 나, 그녀가 떠난 카운터에서 생각했다. 나는 왜 그녀에게 행복감을 전하지 못하는가? 이 자리에 선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내가 손님에게 전하려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 수도 없고, 안다 해도 어쩔 수도 없는 우울의 원인 따위야 어떻든 좋았다. 그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 그랬다. 따뜻한 음식이 끌린다는 것은 위로가 필요한 거라고. 그렇다면 내가 음료에 담아야 할 것도 뻔했다. 위로가 될지 모르는 마음 한 조각.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그것밖에 없었지.
별 차이는 없었다. 같은 기계에서 원두를 갈아 샷을 뽑고, 온도가 정해진 기계에서 온수를 받았다. 정말 똑같았다. 그렇게 음료가 나갔다. 괜찮으실까? 흘깃 넘어다본 손님은, 커피에 입을 대지 않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나, 부디 얼굴마저 짓뭉게는 짐이 덜어지길 바랐다.
그것도 잠깐이다. 다시 카운터에 덩그러니 남았다. 오늘따라 손님은 없었다. 우울의 먹구름만큼이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생각들, 무엇이 나를 움직였을까? 난 대단히 대단하거나 매사에 성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 때문인가? 파고든 생각의 끝에서, 나는 그 작았던 끄덕임을 찾았다. 눈을 내리깐 채로, 고개를 떨어트리듯 끄덕- 그 작은 움직임에도, 에어컨을 켜달라는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삶이 있었다. 살고자 하는 힘이 있었다. 이 지긋한 우울을 벗고, 괜찮아지고 싶음이 있었다. 나는 그 생존 의지에 이끌렸을 뿐이다.
머리에 있던 것이 가슴으로 녹아들었다. 그래, 우리 중 그 누구도 우울하고 싶어 우울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말끔히 비운 잔을 내려놓고 떠나갔다. 텅 비어버린 잔만큼만 가벼운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