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그림책 '괜찮아 천천히 도마뱀'
느릿느릿 천천히 지내니까,
보는 것도 많고
듣는 것도 많고
친구들 도와줄 시간도 많아.
숲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과 성격의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천천히 도마뱀은 느릿느릿 천천히 지내며 친구들을 도와줍니다. 할 일을 걱정하는 작은 새와 꽃차를 마시고, 화를 내는 코끼리에게 잎사귀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경주에서 진 토끼에게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짓궂은 장난을 치는 원숭이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천천히 도마뱀과 친구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덩치 큰 코끼리는 넓은 등에 친구들을 태워주고, 똘똘한 토끼는 지름길을 찾아줍니다. 동물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구를 행복하게 해 주며 함께 살아갑니다.
“괜찮아, 다시 만들면 돼.”
블록으로 만든 아이의 장난감이 부서졌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토닥이며 말한다. 아이는 찌푸린 얼굴을 서서히 펴고, 다시 블록을 집어 든다. 아이들은 종종 실수를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할 일을 앞두고 걱정하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해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말한다. 그 말은 괜찮지 않은 상황이 결국 나아질 거라고 믿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불안과 속상함을 누그러뜨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싹트게 한다.
나도 마법의 주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 안의 어딘가에 숨어있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주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 먹구름같이 몰려와 어둠을 드리우고 마음을 적신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활동적인 일을 하면서 기분을 전환하고 에너지를 채웠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마음에도 서서히 볕이 들어왔다.
엄마가 된 후에는 어둠이 깃든 마음도 '엄마'의 자리를 지키면서 감당해야 했다. 쉴 새 없이 나를 찾는 아이들 곁에서 당장 혼자만의 시간과 누군가의 위로를 바랄 수 없다. 할 일을 묵묵히 하며, 내가 나에게 위안이 되는 말을 건넬 뿐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다 지나갈 거야.’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며 그 시간을 살아낸다. 그러면 나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힌다.
천천히 도마뱀에게 숲속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나의 숲에도 동물 친구들이 있다. 내가 할 일이 많아 종종거릴 때 따뜻한 커피를 내려주는 도마뱀,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때, 일이 벌어졌을 때 걱정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제야 나는 머릿속에 짊어지고 있던 걱정 보따리를 내려놓는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엄마 좀 쉬게 해 줄까?’라며 나를 안방으로 떠민다. 남편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내 곁에는 똘똘한 토끼도 있다. 20개월 된 둘째가 간장통을 쏟았을 때, ”괜찮아요, 아직 아기라 배울 게 많아서 그래요."라며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첫째 아이다. 내가 깨진 참기름병 조각에 손을 베었을 때, "엄마, 다리는 안 다치셨어요?"라고 물으며 밴드도 붙여주었다. 둘째 아이는 장난꾸러기 원숭이다. 기저귀를 벗기면 벌거벗은 채로 뛰어가 트램펄린 밑으로 들어간다. 눈만 빼꼼 내밀며 배시시 웃다가 어느새 다가와 다리를 들어올린다. 새 기저귀를 입히라는 뜻이다. 내 곁에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천천히 도마뱀은 느릿느릿 천천히 지내니까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도마뱀이 ‘나는 왜 이렇게 느리지?’라며 자신을 탓하거나, 숲속 친구들이 ‘도마뱀이 저렇게 느려서야 되겠어?’라고 비난했다면 어땠을까? 도마뱀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도마뱀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싶다. 또 숲속 친구들처럼 자기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이 놓치는 부분을 따뜻하게 채워 주고 싶다.
'괜찮아, 천천히'라는 말이 좋아서, 책 표지에 그려진 숲속 친구들이 사랑스러워서,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을 세워 두었다. 마음이 쫓기고 불안한 날, 책을 바라보며 이 구절을 떠올린다.
'날이 천천히 개도 괜찮아. 그래도 비는 꼭 그치고 하늘은 꼭 맑아지니까.'
미혼 시절엔 나에게도 여유가 있었다. 마음껏 우울해도 되었고 차근히 빠져 나올 수도 있었다. 엄마가 되니 내 기분 하나 어쩌지 못한다. 그조차도 사치고 일탈이며 그럴수록 아이는 짜증을 냈고 책 읽는 일상과도 멀어졌다.
아이는 '기분 앓이'를 하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 또한 머물 수 없다면, 건너야 하지 않을까? 이미 멀어진 아이와 보폭을 맞추려면 기분에 빠져드는 대신 기분에 선포해야 했다. "그만! 나는 책을 읽어줘야 해."
-이연진 '내향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