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씨는 취미가 뭐예요?
-좋아하는 영화는요?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신입사원 3주 차는 아직도 LIKE에 관한 질문이 쏟아지는 시기다. 캐주얼한 자리라면 답변하기 딱히 곤란한 질문도 아니다. 그렇지만 왜인지 위축되어 애매한 답으로 얼버무렸다.
답을 하면서 스스로가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없나 싶은 마음에 실망스러웠다. 나름 취향이 확고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정작 입 밖으로 꺼내 놓는 일 마저 이렇게 어려워하다니, 지금까지의 내 취향은 진짜 취향이 아니었던 걸까?
어릴 적 아버지가 항상 취향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정리하고 또 취향을 꾸준히 가꾸는 것의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평상시엔 건성으로 듣고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이 이토록 사무칠 줄이야.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8)을 보며 이런 고민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월터는 현실에서는 자신의 꿈과 열정을 뒤로한 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상상으로 대리만족하며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월터는 어느 날 자신이 몸담은 <라이프> 매거진의 폐간을 앞두고 잃어버린 표지 사진을 되찾기 위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는 상사의 선 넘는 갑질에도 소소한 사이다 한 방을 날리지 못할 정도로 소심하다. 그렇기에 월터의 현실은 그가 꿈꾸는 심장이 뛰는 블록버스터급 상상과 영원히 평행할 듯했다. 하지만 월터 스스로 표지 사진을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상황에 처하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던 두 세상이 하나가 되었다.
믿을 수 없는 두 자아의 합치는 '난 안 돼'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며 월터가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한 선택을 하게 된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거기에 맞추어 어떻게 하고 싶다는 욕구는 명확한 반면, 이것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그려보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실행해 옮기지는 못했던 그였다. 그러나 여러 사건이 휘몰아치는 탓에 월터는 주변 분위기를 읽기 이전에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물에 물탄 듯 밋밋해 보이던 스스로를 탈피하고 새로 태어나게 된다.
즉, 영화의 초반부터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는 일은 우선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움직일 수 있는 크고 작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었다.
한편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모든 순간에 "오케이, 콜-"만 외쳐서는 오히려 다시 한번 나만의 취향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영화 '예스맨(2008)'의 앨랜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싶다.
매사에 부정적이던 앨랜은 우연한 기회로 세상 모든 질문에 YES로 대답하기 시작하며 반복적이던 일상을 벗어나 활력을 찾는다. 새로운 삶의 짜릿함에 마냥 기뻐함도 잠시, 모든 답에 긍정하는 것이 다시금 그를 위기로 몰아간다. YES라는 새로운 선택지는 그의 삶의 지평을 넓혔지만 동시에 연인과 미래를 약속하는 일과 같은 신중함이 필요한 고민거리에도 등 떠밀리듯 YES를 외치게 하며 앨랜을 혼란에 빠뜨렸다.
월터가 YES만을 외치며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직면하며 해피엔딩을 맞았다면 앨랜은 그 이후의 현실에서 맹목적인 긍정 탓에 부딪히게 될 문제들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월터처럼 주저하지 않는 태도가 인생에 개성과 활력이라는 별사탕 가루를 뿌려줄 수 있지만, 별사탕이든 핵폭탄이든 밖에서 떨어지는 것에 흔들림 없이 추구하는 단단한 나만의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나는 NO 맨 시절의 앨런과 닮아 있다. 스스로도 이걸 알고 있기에 가끔은 월터가 된냥 YES를 외치며 새로운 선택을 하는 편이다. NO를 외쳐야 하는 시기에 YES를 억지로 외치는 것이 아닌지, 나의 중심을 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노력해 왔던 나의 시간들을 돌이켜 봤을 때, 나의 취향이 정말 무색무취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이 밝아오고 다시금 질문은 쏟아질 것이다. 두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일 이후에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해선 더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나의 취향은 무색무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