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란 Jul 27. 2024

첫 출근 D-1(영화「인턴」)

나이 어린 걱정 부자 막내의 막연한 두려움에 대하여

 2주 간의 신입사원 연수가 종료되었다. 처절한 취업준비 기간이 막을 내렸다는 쾌감은 입사 동기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배가 되어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걸 뒤로하고 발령 난 부서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물론 첫 사회 경험은 아니다. 그동안 짧지만 인턴십도 해보았고 여러 조직에서 아르바이트와 사무보조를 하며 일종을 체험기간을 가졌다. 그때를 돌아보며 지금의 폭발할 것 같은 설렘, 두려움, 열정은 모두 갓 딴 콜라의 탄산과 같고, 어느 순간 김이 팍 새어 공기처럼 흩어질 거란 걸 어렴풋이 직감했다.


 하지만 직접 겪지 않은 이상 알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짧지만 조직을 경험하며 느낀 점은 사회생활이란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과 맺어갈 관계 속에서 지금껏 그래왔듯 다시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의 반복이라는 것. 그 끝에는 언젠가 모든 게 평범하고 지루한 회사원이 남을지언정, 다다르는 과정은 언제나 조금의 낯섦이 있다. 


  입사하게 된 기업이 지금껏 접해본 곳과 다른 조직이란 점도 한몫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이 대표이사인 데다 영어 별명으로 서로를 호칭하던 동아리 느낌의 조직만 경험했던 나에게 팀장이하 차과장급 평균연령이 40대 후반에 수직적인 기업은 사실상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다. 정식 발령 전 긴장 풀라는 뜻에서 하루 선배들 및 대표님과 직접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으나, 어쩐지 더욱 졸아버리고 말았다. 


 '이 회사, 쉽지 않겠는데······.'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꽁꽁 얼어붙은 나를 녹인 건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영화 「인턴」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벤은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한 후 연륜과 배려를 무기로 2030 동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은퇴 전 회사의 사장까지 갔던 벤이 마냥 불편하고 자신보다 어린 직원들 사이에서 불편함만 줄 것이라 짐작한 모두의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다.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대체로 분명히 존재하는 '같음'이 있음에도 '다름'에 더 뾰족하게 반응하곤 한다. 2030의 어린 직원들에 비해, 밴은 70세라는 지긋한 나이다. 강산이 네 번 이상 뒤바뀐 나이 차이였기에 생활양식이나 패션, 말투, 가치관의 차이가 분명했다.


  영화 초반 벤이 입사한 회사의 직원들은 이 점에만 집중하며 '우리와 너무 다르다.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도 그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라며 그를 저마다 배려의 대상 내지는 함께 어울리긴 어려운 사람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벤은 똑같이 회사라는 조직에서 다만 더 오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 시간 동안 젊은 직원들이 겪고 있는, 혹은 다가올 미래에 겪게 될 다양한 일들을 미리 겪어왔다. 시차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에 노출되었고 벤은 이 경험을 격 없이 나누는 멘토로서 이 '같음'을 은연중에 강조하며 회사에 완벽하게 적응해 낸다. 


"음악가들은 은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들은 그들 안에 음악이 없을 때 멈춰요. 저는 제 안에 아직 음악이 있다고 장담합니다." (영화 「인턴(2015)」中 벤의 대사)


  나이가 들어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영화 속에서 '음악'으로 대변된 열정과 경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의 시차에서 오는 다름으로 소회와 표현의 높낮이는 다르겠지만 같은 조직에서 생활하며 같은 경험을 했거나, 하거나, 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나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불편할 것 같은 인생의 시차는 연륜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줄 수 있고, 일정한 순간이 지나면 그 시차마저 흐려져 하나의 팀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금처럼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맞지 않는 허리띠를 졸라맨 듯 조여오던 가슴이 일순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줄스를 비롯한 모두가 밴을 이해하고 성장했듯, 나 역시 선배님들과 편견 없이 교류하며 팀, 그리고 회사에 스며들며 성장하는 미래를 조금은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음악이 흐를 것이니 말이다. 머리로는 일단 확신해 본다. 마음으로도 확신할 수 있는 회사생활이 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