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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Aug 28. 2023

구룡포 해수욕장

모리국수와 해풍국수가 유명한 곳

  230km를 달려 경주 월드 워터 파크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온이라도 30도 언저리면 비 맞으며 하는 물놀이가 땡볕 아래 그것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날씨앱의 현재 온도는 24도였다. 1박 2일 여행으로 하루가 더 있어 워터 파크는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보문 호수에 자리한 카페로 향했다. 요즘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대형화, 다양한 빵, 경치 좋은 장소의 요소를 갖춘 베이커리 카페였다. 호수가 보이도록 창을 크게 내고 누워서도 경치를 즐기라는 듯 평상 모양의 널찍한 소파도 갖추고 있었다.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가 소파 자리에 있던 한 가족이 마침 일어서려고 하자 ‘가실 건지’ 물어 보고 그리로 옮겼다. 비가 오니 호수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보기 좋았고 서늘한 기온은 커피 맛을 더해 주었고 습한 날씨에 크로아상의 바싹함은 더 도드라졌다.     

  

  1박 2일로 잡은 경주 여행의 당초 계획은 첫 날 워터파크, 둘째 날 구룡포 해수욕장이었다. 워터 파크는 티켓을 예매하고 온 터라 반드시 가야 할 것 같고 문제는 해수욕장인데 비 오는 날 물놀이는 할 수 없겠지만 우산 쓰고 발이라도 담그자 싶어 카페에서 나와 가까운 감포 오류 고아라 해변으로 향했다. 꼬불한 산을 넘어 도착한 해변은 몽돌로 가득했고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파라솔 아래 일행 단위로 모여 있었다. 발목 깊이로 걸으면서 하양, 갈색, 검정 색깔 별로 돌을 줍다가 납작한 돌이 보이면 수평으로 바다로 던져 보기도 했다. 물수제비는 두 걸음을 넘지 못했다. 아이들이 돌멩이 대신 초록색 보석을 열심히 줍고 다니길래 자세히 보니 깨진 소주병 조각이 파도와 돌에 갈려 자연 세공된 조각이었다. 내일 못 올 수도 있는 바다를 뒤로 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침대방은 최대 3인이 들어 갈 수 있어 온돌로 정하고 왔는데 그날 투숙객이 별로 없었는지, 한여름 비 오는 날 여행지를 찾은 고객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온돌방 두 개가 붙어 있는 데다 한쪽 방에는 넓은 침대가 있는 스위트 온돌방으로 바꾸어 주었다. 8층이라 전망까지 좋아 어긋난 계획의 우울함을 한 번에 날려 주었다.      

 

  다음 날, 호텔 조식을 먹고 바로 워터 파크로 향했다. 비가 오지 않는 30도가 넘는 토요일 워터 파크는 10시 개장 전부터 대기 줄이 길다. 티켓을 확인 받고 팔찌에 현금을 충전한 후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었다. 구명 조끼부터 얼른 대여해서 아이들을 수영장으로 들여 보내고 썬베드를 빌렸다. 구명 조끼 하나에 7천원, 썬베드는 2만원 이었다. 파도풀에서 잠시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물미끄름틀에 가 있었다. 보트를 타고 45도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곳은 기다리다 못 참고 돌아왔다 했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 같은 맛과 양의 뿌링클 치킨을 1.5배 가격으로 먹고 잠시 쉬고 나니 아이들은 이미 워터 파크에 시들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 티켓 값의 본전을 뽑기 보다 원래 가기로 했던 구룡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로 바다에 들어 갈 것이므로 샤워도 할 필요 없이 차 의자에 담요를 깔고 올라 앉았다.

포항시에 속하는 구룡포는 1시간 거리였다. 멀리 반달 모양의 해안선이 보이고 파라솔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벌써 주차가 걱정되는데 중년 여성이 차를 세우더니 파라솔 하나를 2만 원에 빌리면 자신이 운영하는 민박집 앞 사유지에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고 자리를 잡았다. 감포 오류 고아라 해변과는 달리 고운 모래 해수욕장이었고 위험 표시선이 있는 곳도 160cm 사람 가슴 깊이 밖에 되지 않아 안전하게 놀 수 있었다. 동해의 맑은 물, 떠다니는 다시마와 파래 향은 여기가 바다임을 말하고 있었다. 튜브에 바람을 넣어 한참 타고 놀다가 파도가 쓸어가 버릴 모래성을 쌓고 또 쌓고, 다시마 건져 머리에 쓰고 깔깔댔다.      

 

 출출해질 무렵 오면서 미리 알아봐 둔 국수집에 포장 주문을 했다. 청어를 말린 과메기, 각종 해물에 면을 넣은 모리국수로 유명한 구룡포는 해풍에 건조한 국수도 이름이 나 있다. 비빔국수, 가자미 회국수, 만두를 가까운 곳에서 포장해서 바다를 보며 먹는 맛은 음식 원래의 맛 이상의 것이었다. 국수의 고장에서 찰진 동해 바다 가자미회를 고명 삼아 먹으니 공간과 맛이 일치되는 느낌이었다. 수평선을 보며 지구는 둥글구나 생각하고 둥근 지구에 물이 붙어 있음에 중력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즐거움에도 시들함이 있는 법, 그때가 집에 갈 시간이다. 샤워장은 한 사람 당 2,000원이었다. 2,000원으로 바다를 씻어 내고 돌아 오는 차에 올랐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비와 저온으로 바뀐 계획에도 오히려 더 큰 즐거움을 얻었다. 겨울, 대게 철이 되면 모리국수 먹으러 한번 더 오자 생각하고 나를 일상으로 옮겨 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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