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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16. 2024

월급날에는 딸기라떼를!

푸어의 전성시대에는 셀프 복지를


세 번째 월급을 무사히 받은 날, 나는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센터 1층 카페에서 딸기라떼를 사들고 봄꽃 만발한 공원을 산책했다. 마침 우리 팀 선생님들을 만나 잠시 함께 걸었다. 마음에 꽃도 담고 볕도 담았다. 어여쁘고 고운 것 보면 제일 먼저 친구들과도 나눈다. 우리들의 프로필 사진이 온통 꽃천지인 것은 우리 마음이 아직 꽃밭이라는 뜻이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더 바랄 게 없다. 더할 나위 없는 셀프 백일잔치였다.


나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아하는지 안다. 어느 정도면 충분한지도 안다. 아주 하찮다. 딱히 크고 넓게 다양한 관심도 없고 과한 갈망이나 욕구도 없다. 충분하다. 다행이다. 나는 감동도 쉽지만 만족도 쉬운, 정말 가심비 좋은 인간이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그 무엇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셨던가. 그렇다면 완벽한 성공과 행복은 더 바랄 게 없는 바로 이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방금 나는 맛보았다. 비록 그 순간이 단 몇 분 일지라도.


하찮은 만큼 쉽고 잦다. 행복이 천지삐까리다!




남편과 함께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일상에서 사라진 것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제대로 된 휴일을 누린 게 언제였던가? 여행을 간다거나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나 영화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문화생활이 사라진 지 제법 된 것이다. 대신에 그 시간이 노동으로 채워졌다. 생존 앞에서 모든 걸 다 누릴 수는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비참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았다. 괜찮아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괜찮네? 왜 때문에 괜찮지?


주 이틀 이곳에서의 시간이 내게는 소모가 아니라 오히려 충전이었던 것이다. 물론 통장 잔고도 충전되고! 이타심이 가득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멘탈을 가지고 있어 소통이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람들 속에 있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과 불안이 낮아졌음을 발견했다. 체력 소모는 있어도 심력 소모는 거의 없다. 이곳 사람들은 위험도보다 귀염도가 훨씬 높다. 덕분에 방어모드와 경계심을 해제하고 나 자신과도 비교적 조화롭게 지내며 안전한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마음에 틈이 있고 여유가 있다. 이 또한 셀프 복지인 셈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관심사와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과 한 공간에 머무르며 같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경험을 충족한다는 점에서 내게는 일종의 문화 활동이기도 하다.


여행이나 음악회를 가지는 못 하지만, 좋은 관계 속에 머무르며 하찮고 소소하지만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으로 지금은 충분하다. 적당한 경제활동을 유지하며 나에게 망설임 없이 딸기라떼를 사 주고, 작업실 월세도 내고, 예쁜 펜도 몇 개 샀다. 하고 싶었던 기부도 늘렸고, 사고 싶은 책을 참지 않아도 되고 벗들과 함께 떡볶이나 커피도 기꺼이 나눌 수 있다. 꼴랑 주 이틀 일하면서 글도 쓰고 있다. 세상에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참 이상하지? 예전에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지금보다 다섯 배쯤 벌 때도 이렇게 행복하고 충만하지는 않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오래도록 타임 푸어(Time-Poor)였는지도 모르겠다. 일만큼이나 삶도 필요했던 것이다.


키링이 반지나 팔찌를 이겼다. 난 나한테 이거 해줘. 넌 너한테 뭐 해주는데?

   

요즘 슬세권이라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거리 내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긴 나 역시 마트에 가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영화는 넷플릭스나 TV에서 보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도 넘게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이 가능한 시대이다. 새벽배송과 배달, OTT 구독에 중독된 것이다. 우리는 빨라지고 편리해진 만큼 좁아지고 단절되고 고립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정말 괜찮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 속에 있어서였다. 연결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만큼 안정감을 주는 복지는 없다. 손을 뻗으면 맞잡아주는 실체가 있는 그 안정감으로 충만하면 SNS처럼 보여지기에 급급한 시늉뿐인 허황된 관계를 갈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릴레이션십 푸어(Relationship - Poor)라는 말도 있으려나? 인간은 참으로 관계의존적 동물이다.


나는 물론 밖에서 나머지 5일 동안 생계 일선에서의 노동도 하고 있고 그 덕분에 세상 속 다양한 사람들을 생생하게 만나며 생존감각을 잃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다. 브런치에서 쓰고 읽고 소통하는 시간과 오프라인 독서모임, 그리고 이곳 가족센터에서 시간은 나를 나답게 지키는 시간이다. 의지를 내고 시간을 내어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려고 집중하고 노력하고 있다. 내게는 최소한의 산소공급이자 필요충분조건이다. 온갖 불균형과 결핍과 푸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내가 먼저 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자신과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셀프 복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더는 미루지 않고 조금씩 자주 충분히 적셔주어야만 내면의 사막화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 부족하지 않게 내가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과함과 넘침을 비우고 이 방 저 방마다 켜둔 불을 꺼야 한다. 허세는 옷핀을 가져다 뻥! 슈우욱- 터뜨려 바람을 빼고 허울은 훌러덩훌러덩 벗어던져 버려야 한다. 그러면 할 수 있다. 화려하고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흡족할 만큼 딱 알맞게 적당한 셀프 복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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