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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May 16. 2024

도와달라는 그 한 마디 할 곳이 없어서

<나의 아저씨>가 가르쳐준 사실


동훈 : 부모님은 계시나? 할머니 때문에 물어보는 거야.

지안 : 돌아가셨어요, 두 분 다.

동훈 : 할머니한테 다른 자식은?

지안 : 없어요.

동훈 : 근데 왜 할머니를 네가 모셔? 요양원에 안 모시고?

지안 : 쫓겨났어요. 돈을 못 내서.

동훈 : 손녀는 부양 의무자가 아니야.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돈을 못 내서 쫓겨나?
         아, 혹시 할머니랑 주소지 같이 돼 있나?
     
         주소지 분리해. 같이 사는 데다가 네가 소득이 잡히니까 혜택을 못 받는 거 아니야.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 요양 등급 신청해.

         그런 거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나?


  -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그런 거 가르쳐 주는 사람? 없었다. 없다. 드라마에서 가르쳐줘서 알았다.


<나의 아저씨>




<사례 1>

아버지는 폭력을 밥 먹듯이 휘두르고, 의사소통이나 공감 작용이 어려워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이나 가장으로서의 경제활동이 불가능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살인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침내 탈출을 감행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엄마는 손에 홀몸으로 노점상과 식당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역시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엄마와 함께 반지하에 살며 중학생이었던 10대 때부터 식당 마트 노동에 익숙했다. 엄마와 딸은 아버지로부터 양육비 및 학비 등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딸은 모든 학업과 생계를 스스로 건사했다. 모녀는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나 제도적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 역시 어떠한 분리조치나 진단 및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엄마는 50대 초반 결국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사례 2>

아버지는 기억도 없는 아주 어린 시절 화재로 돌아가셨다. 어머니 역시 몇 년 후 상심으로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형제들이 있었으나 부모를 잃고 남겨진 세 남매를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세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막내는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머슴살이에 가까운 10대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는 근로장학생으로 학교에서 일을 하며 겨우 마쳤다.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서부터 일찍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형을 도맡아 돌봐 왔으며 지금은 모두 50대가 되었다. 동생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제대로 가르쳐주거나 도와준 어른을 만나지 못해 길을 찾기 어려웠다. 동생은 스스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형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소지를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과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겨우 알아냈다. 그 모든 과정과 절차를 스스로 직접 처리했다.


<사례 1>과 <사례 2>는 나와 내 남편의 액면 그대로의 현실이었고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어딘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볼 생각조차 왜 하지 못했을까? 어디에 어떻게 도와달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서, 물을 곳 하나 없어서.  


드라마에서 말해주듯이 손녀는 부양의무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30년 넘게 지금까지 형을 부양해 온 동생은 부양의무자일까?

 

부양의무자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권자를 선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또한 그 부양의무자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가 된다. 여기서 부양의무자는 직계혈족으로서 부모나 자녀 및 배우자가 우선이며,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으로서 형제자매는 마지막 3순위이다. 법적으로 직계혈족인 부모나 자식이 있으나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이거나 법적으로만 존재하고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역할과 책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게다가 아무도 없는 혈혈단신인 데다가 아프기까지 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이 얼마나 많을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거나 폐지했다는 내용도 보이지만 제도적 지원을 받기까지의 절차와 과정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여전히 멀고도 어렵기만 하다. 그나마 지금은 인터넷이라도 있으니 찾아볼 수는 있지만, 누가 좀 나서서 아주 쉽고 명쾌하게 접근하고 신청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알려주면 좋겠다.  


지안 : 밥 좀 사 주죠.

        내 인생에 날 도와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요.
        많았어요, 도와준 사람들. 반찬도 갖다주고 쌀도 갖다주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까지 하고 나면 다 도망가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인생, 경멸하면서.
        자기들이 진짜 착한 인간들인 줄 알았나 보지?

동훈 : 착한 거야. 네 번이 어디야.
         한 번도 안 하는 인간들 쌔고 쌨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내 인생이 네 인생보다 낫지 않고 너 불쌍해서 사 주는 거 아니고
         고맙다고 사 주는 거야.


  -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밥 좀 사 주죠."


지안은 그 말 한마디 꺼내기까지, 꺼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춥고 배고픈 길을 걸어왔을까. 어느 지경을 지나왔을까.

  

밥 사달라는 말은 참 가볍고 흔한 말이다. 그런데 둘러보면 의외로 그 말 한마디 선뜻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쉽지 않다.


"밥 좀 사 주죠."는 "도와주세요."와 같은 말이다.




경제적 빈곤은 정서의 빈곤과 정보의 빈곤을 동반한다. 좋은 사람에 대한 경험, 좋은 삶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가질만한 경험의 빈곤은 불신과 냉소를 불러온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냉소만 남았다면 밥 좀 사달라는, 도와달라는 그 말 한마디 꺼내는 일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더 큰 망설임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책이나 토크쇼에서 '환대'라는 어휘가 자주 눈에 띈다. 어떤 특정한 단어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것으로 충만하거나 그것에 온통 굶주렸거나. 사람들의 의식과 마음이 그 단어로 가득 차 있거나 또는 그 단어를 몹시 필요로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영어 단어로는 Hospitality라고 쓴다. 딱 봐도 모양이 호텔(Hotel)이나 호스텔(Hostel)은 물론이고 병원(hospital)이나 호스피스(hospice)와도 닮아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임종 간호를 가리킨다. 이 모든 어원은 라틴어 ‘호스페스(hospes)’에 왔다고 한다. 주인(host)이 손님, 낯선 사람, 방문자를 맞이한다는 뜻이다. 길 위의 가난하고 지치고 배고프고 병든 낯선 나그네를 기꺼이 반갑게 맞이하여 정성껏 융숭하게 대접하는 일!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는 우리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환대받고 싶었던 간절함이 환대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 원동력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환대라는 말이 더 이상 특별한 단어로 들려오지 않는 세상, 복지라는 말이 더 이상 멀고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너무나 흔해 빠져서 굳이 복지라고도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어쩌면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https://youtu.be/ll4QIbU1kv4?si=eJ8YKuDqBUwu4Za4

<나의 아저씨> OST 손디아 '어른'



* 올해부터 청년·중장년도 ‘일상돌봄 서비스’ 이용 가능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2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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