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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May 09. 2024

5월은 들키기에 적당한 달!

이렇게 좋은 날에


5월은 근무일이 공휴일과 많이 겹치는 바람에 아흐레 만에 출근했다. 이런 5월이 있었나 싶을 만큼 어린이날 황금연휴 내내 쉬지 않고 비가 오더니 출근함과 동시에 날이 개었다. 햇님도 휴가를 갔었나 보다. 아직 느긋한 마음으로 햇살과 나란히 출근을 해서 책상에 앉자마자 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책상 옆 선풍기 위에 가방을 내려놓다가 터치식 전원 버튼이 눌러진 모양인지 갑자기 쒱-! 하고 강풍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림과 동시에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집에서 하던 버릇으로 선풍기에게 야단을 치고 말았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아뿔싸! 목소리가 너무 컸나 보다. 버튼은 황급히 껐지만 릴레이 웃음의 파도는 잠재우기에는 이미 늦었다. 옆자리 선생님들이 꾸욱 참다못해 줄줄이 비엔나처럼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잦아드는가 싶었더니 한 번 더 웃음을 빵! 터뜨리신다. 분명 전원을 껐던 선풍기는 남의 속도 모르고 갑자기 다시 또 켜져서는 한 번 더 쒱-! 바람을 일으킨다. 아니! 이번엔 손도 안 댔다고! 출근하자마자 난리 부르스다. 정신줄이 아직 안드로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이제 제법 이곳이 익숙해지다 못해 너무 편해진 탓인지 무장해제를 지나치게 과하게 해 버렸다. 20퍼센트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했어야 했는데, 그만 본캐를 들키고 말았다.


그래도 뭐! 오늘도 일찍부터 웃음을 선사한 나에게 "참 잘했어요." 칭찬을 해줘야지 달리 어쩌겠는가. 내가 원래 좀 그래. 풀이랑 나무랑도 대화하고, 책이랑도 대화하고, 처음 보는 강아지랑 고양이랑도 대화하고, 처음 보는 온 동네 아이들과도 이미 알고 지내는 듯이 친근하게 인사해. 오늘 아침에도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어여쁜 찻잔이랑 대화했는데, 선풍기랑도 못할 거 없지. (혼잣말이 많아지면 외롭다는 뜻이라는데, 나 좀 외로운가?)


다시 천천히 정신줄을 챙기고 버퍼링을 하며 가볍게 오전 업무를 끝냈다.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 공원 산책을 나서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바로 근처에서 막 작업을 마쳤다길래 그럼 와서 같이 산책하자고 했다. 그렇게 만나서 손잡고 나란히 30분쯤 함께 걸었다. 모처럼 5월답게 날이 워낙 좋아서였을까? 함께 나와서 공원 뒤편 트랙을 걷던 선생님들과 보란 듯이 딱 마주쳤다. 다른 때와는 유달리 쫌 많았다. 하필 최고로 많았다. 그래, 5월이 그런 달이지. 늘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사람들조차 엉덩이를 떼고 나와서 걷게 만드는 5월인 걸 어쩌겠어.


나는 민망해서 얼른 잡았던 손을 놓았다. 뭣이 민망해? 왜 민망해? 바람피우다 들킨 것도 아닌데 뭐가 어때서.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아무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설마 아직도 손잡고 다닌다고 이상한 관계로 오해하지는 않겠지? 오늘 참 여러 번 들킨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좋은 날에 난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남편뿐인 걸. 어깨를 기대고 비빌 언덕이 서로에게 한 사람뿐인 걸.  


5월은 들키기에 참 적당한 달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외로움이든. 가난이든 슬픔이든. 후회든 부끄러움이든. 아픔이든 비밀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눈부신 햇살과 울창한 신록이 모두 가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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