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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May 02. 2024

총을 열두 번 맞는 것보다 더 두려운

부부의 날은 며칠일까요?


"우리가 그렇게 된 건 아주 큰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 거야. 마음과 다른 말들을 내뱉고 괜한 자존심 세우다가 멍청한 오해들도 만들었겠지. 용기 내서 노크하는 것보단 문 닫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당신을 미워하는 게 가장 쉬웠을 거야. 근데 이제 안 그래 볼 거야. 그럼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나도 그랬어. 누가 또 당신한테 총을 쏘면 그 앞으로는 열두 번도 더 뛰어들 자신이 있거든. 근데 그런 거 말고 매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지치고 싸우고 실망하는 건 좀 두려웠어. 또 틀어지고 어긋나고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가 없었어. 근데 딱 하나 확실한 건 같이 있을 순 있어. 어떤 순간이 와도. 망가지면 고치고 구멍 나면 메워 가면서 좀 너덜거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 드라마 <눈물의 여왕> 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무슨 날 무슨 날이 참 많기도 하다. 노동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성년의 날 그리고 부부의 날이 있다. 부부의 날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며칠인 줄은 몰랐다. 달력을 보니 5월 21일이다. 이렇게 보니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겠다. 둘이 하나가 된 날이라는데.


그런데 혹시 시간 속에서 세월 속에서 그 둘이 돌이 된 건 아닐까 한 번쯤 돌이켜 보게 된다. 이렇게 10년을 살아왔는데 똑같이 10년을 20년을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이대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내려앉는 날도 있을 것이다. 덜컥 겁이 날 것도 같다. 더 두려운 까닭은 말 그대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에. 무슨 날이야 '총 맞는 일처럼' 어쩌다 한 번 있을 법한 이벤트라지만,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오는 일상을 피할 길 없이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어제는 조금 다른 일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동료들과 협업을 나갔던 남편이 어깨와 팔다리 여기저기 다 긁히고 쓸려서 돌아왔다. 그것도 속상했는데,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동료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말에 더 놀랐다. 그분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한 집안의 가장일 텐데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남편도 내게 바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다리에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진 적이 있다고 나중에서야 이실직고할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심쿵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이런 심쿵은 바라지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앞에서는 모든 일들이 사소해진다. 별 것도 아닌 그 쓰잘데기 없는 일로 자존심 세우고 속 끓이고 바가지 긁고 감정소모를 해댄 게 더없이 미안해진다. 그것만 덜 해도 에너지가 남아 돌텐데. 사고를 한 번 겪고 나면 매일 아침 저 문을 나설 때마다 부디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어진다. 죽음과 같은 아주 큰 일을 겪고 알게 되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이벤트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있을 수 있는 오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뼈에 저리게 새겨진다. 거창한 이벤트를 밥 먹듯이 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냥 일상을 처음 서로를 발견한 날처럼, 살면서 그만한 이벤트는 다시없는 것처럼 살면 된다. 어쩌다 소풍보다 매일의 산책처럼.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하고, 괜찮으면 괜찮다고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있는 그대로 늦지 않게 말하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눈을 마주 보며 말하고. 손 내밀면 손 잡아주고. 많이 지쳐 보이면 먼저 토닥토닥해 주고, 이쁨 받고 칭찬받고 싶으면 손 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쓰담쓰담해 달라고 조르자. 개나 고양이만 이뻐하지 말고 나부터 개나 고양이처럼 굴자. 사람이 사람에게 곁을 내어주어야지. 오늘에게 해야 할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비싸게 굴지 말고. 아끼다 돌 된다!




"부부상담을 좀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조금 다급하고 간절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용기를 내셨군요. 상담팀으로 전화를 돌려주며 나는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분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 아내분이 아닌 남편분이어서 나는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받고 싶다는 건 도움을 받고 싶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구하겠다는 의지의 시작이다. 먼저 도움을 청한다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큰 용기이다. 큰 용기는 무겁지만, 작은 용기를 일찍 자주 내면 좀 더 쉽지 않을까? 상처도 깊이 곪기 전에 약을 바르면 회복도 더 수월할 테니. 이곳은 언제든 무료로 친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






리사 아이사토 <삶의 모든 색>
고정순 <옥춘당>

https://youtu.be/nq0BYGyH2Do?si=_0uZRoJQkiqkf8Q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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