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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Sep 20. 2024

엄마와의 여행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엄마, 나는요.
엄마도 알다시피 가족들 건강 말고는
크게 바라는 것도 욕심나는 것도 없거든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딱 한 가지
부러운 게 생겼어요.
엄마와 딸이 나란히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이요

함께 늙어가는 축복이요
그것 한 가지는 샘이 나네요
몹시도 부럽네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은
친정엄마가 아래층에 살면서
반찬도 해다 주고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한대요

얼매나 부러운지 몰라요
난 엄마 있었으면 꼭 붙어서 같이 살 건데

시골에서 엄마가 택배를 또 보내줬다며
귀찮다는 듯 얘기하는 친구도 부러워요

우리 딸들도 어느덧 허리며 무릎이며

아프고 쑤시는 나이가 다 되었는데

허리가 휘고 무릎이 다 닳도록

엄마들의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은

얼마나 고될까요


이제 나 국도 잘 끓이고 전도 잘 부치는데

명절이면 엄마 힘들지 않게 거들 수 있는데

결핍의 궁극은 어쩌면 충만일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랑이

이토록 넘치니 말이지요


엄마랑 못 해본 게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세상 제일 부러운 것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지요.
엄마랑 같이 꼭 한 번쯤은
좋은 것 실컷 보고 느끼고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곳에서 먹고
그렇게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
엄마는 참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남들 다 가는 그 흔한 여행 한 번

딸이랑 같이 가볼 새도 없이
그리도 먼 여행을 혼자 훌쩍 떠나버리셨어
남들은 넘치고 넘치는 그 흔한
미련도 욕심도 참 없으셨어요

어릴 적에 엄마랑 배를 타고
바닷가 아주 작은 섬에 간 적이 있어요
아마도 큰이모를 만나러 갔었죠
내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엄마와의 여행이라 부를 만한 건

오직 그것뿐이네요.


그때 그곳에서 거침없이 환하게 웃던

엄마 모습이 너무나 행복했어요
계속 그렇게 엄마가 환하게 웃을 수 있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여행이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랬었지요

십억보다 값진 것이 추억이라더니
나이 들수록 정말 그렇네요
엄마와의 추억이 너무도 가난한 딸은

한 오라기의 기억도 간절할 뿐입니다


엄마, 그곳에서의 여행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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