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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철활인

밤의 기도

류시화 '신이 숨겨 놓은 것'

by 햇살나무 여운





꽃의 색이 깊어지라고
밤이 꽃봉오리를 오므리듯이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거나
슬픔 언저리에서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만나면
옷깃을 여미고
두 손 모아 절해야 한다
신이 그것을 그 자리에
숨겨 놓은 것이므로


- 류시화 '신이 숨겨 놓은 것'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그대에게 밤이 찾아오거든

아, 내 눈빛이 좀 더 깊어지려나 보다


그대에게 밤이 또 찾아오거든

아, 내 심장이 좀 더 붉어지려나 보다


그대에게 밤이 거듭 찾아오거든

아, 내 손길이 좀 더 따뜻해져야 하나 보다


그리 여기고도 밤이 다시 찾아오거든

아, 내 걸음이 좀 더 신중해져야 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오거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던가


자꾸만 뒤척이는 밤이 길어지거든

마음자리 한 구석이 구겨져 배기는가

아직 나의 감사가 한참 모자라는구나


깊은 밤 나의 기도는

마음의 다림질

밤에만 열리는 마음세탁소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본다는 것



https://youtu.be/YCsQAVL7yHI?si=7bKu4nEPA_vqr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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