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요즘 온 우주의 알고리즘이 임상춘 작가의 <폭싹 속았수다>에 폭싹 물들어 적셔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대사 모음집이다. 작가와 감독과 배우들의 삼합이 제대로 걸작을 만들어냈다.
친구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는 내내 나를 떠올렸다고 하고, 나는 세상 모진 풍파 다 겪으면서도 순수한 본질을 잃지 않고 시를 품고 사는 문학소녀 애순이를 보며 우리 명자 씨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다 소중하고 애잔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장터에서 좌판을 펴고 오징어를 손질하는 애순이가 깔고 앉은 촛불의자!
"어?! 저 촛불의자는 우리 명자 씨가 원조인데?"
오징어 전문가 애순이!
생선 전문가 명자 씨!
애순이에게는 항시 촛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주고 의자 위에 꽃방석 깔아주는 관식이가 있었다면, 명자 씨에게는 좌판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물 떠다 날라주는 막내딸 여운이가 있었지.
나도 바닷가에 나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보고 싶다.
"엄마-!"
https://brunch.co.kr/@shiningtree/163
엄마가 길에서 생선을 팔 때였다. 겨울철에 엄마는 빈 페인트 통을 얻어다 못으로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그것을 엎어 놓고 그 안에 촛불을 켜서 깔고 앉아서 장사를 했다. 매일매일 온종일 길바닥에서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그 작은 촛불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한 번은 유난히도 몹시 추운 날, 내가 학교를 마치고 오는데 엄마는 종이 상자 귀퉁이를 찢어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푸시킨의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그 추운 길바닥에서 꽁꽁 언 손으로 시를 쓰고 있다니. 나는 엄마에 대해 몰라도 정말 너무 몰랐다. 그날의 그 또렷한 장면이 지난날의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뛰어넘어 나의 영혼에 각인되었다.
- 여운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809313
"할머니,
할머니 되면 엄마 안 보고 싶어?"
"살아 봐라, 그게 되나."
- 임상춘 <폭싹 속았수다>
그리움보다도 죄책감이 더 크면
추억이 안 돼.
- 임상춘 <폭싹 속았수다> -
https://youtu.be/CgGJlSvA9m4?si=aj1YQISYuRLMOn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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