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과 필름의 위력
크리스마스에도 그렇고 이번 어린이날에도 눈뜨자마자 아침 아홉 시부터 꽉 막힌 싱크대 하수구를 뚫고 왔다. 이 정도면 무슨 국경일 징크스인가? 투덜거리는 조수를 향해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외치는 사수! 정말로 위대한 정신승리가 아닐 수 없다. 가스라이팅하지 말라니깐 조수도 자꾸만 계몽된다. 다들 어려운 시기에 일이 있음에 감사한 건 진심으로 맞는 말이다. 어린이날 선물 넘치게 받았다.
작년에 인연이 되었던 복지공단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엔 바로 옆부서 팀장님께서 타일 보수가 가능한지 물어오셨다. 사진을 받아보니 너덜너덜 구멍이 숭숭 뚫린 베란다 바닥 타일이 세월 속에 모진 풍파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견딘 우리네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듯 닳고 낡아 있었다. 서둘러 약속을 잡고 연휴가 끝나마 마자 대상자분 댁에 방문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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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을 하시는 아저씨는 일을 나가시고 어머님께서 문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신다. 오자마자 우리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부터 연신 건네신다. 형편이 그래서 몇십 년을 저 낡아빠진 타일을 어찌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새시도 옛날 알루미늄 새시에 창문도 얇아 몹시 춥기도 추우셨을 텐데. 손만 대면 부서져 떨어지는 타일 조각들이 창가에 드리우는 5월의 햇살이 무색하게 왠지 더 어둡게 그늘져 보인다. 우리네 형편은 뭐 얼마나 다른가.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들 별반 다르지 않다. 도배와 장판, 필름과 타일처럼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다 마찬가지다. 작은 아파트가 오래돼서 낡긴 했어도 주인의 바지런하고 말끔한 살림 솜씨 덕분인지 집안 분위기는 단정하고 아늑했다.
사람이 오래 고프셨나 어머님께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뭐든 돕겠다고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곁에서 내내 맴도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덕분에 저희도 심심하지 않고 즐겁게 작업한다고 대신에 서 계시지 마시고 앉아서 마음 편히 계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평소에는 제천인가 단양인가 어디 시골에 머무르시면서 농사도 지으시고 품삯을 받으며 일손도 보탠다고 하신다. 그곳에선 그래도 할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일정을 잡고 작업하러 오기로 한 우리를 맞으려고 일부러 올라오셨다고 한다. 어디 가서 한 번도 못했던 아들 흉도 술술 본다며 참으로 이상하다며 웃으신다. 크는 내내 한번도 속 썩인 적 없이 순하던 막내아들이 안 좋은 일에 연루되어 크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몇 달을 몸져누워 밥도 못 먹고 이도 숭숭 빠지셨다고. 나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든 일을 겪으니 이가 숭덩숭덩 빠져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얼마나 낙담을 하고 망연자실하셨으면 그렇게 무너지셨을까 그 마음이 읽힌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못할 이야기를, 때로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에게 깊은 속내를 한 번쯤 털어놓는 게 오히려 후련할 때가 있다. 잠시라도 속이 좀 풀리시면 다행이다. 뭔가를 낳고 키우고 기르고 캐고 챙기고 나누고 돌보는 어머니들의 생명력은 질경이를 닮았다. 질기고 강인하다. 그 힘 덕분에라도 스스로 다시 기운을 차리신 모습이 참으로 감사했다.
타일 작업이 고된 것은 세밀한 기술도 기술이지만, 워낙 낮은 자세로 오랜 시간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해야 하는 탓이다. 아침에 시작해 늦은 오후까지 꼬박 작업을 해야 하는데, 보통 때는 중간에 쉬지 않고 점심을 건너뛰고 일을 모두 마친 후에 먹는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니 어머님께서 조심스레 우리를 부르신다. 베란다에서도 가까이 훤히 보이는 부엌 싱크대에서 한참 부산한 뒷모습을 보이시더니 작은 상차림을 내어놓으신다. 이런 것도 먹느냐며, 시골에서 손수 캐서 만든 쑥개떡과 꼬들빼기 김치다.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 달이신 따끈한 차도 내어주신다. 아무래도 양이 너무 적겠다며 금세 파 송송 계란 탁 풀어서 라면까지 끓여 주신다. 손맛이 좋으시다고 했더니 젊은 날 식당을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하신다. 어쩐지! 평소 잘 못 먹는 조수도 앉은자리에서 쑥개떡을 게눈 감추듯 세 개나 해치웠다.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어릴 적 시골에서 즐겨 먹었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운에 민감한 사수는 약초 달인 물도 꼬들빼기도 약성이 참으로 좋다며 마지막까지 싹싹 비운다.
그 사이 산삼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직접 산에 다니시다가 장뇌삼이 아닌 자연산 산삼을 꽤 여러 뿌리 캐셨다고. 이런 건 돈 주고도 못 사 먹으니 어디 팔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다 아저씨와 자식들 먹이고 나머지는 술을 담그셨단다. 아저씨 취미가 약초술 담그는 것이라며 작은 방 한가득 담금주 컬렉션도 보여 주셨다. 보는 눈이 없는 조수가 보기에도 어마어마했다. 산삼주, 장뇌삼주는 물론이고 별의별 약초들이 술병에 담겨 즐비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돈 주고도 못 볼 어떤 비싼 전시회 못지않은 진귀한 관람이다.
정말 신기한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처음에 여럿이서 갔을 때 그렇게 우연히도 당신 눈에만 띄었던 산삼이 다음번에 다시 가니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이더라고. 그마저도 다 캐지 않고 일부러 아주 어린 두어 뿌리는 남겨두고 오셨단다. 분명히 그 자리 그대로 맞게 찾아갔는데도 안 보이고, 몇 번을 주변의 온갖 산을 다 뒤져도 더는 한 뿌리도 못 봤다고. 사람 마음이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기대가 없을 때는 다시없을 귀한 인연이 찾아오더니,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고 욕심이 생기니 눈이 먼다고. 죽어도 안 보인다고.
여기저기 다니며 물 한 모금도 못 얻어먹는 집도 많은데, 작업하다 말고 편하게 앉아서 차려주신 상도 받고, 정성 가득한 귀한 음식에 생생한 삶의 교훈까지 덤으로 얻다니. 어디 그뿐인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커다란 생수병 한가득 약초물과 꼬들빼기 김치까지 챙겨서 내미신다. 마중에서처럼 배웅에서도 한결같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오신다. 얼굴이 밝아지셨다.
오늘 작업이 무사히 참으로 잘 돼서도 기쁘고 뿌듯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마음으로 웃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마음에 일렁거려서 손에 쥐어주신 쑥개떡처럼 오래 따듯했다. 내가 딱 그분의 큰따님과 같은 나이에 울 엄마도 살아계셨으면 그분의 모습을 닮아계셨을 듯싶다. 우리가 가진 손기술이, 우리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보람이고 빛이 아닐까. 눈에 띄지 않는 그늘진 구석을 밝히는 데 손을 보탤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이것은 어버이날 선물인가?
세상이 돈의 논리,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불의에 가끔 분노하고, 불행에 잠시 동정하고 연민을 품기도 하면서. 마음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글 몇 줄 쓰거나 면피해 보겠다고 기부 조금 하거나 하면서. 모르지 않으면서 욕먹을 짓을 일삼는 기업의 물건을 계속 사고, 그 돈의 논리와 힘의 논리에 기대어 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관계를 계속 맺고 적당히 동조하면서. 너무도 오래도록 당연했던 그 논리에 늘 놀아나면서 그래도 믿고 지지하고 표를 주고.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우리네 삶도 바뀌지 않는다고.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빈익빈 부익부의 대물림을 계속하고, 우리도 적당히 못 본 척하면서 바뀌지 않는 삶을 그냥저냥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산다. 아무리 열심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도 인생이 온통 시멘트 바닥에 싱크홀 투성이인 사람들이 있다. 매번 한결같이 염치없이 뻔뻔한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런데도 여전히 그렇게 산다.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마음이 약해서다. 바보같이 착해서 조용히 봐주면서 살아서다. 사람 사이에 끝장을 볼 수가 없어서.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가진 것을 지키려는 힘이 못해도 세 배쯤은 더 강하다는데. 조용히 착한 사람들은 늘 빼앗기고 내어주고도 또 쉽게 봐주고 받아주고 용서하고 잊어준다. 가진 자들이 그토록 쉽게 내팽개친 정의와 희망을 그늘진 곳에서 조용히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지키며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믿고 싶은가 보다. 때로는 이토록 외롭고 고단하기도 한데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