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동심원
가끔 몹시 궁금하고 신기할 때가 있다. 분명 배운 적이 없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수학에서 나오는 도형의 영역인가? 공간지각능력 뭐 그런 건가? 모양과 크기는 누구나 어느 정도 그릴 수 있다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계산하고 감안하는 건 경험과 지혜의 문제인가?
오래된 싱크대 붙박이 식기건조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수납장을 짜 맞춰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역시 배운 적 없이도 알아서 척척 설계도면까지 그리는 사수는 문(門)의 두께까지 계산하고, 양쪽 문이 열리고 닫힐 때 필요한 미세한 유격까지 빠뜨리지 않고 반영한다. 설치할 때 너무 헐거워도 안 되지만, 너무 꼭 맞으면 억지로 끼어넣어야 하고 문을 열 수도 없을뿐더러 얼마 안 가서 비틀어질 것이다. 물론 설치 후 경첩을 조절해 어느 정도 맞출 수는 있지만, 딱 봐도 예쁘고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조수는 아직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가 처음엔 그림만 보면 단순하고 어설퍼 보인다. 그런데, 목수 꿈나무와 베테랑 목수가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수 그린 종이를 들고 사수는 단골 싱크대공장을 찾아간다. 내 눈엔 일차원 평면으로만 보이는데, 고수들은 3D 입체로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나 보다. 척하면 착! 두 목수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찰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리고는 단 몇 시간 만에 완제품을 내어 놓는다. 그럼 또 사수는 직원들 인원수에 맞춰 커피까지 사들고 찾으러 간다.
은근히 이게 정말 중요하다. 말이 통하고 합이 맞는 괜찮은 거래처를 발굴하고 인연을 맺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자 귀한 자산이 된다. 몇 번 작업을 맡기면서 성실하면서도 진솔하게 일하는 모습에 신뢰가 가는 싱크대공장과 유리 공장도 찾고, 최근엔 다양한 작업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전문 인테리어 업체 선배도 생겼다. 사수도 먼저 구체적으로 잘 듣고 잘 묻고, 또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과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는 고수들이어서 고맙고 든든한 인연이다. 거리가 가깝지만은 않지만 단골 공구상도 생겼다. 공구상 사장님이 참 재미있는 것이, 조수가 또 보는 눈이 없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칼날을 골랐더니 왜 쓸데없이 그 비싼 걸 사느냐고 뜯어말리신다. 자기네 가게에서 제일 비싼 칼날이라며 그거 말고 저렴한 국산 사서 실컷 부러뜨리며 맘껏 쓰라고 하신다. 업자 마음은 업자가 안다고 이심전심이다. 우리야 돈 아껴서 고맙지만, 돈 벌 생각이 없으신가? 늘 그렇게 가성비 좋고 합리적인 제품을 권하신다. 그래서 거리가 제법 있어도 일부러 찾아간다.
사수는 모처럼 자신의 마음에 쏙 들게 작업이 잘 되었나 보다. 스스로의 수준기가 어찌나 높은지 좀처럼 드문 일이다. 사수는 확실히 목공을 좋아한다. 유난히 재미있어한다.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어도 머릿속에 그려보고 그걸 그대로 손으로 구현해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 아무래도 사수는 목수의 후예가 맞는 듯하다. DNA에 녹아있다. 여기서 중요한 프로의 조건은 무엇보다 재현성이겠지. 집밥 좀 맛있게 한다고 아무나 식당을 차릴 수는 없듯이 어떤 작업이든 열 번을 하든 백 번을 하든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반복해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꾸준히 오래가는 사람이 적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좋아하면서도 잘하기까지 하려면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그 오랜 시간을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다. 같은 양의 시간이라도 그 시간 속에의 빈도와 밀도가 핵심이다. 방점은 성실한 '꾸준히'에 찍힌다. 그러니 어쩌면 덕업일치는 로망이자 예술의 경지일지도.
목수꿈나무 사수에게 벼르고 벼르던 톱질을 좀 부탁했다. 책상다리를 잘라서 높이를 좀 낮춰달라고. 잘못 자르면 우리 집에서 매트리스 빼고 제일 비싼 가구인 나의 아지트를 망치게 되는데, 나부터도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야 이런 것도 맡기는구나 싶다. (무조건 가격부터 싸다고 내 귀한 집 아무에게나 맡기지 마요, 부디! 배수트랩 하나를 갈더라도 물 흘러내려가는 각도 정도는 생각해서 작업하는 사람에게 맡기세요.) 다행히 단번에 반듯하게 잘 잘라주었다. 끄떡끄떡 흔들리지 않고 수평이 제대로다. 방금 사수에 대한 신뢰도가 1도쯤 상승했다. 무릎이 훨씬 편안해서 자르길 잘했다 싶다. 생활습관도 문제이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쪼그려 앉고 무릎 꿇고는 다반사라 자고 일어나면 정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쑤신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자꾸만 누워있게 된다. 이렇게라도 해서 과연 조금 더 자주 앉게 될까?
최근 사수에게 자주 일을 맡기는 부동산이 있는데, 언제나 앞뒤로 일처리도 명확하시고 솔직하게 이야기도 잘하시는 데다가 이제는 사수에게 먼저 진상고객에 대한 하소연을 할 만큼 신뢰가 쌓인 모양이다. 더 놀라운 건 사수는 아직 그 사장님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단골이 된 다른 아파트 부동산 사장님의 소개로 처음 연결되었는데, 우리를 소개하신 그 사장님은 조수도 직접 얼굴을 뵌 적이 있고 참 괜찮은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양쪽 서로 간에 쌓인 신뢰 덕분인지 건너 건너 만난 적 없는 사이에도 이렇게 허심탄회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역할이나 자리에 누군가를 소개한다는 건 얼마만큼 제대로 알고 믿어야 가능한 일일까? 자칫 잘못하면 연대책임이 될 텐데 말이다. 나 자신이 지닌 신뢰의 동심원을 한 번쯤 떠올려보게 된다. 일로써 물론 실망시킨 적이 없어서도 가능하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에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두 분은 사수에게 일방적인 억지를 쓰거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임대인과 임차인과 사수 사이에서 곤란하거나 번거로운 책임도 미루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셨다. 부동산 사장님까지 끼면 4자 비대면인가? 이분들이 마음에 든 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번 합리적이셨기 때문인가 보다. 무리의 반대말은 순리이자 합리가 아니던가? 그리고 바라지 않으면 그게 무엇이든 고마워할 수 있다. 서운하지 않고.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먼저 더 해주기보다 더 바라는 쪽이다. 사람 마음이 본래 그런 것인지 늘 더 해줘야 그나마 덜 서운해한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런데 이분들은 조금 달랐다. 서운하게 한 적 없는 고마운 분들이다. 조만간 커피 사들고 얼굴 뵈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