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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 찾으니까

아는 것과 하는 것

by 햇살나무 여운


"그래도 우리, 잘 살고 있죠?"


토요일 저녁 9시가 넘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사수가 말한다. 그 말이 어찌나 아련하고 서글프고 어여쁘던지! 선뜻 대답은 못하고 목이 멘다. 고맙고 소중해서 한참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내가 참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더 닦달하거나 요구하지 않아 줘서.


갱년기가 일찍 오나? 요즘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는지 드라마만 틀었다 하면 운다. 소설책을 읽다가도 울고, 그림책을 보다가도 울고. 왜 이래, 미쳤나 봐.


사수는 일요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어나 가족봉사를 간다. 지난주에는 조수도 함께 따라나섰는데 오늘은 도저히 피곤해서 쉬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혼자 보내놓고서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어쩜 저렇게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한결같이 기꺼이 할 수 있을까? 사수는 장애인돌봄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게 막상 나의 생활이 되면 결코 쉽지 않다. 자기돌봄은 도대체 언제 하시려고 늘 뒷전으로 미뤄두시는지 그게 또 속상하고 애달프다. 책으로 읽기는 너무 쉬워도 하루하루를 매일같이 그런 삶을 직접 살아내는 것은 다른 법이니까.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가족봉사를 가면 사수는 가장 먼저 생수배달원이 된다. 매주마다 어김없이 꼬박꼬박 사수는 형님과 함께 마트에 가서 생수를 사다가 나른다. 보통 사람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새벽배송 시키면 되지! 사수의 형님은 정수기물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고, 수돗물은 먹으면 죽는 줄 알고 무서워한다. 모르는 사람이 문 앞에 생수를 배달해 놓으면 그 물에 뭔가를 타서 자신을 도청한다고 의심한다. 날마다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면 환경호르몬이 더 해롭다고 말해도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른 생수를 사다 먹어야만 안심을 하는 것이다. 예전엔 조수가 가끔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준 적도 있지만, 그마저도 뭔가를 넣었다고 의심하며 반기지 않는다. 그냥 그때그때 본인이 먹고 싶은 대로 사 먹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라는 타협점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아픈 거다. "왜 저래? 이상하다.", "도대체 왜 그러고 살아?"라고 여기는 단계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단계도 지나갔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고.


우리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그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과 욕설과 원망을 매일같이 받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온갖 부정과 어둠으로 가득 찬 사람과 한 공간에서 숨 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정말로 절절이 체감한다. 그래서 정작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안 가고 버티는데, 주변 사람들이 병들고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수는 그걸 다 견디며 한결같이 흥분하지도 않고 다독이고 진정시킨다. 또 매일같이 지치지도 않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의 루틴을 수백만 번 되풀이해서 읊어주고 확인한다. 그마저도 세월 속에서 서로 적응한 것일까?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도 못 견디는 관계도 수없이 많은데,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이제 그만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수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형을 감당하고 감내하며 사는 까닭은 사수가 형님에게 유일한 마지막 손길이기 때문이다. 그 손을 놓으면 한 사람의 인생이 그걸로 끝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수 역시 더는 묻지 못하고 지켜볼 뿐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까닭은 이 일이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다니다 보면 알게 된다. 아픈 식구를 품고 사는 집들이 의외로 참 많다는 사실을. 신체적 장애이든 정신적 장애이든 누군가의 돌봄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에 꽤 많다. 집안에서 내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도 만난 적이 있고, 또 어느 집은 아이가 지적 장애를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아이를 방 안에만 있게 하고 방문을 닫아 두다가 우리가 두세 번쯤 더 방문하고부터는 그제야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어두고 아이의 장애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우리들은 막상 그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서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느끼거나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누구나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오히려 자주 마주치고 자꾸 보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질병이나 장애, 불의의 사고나 죽음도 사실은 우리 삶 가까이에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수치스럽거나 자존심 상한다고 여기며 감추거나 회피하기에는 너무도 흔한 일이다.





거실 천장 몰딩이 무너졌다고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을 했다. 먼저 약속이 잡혀있던 집이 때마침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계속 연락이 안 돼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참이었다. 우리가 119는 아니지만, 천장이 무너졌다는데 어서 가봐야지. 하늘이 무너진 게 아닌 게 천만다행 아닌가. 토요일 오후 이제 좀 쉬는가 싶었는데,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인 걸 알기에 이제는 조수도 군말 없이 알아서 따라나선다. 그 사이 조수도 길들여진 것인가?


아파트 동호수만 알면 알아서 찾아가고도 남는데, 의뢰인께서 주차장까지 미리 나와서 길도 안내해 주시고, 짐도 함께 들어주신다. 막상 현장에 당도해 보니 역시나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상태가 더 심각했다. 범위는 두 배쯤 더 넓었고, 지지목도 없는 속 빈 강정에 목공본드 흔적도 없이 순전히 타카핀으로만 고정을 해놓은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차에 여분의 목재가 있어 우선 지지목을 제대로 보강하고 시작하기로 한다. 꽤 창의적인 작업이어서 그런지 자꾸만 목공이 재미있어서 큰일이다.


나무를 자르고 붙이고 하는 동안, 키가 훤칠하신 의뢰인께서 내내 붙들고 떠받치고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신다. 책장에 법과 관련된 두꺼운 책들이 즐비하다. 법 공부 하시나 보다고 했더니, 직업이 법무사라고 하셨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일이 눈에 확연히 띌 정도로 줄어서 많이 어렵다고 하신다. 하긴 요즘 워낙 온라인으로 정보가 다 오픈되고 어플이나 전자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법무사에 맡기지 않고 셀프로 직접 많이 하니까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을 울렸다.


"그래도 정말로 절실하고 꼭 필요한 분들이 찾으시니까요."


그런 분이셨다. 전화통화에서부터도 그랬고, 입구까지 마중나와서부터 작업 마칠 때까지 기꺼이 손을 보태실 때도 그랬고, 작업 중에 장비 소리가 이웃에 피해가 될까 걱정하니 집안에 있는 방석이란 방석은 죄다 가지고 나와서 깔아주시는 모습에서도 그랬고, 이웃끼리 조금이라도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직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공부하고 아는 만큼, 배우고 믿는 만큼 그렇게 행하며 사는 분이셨다.


정말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을 위해 그 마지막 손길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집 천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그런 큰 일을 겪더라도 의외로 사람은 아주 작은 손길 하나에 다시 살 마음을 먹고 일어서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큰 구멍이라고 해서 반드시 뭔가 거창하고 큰 무언가로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굴러다니던 작은 나무토막이 때로는 딱 알맞은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친절하고 다정한 작은 손길 하나에도 무너진 천장을 다시 살릴 수 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거 맞죠?


마지막 실리콘마감까지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
생수배달원이 된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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