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골든 터치

사수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by 햇살나무 여운


"사수는 취미가 뭐예요? 좋아하는 거나 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너무 일만 하는 사수가 걱정되어 물었다.


"택견을 다시 해보는 건 어때요? 좋아했었잖아요."


한때는 자전거도 씽씽 쌩쌩 잘 타던 사람이 이제는 먼지가 뽀얗게 쌓이도록 문 앞에 세워두기만 한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부터 나보다 더 오래 사귄 놈인데, 서툴고 겁 많은 나를 챙기느라 정작 내 앞에서는 한 번도 실컷 제 실력을 뽐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뭇꾼은 나였네. 날지 못하게 발목 잡고 있는 건 나였어.


때로는 의무나 책임 잠시 벗어두고 사수도 홀가분하게 나가서 좋아하는 뭔가를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도 좋으련만. 술담배도 할 줄 모르고, 게임도 안 하고, 쇼핑도 할 줄 모르고, 디지털 기기나 차량용품에도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들처럼 유튜브 쇼츠는 좀 보는가 싶더니 댕댕이나 냥이 영상 아니면 전부 새로운 기술에 관한 영상이다. 사수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늘 괜찮기만 한 사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아주 가끔 산에 가고 싶다는 게 전부다. 때때로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10년 후에는 "나는 자연인이다!"로 살겠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 표정이 자못 진지하면서도 더없이 천진하고 해맑다. 그 '10년 후'가 줄지 않고 작년에도 내년에도 계속 '10년 후'여서 문제지. 진심으로 시골 산자락에 집 한 채 사주고 싶다.


3월을 지나 4월로 들어서는 길목에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다들 모처럼 마음의 빗장을 풀고 지갑도 열고 꽃바람 맞고 콧바람을 쐬러 갔는지 며칠 일이 없다. 사수는 또 기다렸다는 듯이 2박 3일 동굴모드에 들어갔다. 비 갠 뒤 거미가 거미줄을 새로 단장하듯 이번엔 동굴을 온통 시트지로 도배하고 있다. 주특기를 갈아탈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또 재료비 꽤나 들어가겠군.


마음을 먹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해 옮기는 사수의 집요함은 실로 놀랍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든 듯 새벽 3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동굴에 불이 훤히 밝혀져 있다. 기존에 어느 정도 웬만큼 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역을 넓히고 작업 속도를 높이고 디테일과 모서리 마감을 집중적으로 연마하기 시작했다. 문틀과 방문 모서리란 모서리는 다 찾아다니며 혼자서 열심히 레벨업을 해내고 있다. 창고에 넣어두었던 공간 박스를 꺼내다가 새 옷도 입힌 덕에 조수만 득템했다. 안 버리길 잘했네. 사수의 손끝 기술은 아무리 봐도 완도 명사십리의 모래만큼 곱고 섬세하다. 매직 금손! 마이크로 골든 터치!



Only Practice Makes Perfect!


택견을 다시 해보라는 조수의 권유에도 조금 더 이따가 해도 된다고 말하는 사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지금은 잘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잠시 미뤄둔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지겨워졌을 법한 일도 그마저도 재미있어 보이게 한다. 그것이 사수의 진정한 매직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는 사람. 하기 싫은 일까지도 좋아하는 법을 이미 터득한 사람. 하고자 하면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는 사람. 묵묵히 계속 나아가는 사람. 그럼에도 혼자 저만치 멀리 걸어가 버리지 않고 옆에서 나란히 속도와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가는 법을 아는 사람.




시간이 나면 사수는 나가서 움직이는(일하는) 성향이고 조수는 혼자 조용히 잘 노는 집순이 성향이라 이렇게 달라도 살긴 사는구나 싶다. 조수가 사수를 못 따라가니 사수가 조수에게 맞출 수밖에. 조수는 혼자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드라마 이야기를 사수가 돌아오면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럼 또 재미있게 들어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값으로 사수는 조수에게 그날 있었던 새로운 만남을 전해준다.


오늘은 집 근처 성당에 새로 부임하신 젊은 신부님을 만나고 왔단다. 페루에 오래 계시다가 들어오셨는데 성당 내에 숙소가 여의치 않아 가까운 아파트에 사택을 얻으신 모양이라고. 욕실 샤워수전을 교체하고 왔는데, 신부님께서 성당에 카페도 만들어 놓았으니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셨단다.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4층 아주머니께서도 성당에 다니시는데, 가끔 우리에게 성당에 다닐 생각 없느냐고 물어 오신다. 어릴 적 성당에서 신부님과 놀던 추억도 떠오르고, 이러다 조만간 성당에 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조수가 강권하는 드라마를 함께 봐주는 사수는 이 또한 노력일까, 아니면 좋아서 보는 것일까? 요즘 핫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애순이와 관식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드라마 때문에 모든 남편의 기준이 관식이가 될까 봐 걱정이에요."


조수가 밀린 설거지를 하며 말하니 사수 왈!


"관식이는 안 돼. 글렀어. 먼저 일찍 죽었잖아."


그러고 보니 관식이도 울 엄마 돌아가신 나이 때에 죽었네. 사수는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사수가 말하기 전까지는 조수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던 마음까지 세심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역시, 마이크로 골든 터치 맞네.


사수가 되려 묻는다.


"관식이가 행복해 보여? 아내랑 같이 속 터놓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아야지. 같이 오래 재미있게 살아야지."


부디 사수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수는 무슨 재미로 살까? 사수는 행복해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작업 중에도 사수는 늘 조수에게 당부한다. 자신이 없어도 혼자 힘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 하나쯤 익혀두어야 한다고. 그 말이 왠지 짠하고 슬프다. 사수도 너무 잘하는 것만 하지 말고, 의무와 책임만 다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다는 못해도 한두 가지쯤은 더는 미루지 말고 오늘 지금 좀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일 말고 오늘 지금 같이 재미있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며칠 일이 없던 차에 마침 동료 업체에서 협업을 요청해 온 덕분으로 하루 또 온종일 뿌레카로 콘크리트를 부수고 폐기물 자루를 나르고 넝마가 되어 돌아온 사수는, 앞으로도 서로 도움을 요청할 때 부담되지 않도록 하자며 동병상련 디스카운트를 기꺼이 해주고 온 모양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사수님! 그 뜻 존중하고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또한 조수도 바랍니다. 너무 거칠고 험하지 않게요.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안전하게요! 가늘고 길게요, 쫌! 저는요, 가늘고 길게가 더 좋아요.


다음 날 일당을 입금하며 힘들지 않았느냐고, 작업이 좀 많았는데 컨디션 괜찮느냐고 업체 사장님이 물었단다. 본인은 힘들어서 진통제까지 먹고 잤다며. 사수는 거기에 대고 보란 듯이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와이프가 지압해 줬어요!"


"아이고! 부럽다, 부러워!"



아까운 당신.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꼬운 당신. 폭삭 속았수다.



소중한 이가 아침에 나갔던 문으로 매일 돌아오는 것.
그건 매일의 기적이었네.

- 임상춘 <폭싹 속았수다> -



매 순간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그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지금 이 순간 미리 자주자주 나누며 살고 싶다. 오늘 이 말이 나와 당신의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으니.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 여운 《명자꽃은 폭력에 지지 않는다》 중에서



#명자꽃은폭력에지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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