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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 할 때 멈추는 사람

그 큰 마지막 1

by 햇살나무 여운


오늘은 공쳤다. 골프 아니고 오프 OFF!! 사수는 공구리(콘크리트 타설)를 쳤으면 쳤지 공은 안 친다.


사수는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한다. 찾아오는 일이 없지 않는 한 그냥 의심의 여지없이 주 7일이다. 게다가 일요일마다 사수는 교회에 다니듯이 아픈 형님을 돌보기 위해 다녀오는 시간을 어김없이 안배해 둔다. 어떻게 지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는 순례이자 극기일까? 그리고는 가족봉사의 시간 앞뒤로 아침이든 저녁이든 찾아오는 작업은 한두 건이라도 하는 것이 사수의 평범한 루틴이다.


그런 그가 먼저 하루를 쉬자고 한다. 완전한 OFF 말이다. 어디 아픈가? 무슨 일이 있나? 이번 주는 병원 상담이 잡혀있어서 형님에게는 수요일에 가면 된다고 한다. 최근 연달아 계속 일이 꼬이면서 위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긴 했다. 찰랑찰랑 하다가 어느 순간 코 밑까지 위험수위가 가득 채워지면 반드시 한 번 비워야 한다. 한 순간 방심하면 가슴이 철렁할 일이 반드시 생긴다. 진정한 고수는 멈추어 비워야 하는 때를 알아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말로 쉼표를 찍어야 하는 때는 온전히 명확하게 찍는다.


우리는 환기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는 식스 센스도 발달되어 있다. 문제는 분명 느끼고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강력하게 앞서는 욕망이 그것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속삭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뭐 무슨 일이야 있겠어! 바로 그 한 번이 운명을 가르기도 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 기도 폐쇄 시 몸 뒤쪽에서 끌어안고 주먹을 포개어 명치에 압박을 가하는 응급처치법은 '하임리히법'이다 - 식스 센스의 누적과 통계를 누군가가 친절하게 실증하고 분석해서 법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명 1 : 29 : 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장에서 사고나 재해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사수가 지금껏 작업을 하면서 작은 못이나 나사를 300번쯤 떨어뜨렸다고 하자. 어디서 어떻게 흘리고 떨어뜨렸는지 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자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다지 손실로도 인식되지 않을 만큼의 경미한 순간들이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가위나 칼을 몇 번 떨어뜨리기도 하고 나사가 부러지거나 고무링이 찢어지거나 새 제품을 뜯었는데 연이어 불량이나 손상이 발생하거나 하는 일들이 29번 가까이 쌓여가는 것이다. 아차 싶은 순간도 있고, 거 참 이상하네 싶은 순간도 있고, 몇 군데 가볍게 베이거나 까지는 것은 기본이고, 실제로 물리적으로도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한다. 낮은 사다리에서 미끄러지기도 하고, 작업이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 몇 번을 반복하게 되기도 한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다 마침내 그 순간이 온다. 뒷덜미가 쭈뼛 서는, 식스 센스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순간 말이다. 전날부터도 좀 징후가 이상하긴 했다. 싱크대 수전을 교체해 주고 온 집에서 새로 설치한 수전이 뭔가 덜렁거리는 느낌이 든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물과 관련된 작업에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작업하고 거듭 확인하는 사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결국엔 다시 방문해서 의뢰인과 한 번 더 직접 그 앞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설명해 주면서 전혀 아무 문제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저 의뢰인의 과민한 기우였다. 이미 오랜 피로와 스트레스로 지친 상태에서 과민함과 부정성들이 겹겹이 둘러싸이게 되면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집중도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욕심과 조급함이 더해지면 마침내 '그 큰 마지막 1'에 다다르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큰 사고 말이다.


다세대 상가 건물에 센서등 교체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딸이 살고 있는 건물의 주인이신 아버지께서 딸을 대신해 연락이 왔는데, 문제는 작업할 위치의 사진도 없고 출입문 비밀번호도 안 가르쳐 주신다. 따님의 연락처도 줄 수 없고 그냥 몇 호 눌러서 열어달라고 해서 들어가면 된다고, 들어가서 1층과 4층에 불이 안 들어오는 두 곳만 교체해 주면 된다고 한다. 높이가 얼마나 되냐고 하니 별로 높지도 않다고 한다. 그 말을 믿고 가봤더니 층고가 4미터나 된다. 할 수 없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큰 사다리를 가지고 와야만 했다.


건물에 들어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을 확인하고 1층 엘리베이터 앞과 3층에서 4층 올라가는 계단 중간, 두 곳의 센서등을 교체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치는가 보다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다음 날 연락이 왔다. 건물 밖 1층 입구에 한 곳 더 불이 안 들어온다고 한다. 이번에도 따님 말만 전달하신다. 또 이번에도 1층 밖은 별로 안 높다고 한다. 우리는 바보같이 그 말을 또 믿었다. 실제로 지금껏 다녀본 건물들이 모두 입구는 처마가 낮았기 때문에 낮은 사다리로도 늘 충분했었기도 했다. 그래서 자재만 추가로 구입해서 그냥 갔는데, 설마가 역시나였다. 1층 밖 입구도 높았다. 바보 같은 왕복을 또 두 번이나 했다. 이번에는 정말 끝났겠지?


얼씨구! 웬 걸! 그럼 그렇지. 따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불이 들어오는 멀쩡한 등을 갈았다고 했단다. 정작 교체해야 되는 건 1층 모퉁이 구석 분리수거함이 있는 위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야 따님이 찍은 동영상을 보내온다. 어이상실! 작업을 원데이 투데이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설마 불이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확인도 안 하고 멀쩡한 등을 교체했을까? 몇 십만 원도 아니고 단 돈 몇 만 원에 4미터 높이에 목숨 걸고 올라가 사기 칠 게 따로 있지! 게다가 작업 전후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고 입금까지 다 받고 끝났는데 말이다. 따님의 말이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교체한 자리는 불이 들어왔었다고.


사수는 알겠다고 답한다. 그 자리가 아니라고 하시니 따님이 말씀하신 자리에 등을 무상으로 교체해 드리겠다고 하고 또또또 방문을 했다. 그런데 센서등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배가 불러서 곧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타일이었다. 좁은 구석에 타일을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펼치고 진땀을 뻘뻘 흘리며 어렵사리 마지막 센서등을 교체해 주었다. 작업하는 동안 타일이 쏟아져 떨어질까 무서워 시선을 사다리 위 사수가 아니라 타일 쪽에 계속 두고 있었는데, 그 순간 우당탕탕 큰 소리를 내며 뭔가가 떨어진다. 묵직한 전동 드라이버가 4미터 높이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사수의 손이자 육장육부 중 하나와 같았던 전동 드라이버가 사수를 대신해 '그 큰 마지막 1'을 치른 것이다. 전동 드라이버 하나 해 먹은 것쯤이야! 사수가 아니어서, 타일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타일이 위험해 보이니 얼른 손보셔야 할 것 같다고 사진과 함께 챙겨서 알려주는 사수님! 건물주께서 우리에게 타일 보수 작업이 가능하냐고 물어오신다. 이번엔 노 땡큐입니다. 마지막까지 건물주 아버지도 따님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그렇게 끝맺음을 지었다.


높은 곳 사다리 작업은 반드시 두 명이 함께 해야 하는 까닭은 사다리를 붙잡아주고 아래에서 위로 필요한 자재나 도구를 그때그때 올려주는 손발의 역할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추락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지체 없이 신속하게 119를 불러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긴 그렇다. 조수가 아무리 밑에서 사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저 높은 위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수가 떨어지는 사고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사수가 "좀 쉬자!"고 한다. 이 흐름을 끊을 필요가 있다고. 환기가 필요하다. 진짜 바람을 좀 쐬자. 그 큰 마지막 1에 다다르기 전에 300이 찰랑찰랑 차고 29가 그득그득 끝까지 다 찰 때까지 두지 말고, 자주 비우자. 틈틈이 멈추자. 지난번 신호도 그냥 지나치고 달렸는데 별일 없었다고,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오늘은 전동 드라이버가 박살났지만, 내일은 무엇이 박살날지 모른다. 신호위반, 차선위반, 속도위반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제때 알아차릴 수 있게 깨어있으려면 쉼표는 필수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한 칸 띄움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노트북 배터리도 100% 완충보다 85% 정도가 적당하니 더 오래 쓴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은 공쳤다.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우리의 브레이크는 아직 쓸만 하다.





쉬는 날 도끼날을 갈듯 시트지를 연습하시는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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