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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변기를 다시 주워온 썰

집수리계의 만병통치약

by 햇살나무 여운


완벽주의자랑 함께 일하면 솔직히 너무 피곤하다. 주변에서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사수는 완벽을 너머 결벽에 가깝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 같은 업자들 사이에서는 믿고 부를 만큼 일에 있어서 만큼은 아주 그냥 끝장을 본다. 아마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에게서 볼 끝장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지극정성을 다한다고 해도 하늘은 감동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는 모양이다. 99.9%는 온데간데없고 단지 0.1%의 흠결을 찾아내 끝없이 따지고 쉼 없이 달달 볶아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덕분에 결국 조수도 앓아눕고 말았다. 사람에게 들들 볶이고 갈리고 삭아서. 산다는 게 그렇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피해보려고 해도 보고 싶지 않은 끝장도 막장도 의외로 참 흔히 마주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삶이다.


아파트에 변기를 좀 교체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싱크대 배수구와 수전도 함께. 올 가을에 결혼을 앞둔 예비신혼부부가 살 집이라고 한다. 사수 성격에 웬만한 거리는 무상으로 직접 방문 견적을 다닌다. 변기는 몇 군데 금이 가서 위태로워 보였고, 싱크대는 사방팔방 은박테이프를 덕지덕지 덮어놔서 도저히 견적이 안 나왔다. 임대인은 어떻게든 돈을 안 들이고 싶고, 동시에 최대한의 만족스러운 결과를 원했다. 싱크볼 전체를 새로 교체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니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하면서 살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또 찰떡같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수긍하는 사수를 누가 말리겠는가.


차라리 변기는 순조로웠다. 이번엔 적어도 수월하게 착착 진행되었다. 난관은 역시나 싱크볼이었다. 사수가 다른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조수는 짚으로 놋그릇에 광을 내는 마음으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싱크볼에 붙은 은박테이프를 벗기고 끈적끈적거리는 흔적을 지우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요즘은 결혼식 자체를 보기가 드물다 보니 아직은 살림이 덜 들어찬 신혼집이 문득 더 좋아 보였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여백이 많은 빈 집도 꽤 괜찮았는데, 언제 그렇게 그득그득 채워 넣었을까? 그러다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쌓아두고 손도 못 대고 무기력하게 두고 보기만 하는 남의 집 같은 내 집. 그래, 집은 빈 집이 참 좋은데. 일하기에도 참 좋고. 다시 집을 얻고 결혼을 다시 한다고 해도 빈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하염없이 싱크대를 문지르며 지나온 세월동안 묵은 마음의 때를 벗기고 닦으며 광을 내어 본다.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흔적을 모조리 지울 수는 없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집수리계의 만병통치약! 그 이름 하여 WD-40! 집집마다 하나씩은 구비해 두었을 법한 만능윤활유! 정확한 명칭은 녹을 지우는 방청제라고 불러야 한다. 삐그덕거리는 문 경첩에도 뿌려주고, 잘 안 돌아가는 문 손잡이에도 뿌려주고 여기저기 쓰임새가 많다. 끈적거리는 본드 자국에도 제법 유용하게 쓰인다.(물론 무슨 약이든 약물남용은 해로워요.) 조수와 손을 바꾼 사수는 싱크볼을 붙들고 결국 마지막 끝장을 본다. 예비신혼부부를 위한 선물이라며 아주 그냥 신혼집 살림처럼 만들어놓고야 만다. 그런 사람이다. 이럴 때 조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도 식당처럼 차림표나 메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업별로 조목조목 액면가 정가제로 가격이 매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총 다섯 시간의 작업 중에 두 시간을 쏟아부었다. 짜장면에 탕수육 서비스가 웬 말인가! 예비신부가 환하게 웃는다. 너무 좋다며. 그래, 그러면 되었다.




또 다른 집에서 변기와 수전을 전체 교체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청약으로 운 좋게 당첨되어 임대 놓았던 아파트인데 이번에 세입자가 나가면서 올수리를 하고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제품도 직접 매장에 가서 모두 골라 놓았다고 사진과 가격표를 보내왔다. 전등 몇 곳은 서비스로 해달라고까지 한다. 너무나 거침없이 일사천리로 착착착 해달라고 해서 이쪽으로 아주 잘 아는 사람인가 보다 했다. 변기는 막상 가서 보니 예상보다 멀쩡했는데, 남이 쓰던 변기라 더러워서 쓰기 싫다는 것이다. 집주인 마음이고 집주인 돈이니 그런가 보다 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위치도 좋고 살기도 좋아 보이고 7년 사이 두 배가 훌쩍 넘게 아파트값이 올랐다는 말에 살짝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다. 두 배라고 하면 편의점 '원 플러스 원(1+1)' 상품처럼 흔하고 익숙해 별것 아니게 다가오지만, 1억이 2억 되고 10억이 20억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뭐든지 가장 먼저 간절히 마음으로 원해야 한다는데, 부자가 되는 길은 책으로 읽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그 맛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영영 와닿지 않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수동팝업



샤워기는 거실과 안방 욕실 두 곳 모두 해바라기 수전으로 고르셨다. 보통 욕조가 있는 곳은 기본 높이가 있어서 해바라기 수전은 잘 설치하지 않는데, 거기서부터 뭔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세면대 수전을 교체하려고 보니 기존에 설치된 팝업이 옛날 방식의 수동 팝업이라 집주인이 고른 수전과는 호환되지 않는 제품이었다. 수전 뒤쪽에 쇠막대를 꽂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제품이어야만 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팝업과 배수구 전체도 같이 교체하거나, 수전을 다른 것으로 다시 찾아와야만 했다. 집주인은 사수의 설명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더는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다고만 했다. 제품을 알고 고른 게 아니었다. 그럼 일단 최대한 비슷한 가격과 디자인으로 수전만 다시 찾아서 교환해 오는 쪽으로 해보겠다고 사수가 답했다.


원피스 일체형 변기
새로 설치하는 변기는 밑모양이 둥글고 좁다


수전은 미뤄두고 변기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안방의 변기를 뜯는데 물통 부위와 양변기 본체가 한 덩어리로 붙어있는 원피스 타입의 변기였다. 조수는 정말 변기는 더는 안 하고 싶다. 원피스 타입은 더더욱 그만하고 싶다. 냄새나고 더러워서가 아니다. 사수의 허리와 무릎이 꺾이고 닳는 걸 보는 게 너무 속상해서다. 사수가 변기를 들 때마다 조수는 마음이 내려앉는다. 변기 하나를 설치하고 폐기물 버리는 데까지 최소한 열두 번은 변기를 들었다놨다 해야한다. 얼마나 거대하고 육중한지 조수가 아무리 거든다고 해도 매번 그걸 드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문드러져 삭는다.



겨우겨우 헌 변기를 드러내고 새 변기를 앉혔는데 아뿔싸! 물통 뚜껑이 안 들어간다. 기존 변기는 낮은 원피스 타입이었고, 집주인이 새로 사 온 변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투피스 타입이었다. 게다가 변기 안쪽 배관과 연결하는 부위에 정심을 앉히려고 보니 바닥타일을 덧방한 흔적이 있었다. 바닥도 높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변기 뒤편의 젠다이 부분이 틈이 없어 걸린 것이다. 바닥 타일 인테리어를 했다는 말도 없었을뿐더러 욕실구조도 변기 형태도 그 무엇도 제대로 모르면서 집주인은 그저 가격 착하고 예뻐 보이는 것으로 무작정 골라온 것이다. 너무도 당당히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길래 제대로 묻거나 확인하지 않고 진행한 우리의 착오도 있었다. 그냥 방문견적을 했었어야 했는데... 별수없이 한 번 앉힌 변기를 다시 뜯었다. 그대로 또 들어다 거실 욕실로 옮겼다.


하필 또 그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끊임없이 울린다. 지난주에 수전을 교체해 준 집이었다. 그쪽도 수전을 본인들이 직접 다 구해놓고 설치만 요청했었는데, 이제 와서 수압이 왜 그러느냐며 사수에게 따진다. 아무것도 손댄 것 없이 사다 놓으신 수전만 교체해 드렸다고 해도 물 나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은 물을 받아서 퍼서 쓰는 스타일인데 바쁜 아침에 시간도 없는데 어느 세월에 물을 받겠느냐는,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그 하소연을 사수는 몇 번이고 한참을 들어준다. 게다가 수압 조절하는 법까지도 (아저씨께 이미 설명드렸었지만) 다시 또 거듭 차근차근 설명드리고, 그 똑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휴대폰 속 그 여성의 목소리는 마지막 무서운 말을 남기고 끊는다. 궁금한 게 생기면 또 전화할 테니 받아달라고. 부탁한다고. 조수는 그 옆에서 제발 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새로 이사 간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얘기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사수 키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이번엔 거실 욕실에 변기를 뜯는데 얼마나 단단히 붙여놓았는지 안 뜯긴다. 보통 변기 마감은 백시멘트나 실리콘으로 하는데, 이 변기는 자세히 보니 딱딱하게 굳는 경화수지 줄눈재로 붙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바닥 타일 시공을 하면서 되는대로 그냥 앉힌 모양이었다. 온갖 힘을 다해 겨우 뜯고 보니 역시나 속이 엉망이다. 변이 샜다. 그 와중에 또 물청소를 하고 일단 안방에서 옮겨온 새 변기를 앉혔다. 다행히 여기는 물통 뚜껑이 닫힌다.


이미 이야기가 길어졌으니 몇 번 반복된 중간과정을 생략하기로 한다.


우선은 급해서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수전과 변기를 교환하기 위해 서둘러 매장으로 향한다. 퇴근시간 5분을 남겨두고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셀프로 기꺼이 짐도 내려다 놓고 거듭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대체할 물건을 찾는다. 집주인의 "알아서 해달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최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적당한 제품을 골라 다시 서둘러 아파트로 향했다. 다음날 일정도 있어서 어떻게든 오늘 안에는 끝내고 싶었다. 변기를 설치하고 세면대 수전 두 곳도 마저 교체하고 서비스로 봐달라던 전등까지 체크하고 집에 돌아오니 한밤중이다. 양변기는 3천 원! 편의점에서 폐기물 스티커까지 구매해서 붙이고 버리고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휴대폰이 울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아무거나 골라오셨던 그 집주인이다. 대뜸 화장실 바닥 타일이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모든 변기는 뜯으면 자국을 남긴다. 사람도 어느 자리든 잠시만 머물러도 흔적을 남기는 법인데, 하물며 그 육중한 변기가 한자리에 8년을 앉혀 있었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기를 바라다니. 자기가 어떻게든 흠 없는 집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쓰는데, 도저히 타일에 변기 자국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왜 변기가 모양이 다르냐며. 본인은 몰랐단다. 본인이 직접 두 발로 매장에 가서 그 수많은 변기들 사이에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셨는데 말입니다. 그것을 바로 시치미라고 하는 것이지요. 제품을 잘못 골라와서 두 번 세 번 그 힘든 작업을 다시 하게 하고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게 만든 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데 왜 자기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설치를 했느냐며 절대 그 꼴 못 본다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아침부터 계속해서 세네 번 전화를 해댄다. 그걸 어떻게 보고 사느냐고. 그 눈곱만 한 흠결이 사람을 잡는다.


사수는 오전 내내 기존 변기 모델을 찾아 본사와 대리점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이미 단종이라 어느 곳에서도 재고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사수는 방법이 없으니 어제 버린 그 변기를 다시 주워다가 그대로 제자리에 복원해 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걸로 마지막이면 좋겠다. 이제 정말 변기는 그만합시다. 수전도 그만합시다. 아무리 해줘도 본전도 못 찾는 그놈의 것!


버린 변기 주워다 원상복구

다시 주워온 변기에 눌러붙은 변을 닦으며 깨닫는다. 똥독이 무섭다던데 아니다. 사람 독이 제일 무섭다. 사람이 갈리고 삭는다. 똥이 더럽다던데 아니다. 돈이 제일 더럽다. 맑은 담수에서 도를 닦는 이무기마냥 밤늦게 욕조에 몸을 담그며 세상 온갖 찌든 때를 정화시키는 사수는 한번 들어가면 감감무소식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걱정되어 한번씩 문을 두드려 본다. 그대로 용이 되어 승천할까 겁난다. 이틀 내내 비가 온다. 5월인데 주말마다 비가 온다. 원래는 동료 업자와 함께 공원 야외 작업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이틀 내내 비가 와서 미뤄지면서 이 꼬이고 꼬인 덫에 걸려든 것이다.


아무래도 집은 조금은 빈 집이 좋고, 사람은 빈 배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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