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와 태도
사수와 함께 타일 시공 교육을 들으러 대전까지 다녀왔다. 지난번 필름 시공 현장 참관을 주선했던 인테리어 사장님께서 인근 지역 동료 업자들을 초대해 타일 강의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멀지 않은 거리에 소정의 교육비만 내고서 현장경험이 많은 고수의 노하우를 가까이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좋은 기회였다.
사실 굳이 조수까지 갈 필요는 없었는데, 귀한 주말 시간 쪼개어 후배들을 위해 일부러 자발적으로 마련해 준 자리에 신청자가 적어 사수가 함께 가자고 청한 것이다. 마침 바로 얼마 전에 타일 작업도 했던지라 앞으로를 위해 배워두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날씨도 좋은데 여차 하면 딴 길로 샐 궁리를 하면서 룰루랄라 마음은 이미 콩밭에, 아니 꽃밭에 가 있는 조수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가볍게 비타500 한 상자를 사들고 교육장소에 도착해 보니 예상보다 신청자들이 많았다. 서로 쭈뼛쭈뼛 몹시도 어색해하는 아저씨들로 크지 않은 사무실이 가득 찼다. '앗싸! 나는 서 있을 자리가 없네.' 조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당연히 여자는 나 혼자 뿐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곳에 끼어있는 것이 그분들께는 아무래도 불편감을 드리는 것 같아 얼른 자리를 비켜드려야만 할 것 같았다. 사실 몹시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사수와 조수는 피클이 되어 있었다. 피곤에 절여져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몰골이었다. 입도 다 부르트고 눈도 잘 떠지지 않을 만큼 고단했지만, 지난번 버린 변기 원상복구사건의 여파로 환기가 절실하기도 했다. 그래서 흐름을 끊고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일부러 움직여 나선 것이다.
그래도 교육비를 내고 참여는 했으니 처음에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눈 후, 대전에서 그 유명하다는 성심당 빵도 나눠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여러 다양한 도구와 재료들도 살펴보고 가장 먼저 준비된 시연은 타일 절단이었다. 사수가 늘 익숙하게 해 오던 작업이고, 조수도 사수를 도우며 직접 타일을 잘라 본 경험이 있어서 다들 그 정도는 그냥 웬만큼 쉽게 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배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렵지 않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듣는 것도 들은 대로 행하는 것도 잘 되지 않고 어색해 보였다. 물론 누구나 처음이 있고, 초보자의 마음으로 배우러 온 것이니 서툴고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뭐랄까? 매우 경직된 태도랄까? 인사를 나눌 때도 그랬다. 누군가는 먼저 다가와 인사도 반갑게 나누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네는 인사만 무뚝뚝하게 받고 목석처럼 가만히 서계시는 분도 계셨다. 새로운 배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태도에서도 그 결은 고스란히 묻어났다. 물론 나이 차이도 있었겠지만, 그곳에서 적지 않은 나이에 속하는 사수도 있었으니 꼭 나이때문만은 아니리라. 끊임없이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펼쳐야 하는 집수리 현장의 특성상 유연한 소통 능력과 받아들임의 자세가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자리였다.
말 그대로 딱딱한 타일 같은 사람이 있다. 정형화된 크기와 모양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사람 말이다. 겉으로는 매끈해 보이지만, 휘어지지 못하고 잘 깨지는 사람. 생각과 마음이 경직되면 몸짓도 손길도 말투도 경직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데에도 버퍼링이 오래 걸린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겨낼 것이다. 새로운 그 무엇도 배어들지 못하고 당사자도 힘들고 그걸 지켜보고 겪는 주변 사람도 참으로 버겁고 힘들 것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몹시 답답해졌다. 갑자기 몸도 마음도 스트레칭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은 평수 아파트에 걸린 화려한 샹들리에 같은 사람도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을 뽐내느라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혼자서만 잘나고 모든 걸 내려다보고 알고 있는 비싼 몸이라는 듯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꼴이라니! 자신이 미성숙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걸 모를까? 겨우 남아있던 마음 한 톨마저 싹 사라지고 싶게 만드는, 참으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 경험으로 쌓이고 몸에 밴 습관과 태도로 그렇게 드러나는 사람은 당장 앞에서는 그러지 않은 척 전혀 다른 거짓말을 내뱉을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일과 관계에 직면했을 때는 오래가지 못하고 본래의 태도와 습관을 그대로 금세 들키고 말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된 태도와 닫혀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하루아침에 쉽게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걸 바꾸려면 살아온 만큼의 시간 동안 더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아래로 보는 듯한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이 구제불능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참 답답하고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이번에 여러모로 체감했다. 하물며 또 그런 사람과 함께 현장에서 매번 부딪혀 일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막막하기까지 하다.
전문적인 분야의 새로운 정보나 기술은 본인이 다 갖추고 있지는 못해도 더 잘 알고 더 잘하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서 믿고 맡기면 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기르고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태도, 최소한 상대방을 인정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지니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내세우지 않고 삼가려는 겸손한 태도를 지닌 사람과 일하고 싶다.
아직 도구나 재료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나는 실리콘 같은 사람이 좋다.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물에도 강하고 열에도 강하다. 자신을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모든 곳에 다양한 쓰임새를 지닌다. 다른 존재들이 각자 다 자리를 잡고 나면 맨 마지막에 등장해 말끔한 마감을 담당한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적재적소에 자세를 낮춰 메꾸고 잇고 채워 서로를 붙잡아 준다. 매우 세심해서 가늘게도 쓰이고 굵게도 쓰인다. 뻑뻑한 자리에 다른 존재가 잘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 때 윤활제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동시에 잘 붙어있도록 본드 역할까지 겸한다. 이토록 꼭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도 심지어 그 값도 착하다.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변함없이 책임을 다한다.
오늘 교육 참관하길 참 잘했다. 제발 눈을 크게 뜨고 제대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