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달인, 생활지원사
조수는 또 한 번 놀람을 경신했다. 곰보자국 가득한 세면대를 받아 안은 사수는 며칠을 고심하고 준비한 끝에 매끈한 피부로 되살려냈다. 프로는 그런 것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돈값을 해내는 것! 남의 돈 무서운 줄 아는 것! 한 번 실패하고 돌아오더니 장비를 추가로 들여와 다시 시도한 끝에 결국 해냈다. 해놓고도 결과물이 성에 안 찬다고 난리다. 조수의 눈엔 아무리 봐도 감쪽같은데, "내 피부도 이렇게 좀 해주지?!" 사수의 집념에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았단 말인가. 이는 필시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걸 왜 해?!
솔직히 말해서, 찾으면 방법이야 없지 않겠지만 실패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어렵고 까다로운 일은 제발 그만 맡을 수는 없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특수한 상황을 위한 새로운 재료와 장비도 들여야 하지만, 아무리 잘해도 본전도 찾기 어려운 일임이 자명하다. 그냥 새것으로 교체하는 쪽이 훨씬 더 단순 명확하고 손도 덜 가고 실패할 위험도 적다. 그러나 사수는 그 까다로운 일을 또 맡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까다로운 일을 해결해주다 보면 점점 더 까다로운 일을 스스로 불러온다. 남들은 못한다고 안 해주는 일이 길을 찾고 찾다 결국 사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까까불인 덕분에 꼬꼬무이기도 하겠지만. 또 그 덕분에 조수는 안 그래도 튀어나온 입이 점점 더 투덜이가 된다.
돈만 보면야 답은 뻔하다. "그 일은 못 합니다, 안 합니다."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사수는 돈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보는 사람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 더 돌아보는 그 마음 때문에 오늘날에 으르렀다.
조수의 주변에 꼭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콩나물값 2천 원을 아직 못 받았어요."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ㄱ 대상자 어르신께서는 "줬는디!" 답하신다. 그 무해하고도 확고한 어르신의 대답에 2천 원어치 웃음을 얻었다.
"선생님, 나 빠마하러 미용실 가요. 오늘 안 오셔도 되요잉!"
평소 살림도 말끔하신 ㅅ 대상자 어르신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전화로 오늘의 귀한 스케줄을 미리 알려 주신다. 오후쯤 한 번 더 전화통화로 안전한 귀가를 챙기면 될 일이다.
"ㅇ 대상자 어르신께 덜 미끄러운 욕실 슬리퍼를 새로 사다 드려야 하는데..."
장을 보기 위해 휴일 마트에 들른 길에도 잊지 않고 챙긴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춘 후 독거노인 생활지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 ㅁ 씨는 이제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다. 혹한기와 혹서기에는 주말 휴일 가리지 않고 안부전화를 돌리는 것은 기본이다. 퇴근도 없이 계속 근무하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돌봄과 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대상자 어르신과 그 길고 긴 두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하니 "특별히 별 얘기 하는 거 없는디." 하면서도 "어르신, 보일러는 잘 돌아가요? 이제 겨울인디 미리 한번 틀어봐야 되요잉." 하고 챙긴다. 어둡고 침침해진 어르신 눈에는 잘 안 보이는 가스레인지 아래 구석구석도 닦아드리고, 문고리도 고쳐드리고, 형광등도 갈아드리고, 청소하고 나서 아직 어르신보다는 한창 더 젊은 손목 조금 더 써서 걸레도 빨아드리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들어드릴 뿐이라고. 그러면서 전동 드라이버도 사고 사다리까지 샀다고 말한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일이다. 업무일지에 시늉만 해도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마음과 행동이 구분짓기 어려울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게 체화된 돌봄의 달인들이다.
해는 이미 짧아져 일찍 캄캄해진 저녁 인근 아파트 철물점 소개로 한 어르신께서 연락을 해오셨다. 변기에 물이 안 나온다며 부품은 사다 놓았으니 교체만 좀 해줄 수 있느냐고. 멀지 않은 거리라 사수는 미루지 않고 바로 그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사수의 원칙 하나는 "물과 똥은 미루지 않는다!"일지도 모르겠다.
10여년 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서 가장 비싼 중심가였던 곳인데, 이제는 그 번화하던 흐름이 신축 아파트와 상가들 중심으로 이동해 빠져나가고 구 중심가가 되었다. 그곳에는 화장실이 한 칸인 작은 평수 아파트에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집만 낡는 것은 아니다. 도시도 나이를 먹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세월을 통과해 대부분의 사람이 빠져나간 집과 도시는 묘하게 닮았다. 그곳에 홀로 남겨진 사람 또한 허름하고 소슬하다.
변기를 살펴보니 내부 부품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연결된 수도 앵글밸브가 문제였다. 세월이 말해주는 듯 살림살이 대부분이 낡아 있었다. 사수는 조심스레 변기를 손봐드린 후 딱히 부품이나 크게 시간을 들인 것이 없다며 그대로 물러나려고 하는데, 어르신께서 그런 법은 없다며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 건네주신다. 가면서 음료수라도 사 마시라며. 늦게까지 찾아와 고쳐줘서 너무 고맙다고 문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하신다. 저녁이 늦어진 우리는 그 만 원을 감사히 기쁘게 받아들고 가까운 마트 마감세일을 향해 또 달린다. 20프로 세일이 붙은 참치뱃살초밥을 입안에 구겨넣으며 조수가 외친다.
돌아보는 사람이 결국 돌본다. 집을 돌보고, 사람을 돌보고. 남들은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할지 몰라도 자꾸 보여서 마음에 걸려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신과 이웃을 한번 더 돌아보는 사람. 덕분에 누군가는 산다. 사람이 산다. 살아난다. 그곳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