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사람, 받는 사람
평소 친분 있게 지내는 T 형님이 있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사회생활 경험도 많으시고 합리적인 성격에
인품까지 좋으셔서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이라 생각하고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
형님은 하나 있는 자녀가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이번에 취업까지 할 정도로
다 키우신 터라 바람 잘날 없는 회사 생활에 지칠 만도 하실 텐데 아직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다.
안산술공방을 오픈하고 사진 작업을 바쁘게 하던 어느 날 저녁,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저녁 식사나 하자며 공방에 들리셨다.
깻잎에 석쇠 위에서 구워진 노릇노릇한 바다 붕장어와 생강편 몇 개를
올려 입에 넣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서 물었다.
'형님, 저번에 미국 다녀오신다고 하셨는데 잘 다녀오셨어요?'
'그럼, 잘 다녀왔지. '
'이번에 대학교 졸업해서 취업까지 하고 나니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고 정말 개운하네.'
'갸가 월급 받았다고 우리 부부한테 저녁 식사를 사줬는데 기분이 참 묘하데.
여태 동안 내가 자식새끼 밥 사 주다가 자식한테 밥을 얻어먹으니깐 말이야 허허'
형님이 이제 자식 교육은 다 끝이라면서 밝게 웃으신다.
자식 교육의 완성에서 오는 해방감과 목표 달성 후 오는 허탈감,
그리고 자식이 품에서 빠져나갔다는 기분에서 오는 허전함도 느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축하드려요. 이제 결혼만 시키면 되는 거네요? 하하'
'그러게 말여. 이게 끝이면 얼마나 좋겠어'
'형님, 옮기신 회사 생활은 하실만하세요?'
'아이고, 말도 마. 힘들어 죽겠어' 라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T 형님은 해외 마케팅, 해외 영업을 많이 하신 분이다.
한 2년 전쯤인가 서울 근교의 벤처단지가 모여있는 곳에 있는 어느 회사에 취업을 하셨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 한 두 개 정도는 생기는 데
세계 구석구석 안 다녀보신 곳이 없는 당신은 얼마나 많겠는가.
형님이 그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 회사는 뚜렷한 매출을 견인하는 주력 품목이 없었다.
매출을 내기 위해 바이오(BIO)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대표는 애가 탔는지 형님한테 눈치(?)를 주고 있었다.
어느 날 회의 석상에서 회사의 대표가 말했다고 한다.
'고액의 연봉을 주고 Y대를 졸업하신 분을 모시고 왔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
고액의 연봉을 주고 모셨어도
'고액이라니? 내 급여가 기껏 6~7천만 원인데 고액이라고?
은행권 신입 급여가 5천만 원이고, 대기업 평균 급여가 6~7천만 원이고,
내 나이, 내 경력 급여가 1억 2~3천은 넘는데.
난 그 정도의 절반만 받고 와서 9시 출근 6시 퇴근도 아닌
8시 출근 8시 퇴근 아니 그 이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데 어찌 나한테 그런 말을...'
형님은 무척 서운하셨다고 했다.
주력 제품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 들어온 지 몇 개월이나 됐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모른 체하고 계속 버텼지.
버티다 보니 이번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200억짜리 계약을 성사시켰더니
지금은 눈치도 안 주고 있을 만해. 허허허'
회사 대표의 비수를 꽂는 말에 어찌 자상을 입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직 졸업 안 한 자식 생각에 버티고 버텼으리라.
코로나가 세계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고 돈의 흐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그래도 이 회사는 '천운'이 있었나 보다.
형님이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버텨줬고
형님이 그 자리에서 직원들을 다독이며 준비를 해왔고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큰 계약을 할 수 있었으니깐.
회사가 큰돈을 벌었다고 해서 형님한테 별도의 큰 성과급을 줬을까.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회사는 그동안 그런 일을 하라고 급여가 나갔다고 말할 것이니깐.
난 걱정이 된다.
한 번 돈 맛을 본 회사는 큰 매출이 주는 안도감과 달콤함에
계속해서 더 큰 매출 계약을 만들어주길 원할 테고
형님이 달콤한 열매를 따줄 것을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형님이 원하는 대로 여러 방면에서 투자를 해주겠지만 경제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밸런스 문제,
이 둘이 늘 같거나 그 이상일 수는 없다는 논리를 그 회사 대표가 이해하고
형님을 믿고 언제까지 품어줄 수 있을까.
사실, 형님도 이미 알고 있다.
계속해서 그런 행운이 있어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형님은 두 번째 계획, 세컨드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지겹다.
내가 언제까지 남이 주는 돈을 받으면서 살 거야?
형님의 바람처럼
그리고 모든 계획들이 준비하고 있는 형님을 찾아왔던 것처럼
다시 또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형님의 세컨드 플랜이 성공하고, 세컨드 라이프도 성공하길!
브라보 T형님! 브라보 유어 라이프!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