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팔면 얼마?
나를 거기에 팔아넘기겠다고???
한 10년 전쯤 이야기다.
G는 집이 대전으로 나보다 나이가 5살 많은 사람이다.
임플란트 제조사 OOO의 FDA(미국 식약청)의 국내 감사 업무를 지원해줄 때
나와 함께 온 미국 FDA 심사관을 소개하면서 G는 공장장으로 나와 안면을 텄을 뿐
직접적으로 G와 같이 업무를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G와 같은 아파트를 썼던 까마득한 내 후배를 통해서,
G와 실무를 같이 했던 나보다 두 살 아래 OOO의 연구소장을 통해서,
대충 G가 어떤 분류의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업무가 많은데도 팔자 좋게 넓은 임원실에서 화초 위 먼지를 닦고 있었다는 이야기.
회사에서 지원하는 기숙사형 아파트를 같이 사용하면서도 아들뻘 되는 직원에게
따뜻한 밥 한 번, 술 한 번 안 사줬다는 이야기. 더운 여름에 혼자서만 에어컨을 썼다는 이야기.
내겐 G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이기심이 강한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G는 그 회사에서 해고됐다고 들었다.
G가 잘못하기도 했지만 OOO사의 최대 리스크인 R 대표의 독특한 관심법도 한몫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아이고 그 양반이 또 그랬어?' 라며 웃고 말았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카톡으로 G가 명절 잘 보내라는 GIF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감사하다고 답장을 했다.
다음에 올라오시면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G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전 집에서 서울에 일이 있어 들렸다면서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했다.
한 잔 하자고 한 이야기가 이렇게 빠르게 성사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기에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인덕원역 근처에서
막걸리 두어 병에 따뜻한 모둠전을 시켜서 함께 가볍게 한 잔씩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조금 흐른 뒤 G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전에서 헤드헌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독립적 하는 것은 아니고 규모가 있는 'OOO서치'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의아했다.
G의 전공이나 경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G는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소개해줄 만한 인력풀이 없었다.
의아했지만 열심히 하시라고 응원드린다고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박사 님. 용인에 있는 OOOOO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주겠다는데 추천해도 될까요?'
네??!!!
황당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첫째, G가 말한 회사는 업계 평이 최악이었다. 나는 그 회사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둘째, 내가 지금 있는 곳을 그만두고 옮겨야 한다면 동종 상위 레벨로 가야 하는데 그가
제안한 레벨은 이종 하위 레벨을 제안한 것이었다.
셋째, 연봉은 무조건 맞춰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보아 이 회사에서 필요한 인력을
모셔오면 헤드헌터가 받는 수수료가 연봉의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30%를 받게 된다.
물론,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만약, 내 연봉을 1억에 맞춰준다면 그는 최하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사에서는 헤드헌터에게 주는 수수료도 지출 비용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의 범위는 한계선이 없게 된다.
일은 더 편하고 대우가 더 좋은 곳이라면 잠깐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G가 제안한 내용은 생각 자체를 할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정리가 됐다.
G가 돈이 급하구나.
돈이 급해서 당장 큰 수익이 들어오는 고급 인력을
끌어당겨 그 회사에 넣어줘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인력풀에서 그 같은 고급 인력은 없고
얼마 전에 같이 막걸리 먹었던 내가 생각났나 보다.
고민하다가 내가 생각났나 보다.
나를 잘 설득하면 내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 예상하고
'인센티브'니 '성과보상금'이니 '직급', '차량 지원', '법카 지원' 등
일반 병원에서는 병원장급이나 부원장급 교수들에게만 지원되는
옵션들까지 꺼내서 말을 했다.
G의 말을 들을수록 결론이 났다.
그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만하여 그 회사의 주요 정책을 의결할 수 있는
직급과 조건으로 유혹을 해 일단 입사를 시키고
내가 얼마나 힘들지는 관심 밖이고
G는 내 연봉에 맞는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싶다는 게 G의 속셈이었다.
No, Thanks. 단 칼에 거절했다
G는 나를 계속 설득시키려고 말을 계속 건넸다.
듣고만 있다가 G에게 말했다.
G가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저 팔아서 부자 되고 싶으세요?
G가 당황했는지 아무 말을 못 했다.
내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무리 급해도 다른 데서 찾으셔야지요.
저한테 이러는 건 실례 아닙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한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면 소개료를 준다고 했다.
이 말에 더 기분이 나빴다.
내가 무슨 '신종 인신매매 중개인'인가?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선생님. 저한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이를 지켜주던 '적정한 거리'가 있었는데
지난번 술자리로 '적정한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으로 G가 오해하신 것 같다고.
'각자도생'으로 그 바닥에서 살아남으시라고도 모질게 말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경력자들께서는
공개된 이력서를 보고서 연락오는 헤드헌터에 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정하고 좋은 경력과 인력풀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좋은 제안, 나쁜 제안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시길 바란다.
제안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시길 바란다.
수년이 흐르는 동안 G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최근에 문자 한 통이 왔다.
그동안 암에 걸려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와서 치료와 회복을 같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헤드헌터 일을 조금씩 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 무리수를 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연락을 드린다고 했다.
나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 지나 간 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건강 관리 잘하셔서 공방 오셔서 술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적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친구사이, 부부 사이, 자식 사이, 동료 사이, 친척 사이, 직장상사, 직장 후배 사이에도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한데 가끔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거리 계산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싶다.
이미 G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서 거리를 뒀었는데
약간의 틈으로 G가 들어와서 내 경력을 자신의 실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게 씁쓸했다.
그날 이후 G의 카톡을 포함한 모든 연락처는 삭제했다.
부디 건강 회복에 집중해서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사람, 자기편을
이제부터라도 한 명씩 한 명씩 만들어보려 노력하는 편이 G의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잘해주면 넘어서고
못해주면 돌아서는
인간관계 사회생활
이제 그만하고 싶다. 진심.
피로가 쌓인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 1시에 소주가 당기면 어쩌란 것이냐.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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