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복 입은 Y

그냥 알 거예요

by 이정욱 교수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O월 O일 O시부로 압수 수색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모두들 지금 책상에서 손떼시고 아무것도 손대지 마시고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나서 출입구 앞으로 모여주세요.'


경기도 A시에 있는 모 회사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Y 과장의 책상에 있는 모든 서류들을 파란색 플라스틱 상자에 쓸어 담고

능숙한 솜씨로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을 챙겨서 담아나갔다.


Y과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 회사 쪽으로 연락을 했고

그 회사 부사장을 통해 전반적인 내용을 들었다.


Y 과장이 이전 직장에서 누나의 남편인 매형과 사업을 같이 운영했는데

매형이 회사 법인 공금을 횡령했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모든 책임을 매제에게 뒤집어 씌웠다고 한다.


이전 근무지 회사의 일로 현재 근무지 회사를 압수 수색하는 게 맞아요?라고

물었지만 사건의 깊은 내용까지 내가 파악할 수는 없었다.


대체 매형이 그러는 동안, 누나는 그러면 뭘 했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심난한 부사장한테 그렇게까지 시시콜콜 묻고 싶지도 않았다.

설령 내가 묻더라도 그가 대답을 해줄 만큼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 뻔했다.


초등학교 두 딸의 아빠인 Y 과장이 구속될만한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Y 과장은 구속되었다.


Y 과장이 하던 업무는 다른 담당자가 배정받았고,

우리 쪽과 공동으로 진행하던 업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리셋(reset) 상태가 됐다. 당황스러웠다.


내 평생 주위에 있는 지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기에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Y 과장이 심각하게 걱정됐다.


난 연구소의 대표 자격으로

Y 과장은 그 회사의 대표 자격으로

함께 오사카로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도 있고

미팅이 끝나고 같이 맥주도 같이 한 잔 하는 사이인지라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구속된 그를 한 번 만나보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일 것 같았다.


어느 날 물어물어 그가 수감되어 있는 경기도의 한 교도소에 면회를 다녀오기로 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교도소의 면회실은 은행 창구처럼 접수 티켓을 뽑으면 번호가 뜨고

대면 접수가 진행되는 (코로나 이전) 시스템이었다.


Y 과장의 이름을 대자 '수감번호는 모르세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당연히 모른다고 하자 눈으로 명단 리스트를 훑어 내려보던 직원이 말했다.


'방금 전에 다른 분이 면회 신청하셨네요. 그분들하고 같이 들어가세요.'라고 한다.


'네? 그분들이 누군지 알아야 같이 들어가죠.'라고 묻자.


깜짝 놀랄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건...
그냥 알 수 있을 거예요.



'신분증 주시고 여기 인적사항 적어주세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알 수 있을 거라니.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심정으로 대기실에 앉아있는 접견 신청인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Y과장 와이프가 왔다면(난 제수씨 얼굴은 모른다.) 애들을 데리고 오진 않았을 테고

부모님이 왔다면 혼자 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을 하며 둘러보니

접수담당자의 말처럼 내 눈에 신기하게도 그분들이 보였다.


그분들께 다가가 물었다.


'혹시 Y과장 면회 오셨어요?'

'아이고 맞아요.'

'네, 지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랑 같이 들어가시죠'



Y 과장은 수척해진 얼굴에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평소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와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다니던 그를 이런 모습으로 마주치니

오지 말걸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말씀을 듣고 난 후 내 차례가 되자. Y 과장에게 말했다.


'아픈데 없죠?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에 부모님도 계시는 앞에서 다른 걸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일 걱정은 하지 마요. Y 과장 없으니 더 잘되는 것 같아요'


내 농담에 굳었던 Y 과장 얼굴에 옅은 웃음이 스쳐간다.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Y 과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잘지내셨어요? 저에요. 맥주 한 잔 사주세요'


맥주 500cc를 단숨에 들이켜는 Y 과장을 보고 있었다.

시원한 이 한 모금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가 수감됐던 해 여름은 유난히 아니 지독하게 더웠다.

그 더운 여름을 어떻게 버텼느냐고 물었다.

교도소에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이지 죽을만큼 더웠다고 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라는 식의 뻔하고 식상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애들한테는 뭐하고 해 놨어요?'


'그냥 해외출장 갔다고 와이프가 말해놨어요'


다행인 건 Y과장이 모범수로 좀 더 일찍 퇴소하게 됐고, 퇴소하는 다음 날이

마침 큰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이라서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자식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지만 소중한 기쁨들을 가족과 함께 하나씩 쌓아가는 게 행복이니

이제부터 돈, 가족, 건강 어느 하나도 잃지 말고 식구들과 함께 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가끔 Y 과장한테 오는 연락은 늘 반갑다.

술 걱정은 하지 말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앞으로 고생한 Y 과장과 가족들에게 좋은 일만 생기고 행복하길 바란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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