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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욱 교수 Oct 08. 2022

포도계의 샤넬, 샤인마스캇토

일본에서 개발한 일본 포도

언젠가부터 동네 슈퍼에 슬그머니 등장했던 알 굵은 청포도가

오래전부터 매대를 차지하던 보랏빛 캠벨 포도를 몰아내고 당당하게 포도 시장의 주연 자리를 차지했다.

주연의 활약 덕분에 캠벨포도는 조연도 아닌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샤인 머스캣

껍질이 얇고 먹음직스럽게 큼지막하며, 씨도 없고 높은 당도에 향까지 달달하다.

씹으면 아삭한 식감에 과일즙이 주르륵 흐른다.

이보다 더 맛있는 과일이 있을까 싶다.

포도계의 에르메스, 포도계의 샤넬이라는 말로 보아 '명품 포도'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포도 시장은 이제 샤인 머스캣이 평정했다고 본다.

이 포도를 먹다가 캠벨 포도를 먹으면 왠지 볼품없어 보이고 맛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샤인 머스캣의 가격은 두배 이상으로 사악하다(2020년에는 4배 이상 했다.).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가 '샤인 머스캣'이라고 먹는 포도는 우리 포도가 아니다.


'샤인마스캇또'
오리지널 일본 포도다.

1988년에 일본 농림성에서 품종 교배로 개발했다.

교배한 품종은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스튜벤+하쿠난

이렇게 3가지 종자를 교배했다고 한다.


(참고) 우리나라에서도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양조용 포도인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를 펀딩 하는

농장이 있었다. 당도 30 브릭스 이상으로 구하기 힘들어서 고급 호텔이나 청와대 정도에만 납품한다고 한다.

(난 영원히 맛볼 수 없는 건지도......)


일본의 치명적인 실수로 종묘를 외국으로 반출하는 규제가 없는 틈에 누군가가

몰래 '샤인마스캇또' 종자를 빼돌렸고 그 종자가 퍼져나가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는 그렇게 빼돌린 종자를 어둠의 경로로 몰래 구해서 재배하고 당당하게

판매까지 하고 있다(일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종자를 수입한 기록이 없다.).

우리나라 경상북도가 전체 샤인 머스캣의 80% 정도를 생산한다.


우리는 일본 포도를 먹는다.
출처: 위메프


심지어 샤인 머스캣이 일본 품종인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아니면 일본 품종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배 농가 입장에서는 돈이 되고, 우리 입 맛은 높아져서 서로가 묵인해주는 건가?


세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붙이는 용어가 다르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을 한국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의복 변화를 이끈 영웅이지만

원나라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보유한 종자를 자국으로 빼돌린 밀수꾼이 되는 것이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우리나라에서는 열사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암살자가 되는 것처럼.

일본 포도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먹으면서

고소하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즐겁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미안하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 한복을, 우리 김치를 중국이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보면 우리들은

강한 전투력을 갖추고 중국을 비난한다.

반대로 우리가 일본 포도를 슬그머니 우리 농가에서 재배한 국산 포도로

판매하는 것을 일본인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일단 사과는 하자.
그리고, 적어도 우리 포도라고 우기지는 말자.


지금 포도 이야기만 하는 중이다.

다른 정치적인 이슈(독도, 위안부 등 문제)를 포함시키는 건 아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샤인 머스캣 해외 수출을 더 많이 한다.

일본에서는 이 정도까지 샤인 머스캣의 인기가 좋아질지는 몰랐다고 한다.

억울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법적으로는 방도가 없다.





샤인 머스캣으로 와인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부족한 재료비로 아쉽게 실행하지는 못했다.

높은 인기에 재배 농가가 많아지고 있으니 지금의 사악한 가격은 점점 떨어질 것으로 본다.

조금 만들어서 조금 맛보는 것으로 만족하려니 서럽다.


사람의 입 맛은
좋은 것에 너무 빨리 적응한다.

당분간 샤인 머스캣 포도와인은 아껴먹고

과일향, 시트러스 향이 물씬 나는 수제 맥주로 아쉬움을 달랠까 한다.

내년에는 꼭 샤인 머스캣 100kg으로

샤인 머스캣 와인,

샤인 머스캣 전통주,

샤인 머스캣 필스너 맥주까지

3종 세트를 만들어 보기로 버킷 리스트에 담아본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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