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내가 꿈을 이루기로 했다.

윤우야! 우리 옥스포드가자~~~ 놀~러!

by gwi eun


나에겐 상기만 시켜도 설레임을 주는 몇몇 단어들이 있다.

런던, 꽃시장, 책, 서점, 북카페, 빈티지, 이야기, 고전 영화와 책들의 제목들, 좋아하는 팝가수들의 이름들.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너무 설레어 행복해지는 것들의 주축엔 대부분 영화들과 책들, 도시, 음악이 있다면

그 주축에는 또 영국이라는 국가가 있다.

노팅힐, 건지 감자껍질 북클럽, 패딩턴, 원 데이, 미 비포유, 해리포터,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어바웃타임,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비틀즈, 프레디 머큐리,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킨(kean), 롤링스톤,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 에드시런, 콜드플레이, 샘스미스, 해리스타일스.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거나 특별한 애착이나 감흥이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연극과 학도였다면 수없이 읽고 분석하고 몸으로 그려내었던 작품의 작가, 셰익스피어. 그리고 19세기 낭만주의 작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와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버지니아 울프와 제임스 조이스, 조지 오웰의 작품을 사랑한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내 마음에 무언의 그림들을 그려넣었으며 나는 훗날 영화 [the hours]를 통해 그 그림의 색채가 더 짙어졌다.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역시 너무 좋아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작품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고전문학은 ‘지루하고 따분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느끼거나 어렵게 느껴질 만한 작품‘ 이라는 나의 한구석 감상을 완전히 바꿔버린 작품이었다. 시대는 19세기인데 작품은 만화방에서 읽는 로맨스 청춘작품같았다. kean의 노래 중 ‘somewhere only we know’는 내가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서울살이하며 공연과 오디션, 알바를 4시간도 안되는 잠으로 버텨가며 보낼 때에 왕십리 cgv에서 한동안 매일을 듣던 영화[어린왕자]의 ost였다.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묘한 감상에 휘둘리는데 그 감상에는 설레임이 크게 자리한다. 열망이 느껴지는데 순수함이 곁들여진 열망, 레트로하지만 세련된 빈티지같달까. 내겐 그런 곡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내 인생 영화는 언제나 노팅힐이었으며, 본 건 단 두번이지만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이미지들이 군데군데 자리한 영화가 [건지 감자껍질 북클럽]이다. 자세하게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떠들수 있을 것만 같다. 아주아주 신나고 행복하게, 열띤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말이다.


초등학생 때는 영화 해리포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고, 나는 여타 아이들처럼 해리포터 속 이미지들이 내 가슴 속 첫 ‘환상’으로 자리잡았다.

중, 고등학생 때 마주한 영드는 내게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는데 화면 속 주인공들의 펑키함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유독 그랬다. 분명 미국 작품들이 획을 긋고도 남을 때였는데 내겐 영국의 것들이 훨씬 강렬했다. 미국에는 안보이는 특유의 ‘펑키’한 자유로움이 영국엔 있었고, 지식인들의 섹시함이 공존했다. 공부를 잘하진 않았지만(잘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 못했다.) 언제나 지적호기심은 넘쳤던 내게 그건 엄청난 매력이었다. 거기에 ‘신사’라는 단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그들의 옷차림, 정돈되고 미니멀하지만 절대적인 개성을 뿜어내는 색채감의 센스는 말해 뭣해, 언제나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건물양식들과 거리 곳곳에 보이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합들. 2층 버스와 전화부스, 언더그라운드 표시판.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엄청난 환상을 불러넣어줬으며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노래를 찾으면, 가수들이 다 영국출신이었다. 좋아하는 취미가 생겨 더 깊게 파고들고자 하면 대부분 영국에서 유명한 것들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미싱이라는 취미는 영국이 유명했고 (특히 퀄트) 각종 사랑스럽고 유머 넘치는 색채와 패턴을 다 가져온 듯한 패브릭을 그들은 사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지적재산들이 날 더없이 설레게 했다. 오래되었지만 그 명망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극작가들과 문학가들. 그리고 언젠가 어릴 때 읽은 뉴스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전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나라, 영국 uk.’

그들은 서점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 서점들은 진부하거나 올드하다는 인상 하나 남기지 않고 위트있고 세련되었다. 심지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곳에 전시된 작품들만 생각해도 나는 가슴이 설렜다.


이쯤되면 영국을 미친 것처럼 찬양하는 신도같지만, 그저 순수하게 내 가슴을 뒤흔들고 알 수없는 떨림을 만들어주는 예술같은 것들이라 그렇다. 한 톨도 아쉽지 않게 설명하고만 싶어진다. 좋아하는 화가들도 많지만 참 신기하게도 즐거운 마음이 들면, 그건 또 영국이라는 카테고리가 껴있다. [장 줄리앙]이 그 예시다. 언젠가 장줄리앙의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엔 작가의 정보도 모르고 갔으면서 작품을 보며 자꾸만 영국이 떠올랐다. 뭐랄까, 영국 특유의 위트 같은 것들이 있다. 말로 설명이 안되는 느낌적인 느낌같은 거다. 기분이 좋아지는 위트. 그 위트가 자꾸만 엿보여서 작가가 틀림없이 영국출신일거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역시 작가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활동기반을 만들어낸 프랑스사람이었다.


언제나 내겐 예술가가 되고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정확히 ‘어떠한 예술가가 되고싶다’가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나는 예술가이고 싶었다. 이 세상 모든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있었으며 그것들이 날 많은 순간 살게 했고, 웃게 했고, 울게 했다. 언제나 사람을 믿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도 나는 예술을 더 깊게 믿었다. 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것,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것,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것.

배우라는 직업에는 마음이 너무 크게 앞섰고, 좌절이 깊었고 현실 앞에 용기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진심이 아니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졌을 때나 소망을 져버렸을 때 언제나 나는 글을 끄적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를 몇차례나 완독했지만 언제나 감탄한 부분이다. 가끔 내게 물어보면, 그것이 부끄럽고 조금 거칠지만 가짢다고 여긴다. ‘그래서 네가 뭘 해내었는데.’ 라고 스스로를 부끄러움에 몰아낸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욕망과 같은 것은 표현해야만 한다고 나를 부추긴다. 표현하거나 창작해야만 살 것 같은 기분은 나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많은 순간 느꼈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내고 곁에 두었을 때 완벽한 자유를 느낀다. 완벽한 ‘나’를 느낀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이런 내가 ’허세‘일 뿐일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나의 감상이 너무 유난스러운걸까? 예술가로써, 혹은 그에 다가가는 이로써 자기검열을 끝도 없이 하던 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 곁에서 행복했고, 나다웠고, 자유로웠으며 지금은 그것이 그저 나라는 사람이며 나 그 자체라는 것을 안다. 예술을, 너무 사랑하는 거다.

삶에서 너무 큰 사랑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내겐 언제나 예술이었다.





아이를 가지기 한참 전부터, 아니 내가 아이와 같이 어릴 때.

가끔 막장 드라마같은 것들을 보며 어른들을 한심하게 여길 때가 몇몇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절대 그러지는 말아야지, 다짐한 것.


내가 이루어내지 못한 꿈을 내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꿈꾸는 것, 꿈과 이상을 강요하는 것.


어릴 때는, 그게 얼마나 바보같고 추악한 행동인가 싶어, 당연하게도 나는 그런 어리석은 부모가 될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 근래 가끔 나 스스로에게 ’선을 넘을 지도 몰라!‘하며 은밀한 경고를 주는 일이 생기는 거다.



윤우를 가지게 된 같은 해, 몇달 전, 그토록 꿈꾸던 영국에 여행을 갔었다.

영국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을 청한 뒤 다음날 가장 먼저 향했던 곳이 바로 ‘옥스포드’였다.

제일 먼저 보고싶었던 곳,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던 곳, 옥스포드.


그리고 난, 이후 그 어떤 여행지를 통틀어도 옥스포드만큼 나의 색채와 맞는 곳을 찾지 못했다.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던 삶의 색채와 모양같은 것이, 다 모여 그림처럼 완성된 곳이 옥스포드같았다.

옥스포드에서는 ’이런 곳이면 내 삶의 궤도는 언제나 행복이겠다‘ 싶었다. 이런 곳이면 내내 책읽고 공부만 하고 살아도 행복할 거 같다고. 어디든 부러운 사람 하나 없었는데, 옥스포드 학생들은 참 부러웠다. 난 들어가지도 못할 도서관에서 읽기 힘들 고서적 다 볼 수 있고 이곳 저곳 문학이 날뛰며 놀고 있으니, 그냥 평생 볼 책들만 껴안고 살아도 놀이터겠다, 싶었던 곳. 마냥 걷다가 들어간 서점들도 부러웠고, 좋아하는 작가들이 학교선배인 것도 부러웠고. 거리마다 풍겨지는 중세시대의 분위기도 나의 지적탐구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루 온종일 옥스포드를 걸었다. ‘하루만이라도 여기서 묵을 걸.’ 그랬다면 이 농도 짙은 감성을 더 끈질기게 즐겼을텐데. 곁에 두었을텐데.

바로 당일날 런던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다.

학교들을 구경하고, 이야기를 찾고, 거리를 구경하고, 서점을 기웃거리니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린 학창시절에, 이 곳을 와봤다면 틀림없이 여길 오고싶어서라도 공부를 했을거야!‘

‘아쉽다. 이미 많은 것들을 모른 체 지나온 시절이. 이미 그 시기가 지나온 나이인 것이.’


그리곤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지금의 나와 비슷했다면,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 소녀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조금은 맛보고, 누군가 나를 세상 밖으로 인도해줄 어른이 곁에 있었다면, 그리고서 이런 곳도 와볼 기회가 있었으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공간에서 무한정으로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매일매일을 예술 안에 살아갔을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 함께 이 곳은 꼭! 다시 올거야. 꼭.’


그리고 몇 달 뒤, 내겐 윤우가 생겼다.

가끔 윤우를 돌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현실적인 엄마들의 교육 얘기들을 지나쳐 들을 때도 떠올리고, 기분 좋은 상상으로 여행을 떠나고싶을 때도 떠올려본다.


언제나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유일하게 인도해주고 싶은 것,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이다.

많은 경험들을 건네다주고, 그 많은 경험들 속에서 아이가 ‘진실로’ 원하는 인생을 찾길 바라는 마음.

어떤 경험과 기회에서 운명적인 인생과 길을 만나게 될진 모르는 거니까.

수많은 경험을 안겨다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안겨다주고 나도 겪으며 그 속에서 아이가 자신의 길을 똑부러지게 찾고 주도적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길 바라는 마음.


그런데 그 중에 ‘옥스포드를 함께 오는 것’은 은연중의 내 바램도 껴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길 입학하라는 게 아니고! 그, 그러니까 말이야. 뭐 옥스포드는 아무나 들어가나, 모..?!

그냥, 이런 곳도 있다~ 이런 멋진 곳도 있다~ 는 걸 알려주고 보여주고 경험해주는 거지 뭐.

아, 세상엔 이런 학교도 있구나. 이런 도시도 있구나. 또하나의 시각을 넓혀주는 것 정도..?

관심도 흥미도 아무것도 없으면 뭐 그것대로 또 경험인거고.“







“근데 혹시 알아? 진짜 진짜 혹시 그런 경험으로 나처럼 어떤 환상같은 것이 마음에 꽃피거나 재밌는 호기심이나 흥미가 생길지도? 그리고 그 곳에 꿈이 생길지도?

그러니까, 그 .. 뭐랄까. 꿈! 꿈의 선택 영역지를 하나 더 보여준달까. 뭐. 하하하.“




이거, 조금 위험하고 발칙한 생각 아닌가!

나의 은~밀한 기대나 바램 같은 것이 있다니.

그러나 나는 그저 경험만 시켜줄 것이다. 정말 정말 무언의 기대는 말고.


정말을 두번이나 썼다는 게 스스로도 조금 수상쩍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러다 선을 넘지도 모르겠어.

내가, 그 못다한 꿈을 마저 이루어야겠다.


혹시 아나?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꿈을 은~밀하게 강요할지도.


혹여나 그러기 전에, 내가 그 꿈을 후회없이 다 이루어야겠다.


혹시아나?

늘그막에 나이 들어, 어렸던 예술가의 꿈이 현실이 되어 노년의 예술가가 될지.


혹시아나?

좀 더 그 꿈이 일찍 이루어져서, 또다른 꿈을 또 꾸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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