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우는 것
“어머님, 조금은 내려놔야 해요.”
나의 깔끔함이 깔끔 “떠는” 일이었을까?
아이가 돌이 지난 후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24시간을 내 품에 안고 있다가 아이를 품에서 떨어뜨린다 생각하니 어린이집에 보내길 좀처럼 확신이 생기질 않았다.
그런데 돌이 다가올 때쯤, 하루 온종일을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부족함이 있음을 느꼈다.
놀아주는 것엔 늘 반복되는 것들의 연속이었고, 다양한 경험들과 체험들을 건네주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윤우가 사람을 너무도 좋아했다.
함께 바깥 산책을 나가면 보이는 또래들, 어르신들 할 것 없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고 인사를 주고받길 참 행복해했다.
그럴 때면 윤우가 나와 단 둘이 시간을 온종일 보내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아이가 이렇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데….’
주에 한번 백화점 문화센터에 나가 친구들과 한 시간씩 시간을 보내고, 조리원친구와 엄마들이 대동한 카페에서
나란히 군것질을 나눠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따금 놀러 오는 텐션 높은 이모들의 신나는 재롱들을 가득 받아내곤 하였지만
엄마와 단 둘이 집에 있는 날에는 언제나 하루종일을 놀기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 역시 나만의 생각일 테지만,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확신이 안 서던 나의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육아서적에서 한결같이 한 얘기가
‘3세까지는 엄마의 품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먼저 잘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었다.
본디 서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참고사항이며, 좋은 선생님의 역할이 되는 것,
그 이상의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 내용만큼은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과학적인 논리라 하니,
여기저기에도 똑같이 실려있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고민이 되었는데,
내가 임신하던 기간 동안 읽은 책, [프랑스 아이처럼] 에서 가장 크게 주목한 점,
바로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라는 말이 자꾸만 가슴에 와닿았다.
1년 동안 숨고를 틈 없이 아이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열정적으로 달려온 나에게
이제는 조금의 여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 사실상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간, 돌아보면 육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을지도 몰랐을 시기가
바로 신생아시절이었을텐데 나는 언제나 웃으며 독박육아를 지나쳐 왔으니 조금은 지쳐있을 법도 했고, 점점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유가 남아있을 틈 없이 사라지기 시작하니, 언제까지고 아이에게 행복만을 건네주는 엄마의 역할을 해낼 힘이 남아있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아주 가볍고 시원하게 모두들 내게 외치는 거였다.
“뭘 그렇게 생각이 많아!
윤우는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오는 거고, 너는 아이가 즐겁게 노는 동안 편하게 집안일하고 조금 숨 돌릴 틈을 가지는 거야.
그래봤자 몇 시간인데.
야, 그리고! 누가 보면 뭐 하루 종일 아이랑 떨어져 있는 줄 알겠다.
너, 어린이집 보내보지? 그럼 아이 보내는 시간 더 늘리고만 싶어질걸? 푸하하ㅡ”
그리고 여기저기서 아이의 돌이 지나자마자 0세반으로 입학시키는 걸 보고 함께 용기를 얻었다.
“그래!
윤우도 엄마랑 매번 똑같이 노는 것 말고 더 다양한 체험들을 시켜주고, 형아 누나들 친구들, 선생님들까지 사람 많은 곳에서 북적북적 즐거운 시간들을 나눠주자. 그 참에 나도 그간 돌보지 못했던 내 시간들을 가져보면서 여유도 누려보고.
좋아! “
그렇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길 어느덧 8개월째.
윤우가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0세반은 윤우뿐이라, 윤우는 유독 다른반 누나 형들, 선생님들과 어머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듯 가득 받았다.
누가 봐도 아기인 1세반, 2세반, 3세반 누나 형들이 자기보다도 더 작은 아기가 있으니 너도 나도 형, 누나가 된 것에 기쁨과 책임감을 느끼듯 윤우를 챙겼다.
언제나 윤우를 데리고 등원할 때면 다른 반 아이들이 우루루 교실을 나와,
“선생니~~~~임~~~~ 윤우 왔어요!!! 윤우 엄마 왔어요!!!!” 외치며
문 앞까지 다가와 윤우를 어루만져주고,
자기가 벗겨주겠다고 서로 옥신각신하며 윤우의 신발을 벗겨주는 것이었다.
등원하고 하원하는 동안 마주치는 어머님들, 아버님들은 도통 내가 알아보지도 못할진대 모두들 윤우는 알아봐서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시곤 하셨다. 그런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시간들을 거치며 알림장에 가득 웃어 보이는 윤우의 사진들까지 쌓여, 어린이집에 보내길 역시 잘했다 생각했다.
걱정이 되었던 ‘애착형성’에 대해선,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1년동안 충분한 애착형성이 윤우와 나 사이에 이루어져 있었던 거다.
신뢰가 쌓이니, 윤우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은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올 것이라는 믿음아래 나는 편한 마음으로 아이의 밥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고, 쇼파에 앉아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시는 여유를 즐기게도 되었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으로 충전을 하고나니, 아이가 하원하면 더 즐겁게 아이에게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기만 한 줄 알았던 어린이집생활에 엄청난 갈등이 생겼다.
바로, 바이러스와 각종 감기와의 사투였다.
윤우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민간어린이집인데, 집 앞에 국공립어린이집 두 군데에 병설어린이집까지 있으니 그곳에 대기가 몰려 0세반 대기가 30명이 넘었던 반면, 윤우는 대기도 없이 들어가 되려 홀로 한반을 차지한 지 몇 달이었다. 처음엔 윤우가 같은 반 또래 친구 없이 보내는 게 선생님도 나도 아쉬워했지만 형들누나들이 있으니 그것도 아쉬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몇 달 뒤, 새로운 친구가 같은 반에 들어왔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 한껏 안겨다 준지 얼마 안 되어 윤우는 같은 반 친구에게 폐렴과 각종 바이러스를 옮아 난생처음 엄청난 고열과 구토를 동반한 채 입원생활을 해야 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집에 온 한날,
윤우가 갑자기 고열이 오르더니 임신 때 선물받아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브라운체온계를 꺼내 아이 귀에 재보니 39도.
처음 겪어보는 아이의 펄펄 끓는 고열에 갑자기 신생아시절로 돌아간 듯 여섯시에 잠이 든 아이를 보고 당황해했다. 이게 도통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어 불안감을 잡고 친언니에게 연락을 했더니,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안 잤거나 할 수 있으니 연락해 보라는 거였다. 이미 늦은 시각이라 퇴근을 하였을 텐데 선생님께 도통 연락을 드리질 못하겠어서 몇 시간을 동동 거리기만 하다 겨우 연락을 드렸더니 금방 알림장에 답장이 오셨다.
“윤우 같은 반 친구가 오늘 열이 많이 나서 중간에 하원시켰는데... 혹시나 싶어 윤우도 중간중간 열 체크할 때는 괜찮았거든요. 무언가 옮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일이 있었다니.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인데, 이 날은 이 답장마저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미리 전달받았다면 좀 더 신속하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곧이어 윤우가 바이러스에 옮았으려나..? 하는 걱정이 막 스치던 날.
결국 윤우는 그날 같은 반 친구가 걸렸다던 바이러스 몇 개와 폐렴을 고스란히 옮아 며칠의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지만 윤우는 몇 번을 더 같은 친구에게 옮아 병원을 드나들면서 입원도 두어번 병행하게 되었다.
처음 겪었던 날은, 너무도 내게 힘든 시간이었다.
모든 것들은 뒤돌아보고 경험이 쌓였을 때 유려한 마음과 여유가 생길 텐데 그때엔 전혀 그러질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홀로 아이를 데리고 있던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엔 그 흔하다던 열도 한번 난 적이 없던 윤우였고 아파본 일이 없던 윤우였다.
그런 윤우가 크게 아파 입원하고 고생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내가 힘들었던 거다.
처음엔 아이가 아픈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었고 (유난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나 처음은 힘들고, 아이가 아픈 것은 앞으로도 완벽히 익숙해지긴 힘들 거 같다.) 아이를 케어하다 보니 나까지 아파 일주일을 넘게 고생한 거였다. 그렇게 일주일 하고 며칠을 고생하다가 겨우 다시 다 낫고 어린이집에 보낸 날.
다시 보내는 것도 두려웠는데 하필, 그렇게 다시 어린이집에 간 날. 같은 친구가 이번엔 수족구에 걸려 다시 하원했다는 거였다.
알림장에 급히 올려진 ‘수족구 환아 발생 ㅡ 모두들 개인위생에 더 철저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원장선생님
공지글을 보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윤우반 같은 친구는 아니겠지...?‘
두려움 안고 내내 걱정하다가 하원하러 어린이집에 도착한 오후.
그게 같은 반 친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날엔 내 인내심에 완벽히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다. 무력감과 억울함이 터진 거였다.
웬만하면 좋지 않은 기분일 때 내 기분을 드러내는 법이 잘 없는 나인데, 도통 참을 수가 없었고 참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원해, 나는 내내 아이가 또다시 아플까 봐 노심초사하며 마음을 졸였고 다음날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린이집엘 보내지 않고 홀로 윤우와 밖에 데려가 신나게 놀아주었다.
이전에, 지금은 너무도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나의 조리원친구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감기를 옮아 며칠을 아프고 고생한 일을 반복해 겪으며
“나, 아이한테 진짜 미안해.
내가 괜히 애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애가 이렇게 자주 아프게 되는 거 같아서 너무 회의감도 들고 죄책감도 들고. 이게 맞나 싶어. “
하곤 내게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땐 ‘그렇겠다, 맞아.’ 하면서도
아직은 겪어보지 못했던 터라 ‘그런 마음까지 들려나...?’ 했던 게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역시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이 맞다.
이제야 그때 친구의 말이 너무도 와닿는 거다.
그리고는 또다시 이런 일들을 겪게 될 것이 두렵고 속상해, 며칠을 검색해서 찾아보며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는 게 맞을까 고민한 시간이 있었다.
‘어쩌면 이전에 그 흔한 열한 번 안 난 게 놀라운 일일지도 모르겠네.
돌이 될 동안 병치레 한번 한 적 없고 아픈 이슈없이 지나간 건 어찌 그럴 수 있었지?’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겐 조금 유별날지도 모를 위생관념 덕분이었다.
아이가 있기 전에도 위생과 청결, 정리정돈과 청소에 진심이던 남편과 나였다.
말끔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공간 속에서 집중과 좋은 생각, 마음가짐과 태도와 행동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 남편과 나였고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더라도 일단 정돈이 되어있지 않는 공간에선 무언가를 해내길 힘들어했다.
그런 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났으니
무엇보다도 위생에 신경쓰며 아이를 돌본 우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독감이나 유행병이 돌 때면 키즈카페나 아이들이 노는 곳은 일체 가지 않았고
공공장소에 놀러 갈 때면 아이의 손을 씻길 수 있는 영유아핸드워시를 챙겨 나가곤 했다.
조금이라도 지저분해 보이는 곳이면 꼭 살균소독티슈로 닦아내고 아이와 공간에 머물렀다.
그때엔 누군가에겐 유별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이,
내가 다닌 문화센터에서는 모든 엄마들이 나와 같았고 어쩌면 나보다 더 청결에 신경쓰는 엄마들도 많았으며
나는 그것이 다 우려와 걱정 섞인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으로 보았다.
어쨌든 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에겐 청결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 덕분에 윤우는 단 한 번도 아파본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도 꼭 틈틈이 아이의 손을 씻겨 주었고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돌아서면 손을 씻어 아이를 대했다.
그런데, 집이라는 안전기지를 벗어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엄마와 아빠가 온통 관리하고 케어해 주는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면
사회에 나가는 아기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일 텐데
그곳에서는 엄마 아빠의 청결방어영역이 힘을 못쓰는 것이다.
가끔은 두 눈을 질끈 감아야하는 순간도 오곤 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어린이집에서 갖가지 책들을 하나씩
윤우의 책가방에 넣어 보내오실 때면,
책을 펼쳐 여러 이물질들이 묻어있는 걸 보곤 조용히 경악하던 일이 있었고
아이가 만지기 전에 열심히 티슈로 닦아 보여주곤 하던 일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학부모상담시간에 한 대화가 날 조금 생각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청결을 중요시 한다는 건, 물론 아이를 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우리 부부를 위하는 일도 있었다.
이 상담내용이 그러했는데, 요는 이렇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면 손으로 여기저기 막 묻혀가며 먹는 것이 싫어,
여기 저기 묻으면 곧장 닦아내어주고 깔끔하게 퍼서 먹여주는 것이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럼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집에서 어머님이 밥 먹여주시나요?”
“음. 주로 그러는 거 같아요.”
“이제는 윤우가 스스로 먹게 놔두셔야할 때에요.
그리고 조금은 깔끔함을 내려놓으실 때도 필요해요. 가령 밥먹을 때처럼요.
어머님이 깔끔하셔서 그런지,
윤우가 밥먹을 때나 평소 놀 때 손에 무언가 묻거나 하면 닦아야만 손을 쓰더라구요.
불편한가봐요. 밥먹을 때는 이렇게 저렇게 묻혀가며 스스로 먹는 연습을 해야, 늘거든요.”
“정말 그러네요.
주도적으로 키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건 제가 인지를 못 한 거 같아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신경 써볼게요!”
그리고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친언니는 언제나 내게 툭툭 내뱉곤 했다.
“으유~ 저 엄마. 내랑 다르대. 달라~
야. 애들은 그냥 막 키우는거다. 막 냅둬두고 키우면서 여기저기 뒹굴고 먼지도 먹고 해야
면역력 키우는거대. 우리집 애들 봐라. 오히려 더 안아프다, 야.”
언제나 언니집에 들어서면 사뭇 내 눈엔 난장판 같은 집에,
아이를 대할때나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서 청결과는 거리가 먼 듯한 모습에
절레절레 하던 내가 언니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처음엔 속으로 콧방귀나 뀌었던 게 사실이다만,
지금은 정말이지 돌이켜 볼 때 조카들의 잔잔한 병치레는 더 많을지라도
크게 아픈 일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것이, 정말 그러할까 스스로 묻게 되는 거다.
‘정말 내가 너무 청결하게 키운 것이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었을까?’
‘집에서는 그것이 득을 봤을지 몰라도, 사회에선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으려나?’
생각하던 차.
결국 우리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닌가.
하물며 이제는 전 세계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모든 세계가 이어져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코로나바이러스도 결국 한 나라의 것이 되거나 책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같이 이겨내야하는 숙제가 되었고 모두의 과업이 되지 않았던가.
내 라이프스타일은 신념대로 그대로 두되,
사회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받아들이며 수용하고 함께 포용해나가는 법을
나 스스로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아이가 크게 아픈 날이면
여전히 걱정이 무뎌지거나 평온해질수는 없을 테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무력함만을 느끼며 불안하고 걱정하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이니,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고 조금 여유있게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처음 생겼을 때
그것이 두렵다고 모든 일상을 stop하고 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우리는 집을 나서 사람 많은 지하철 속에 함께 복닥이며 출근을 하고 늘과 같은 일상을 영위하던 것처럼,
아이라고 다를 바 없는 사회 세상 속 살아가는 일을 좀 더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나 먼저 그것을 배워야 겠다 생각했다.
물론, 나의 일이라면 그것이 훨씬 쉬웠을테지만
너무도 취약하고 작은 어린 아이가 이런 상황에 아파서 힘들어하는 상황을 쉽사리 넓은 마음으로 헤아리긴 어렵다. 나보다도 훨씬 작고 여리고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없는 존재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배워야겠다고.
함께 사는 세상에선 충분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고 할 수 있는 거라고. 그걸 억울함이나 속상함으로 치환할게 아니라, 속상하고 마음아프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그저 잘 견디자! 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예쁘게 견디는 법을 멋지게 배워가자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또 한번 많은 걸 느끼고 배운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
온 신경이 그에게 가닿아, 내내 마음이 불안하고 속상해서 가슴 졸이는 경험.
아이가 아플 때마다 느껴지는 엄청난 불안감과 속상함은 여태 느껴보지 못한 불안의 영역이며,
그로인해 겪게 된 새로운 ‘화’의 영역,
나의 통제 밖에서 일어난 아이의 아픔에 대한 억울함과 같은 감정으로 알게 된, 조금은 이타적이지못한 내 마음들. 그것이 어쩌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얄팍하고 좁은 마음그릇일지도 모르겠다는 부끄러움. 그럼에도 아이의 아픔이 내 것보다 커, 제어가 안되던 속상함. 그 모든 것들로 인해
나는 또 하나, 살아가는데에 배움을 느낀다.
좋은 사람이고, 좋은 엄마이고싶은 마음은
언제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에도!
옳은 길로 스스로를 인도하길,
그 길을 따라올 아이에게 행복과 선이 넘치길.
언제나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