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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Jan 16. 2024

현금 찾아 삼만리, 아릿따운 덴마크아가씨

신뢰가 주는 ‘정’.

몽상가는 여름이 극,극성수기이다.

여름을 맞아 휴가로 떠나온 여행객들과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 외국인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북적북적 활기로운 시기. 그래서 6, 7, 8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작복작 이 작은 가게에 활기가 띄고 바쁘다. 이 날도 그런 나날들의 연속이던 7월의 어느 날, 조그만 가게가 만석일 때 금발의 아릿따운 손님 한분이 오셨다.

자리가 없어서 꽤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땡볕 아래에서 미소를 환하게 유지하며 괜찮으니 기다리시겠단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밀려있던 음식을 요리하면서도 계속 조급하던 날. 요리를 하고 커피를 내리면서도 내내 마음은 저쪽, ‘이 땡볕에 바깥에서 한참이나 기다리시게 하면 어쩌지.’ ‘더우실 텐데.’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그럼, 뭐야? 바빠도, 쓰이는 마음은 행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내 표현!


“자기야, 바쁜데 미안하지만 혹시 바깥에 기다리시는 손님 얼음물 한잔만 가져다 드릴 수 있어?”

회사 여름휴가를 몽땅 몽상가에 쓰고선 여행 한번 없이 내내 가게에 함께 하던 남편. 그에게 부탁했다.


“응? 아 저기 바깥에 기다리시는 손님? 당연하지! 잠깐만. 내어드리고 올게!”


처마도 없는 땡볕에 마냥 서서 기다리는 그 수고스러움에 대한 죄송함을 얼음물이나마 손님에게 마음을 전해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드디어 자리 한쪽이 비었고, 빠르게 정리를 하고서 자리를 안내해 드렸다.

'후유.. 다행이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던 손님은 내게 다가와 샐러드 한 접시와 음료를 주문하셨다.


그리고 카드를 리더기에 꼽는데…! 이런..!

카드승인이 안된다!!

같이 당황한 나는 어물어물거리며 “sorry… maybe it doesn’t work. Can i try another card?” 하고 여쭤본다. 어쩐지 함께 당황한 손님은 다른 카드가 없다신다. 이를 어째. 설상가상 현금도 하나 지니고 있지 않던 손님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속상했다.

 '아니,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배고프실 텐데. 이렇게 돌려보낼 순 없지!!’


“It’s ok!! Let's eat first, and please make cash and bring it to us later. It's fine!”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의 영어를 끌어올려 말씀드린다.

“괜찮아요!! 일단 식사부터 내어드릴게요. 식사하시고 나중에 천천히 현금이 생기면 그때 가져다주세요!”


그래도 되는 건지 머뭇거리는 손님에게 곧장 자리를 안내해 드리고 정말 괜찮으니 쉬라고 말씀드린다. 그제야 편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아 크게 미소를 지어 보내시던 손님.

마음이 좋아진 나는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주문받은 음식을 준비한다. 근데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몸과 마음이 덩달아 가벼운 느낌인지! 도통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여하튼 기분이 너무 좋다.

그렇게 음식을 내어드리고 또 바삐 움직이던 사이, 어느새 예쁜 금발머리의 손님이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고 자리를 일어나신다. 내게 곧장 다가와, 너무 고맙다는 말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서셨다. 좋은 정을 주고받은 기분에 기분이 연신 또 좋아진다. ‘이런 보람으로 일하는 것도 있지!!’

그렇게 손님을 뒤로하고 서서히 줄어드는 손님분들의 빈자리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누군가 황급히 뛰어오는 기척이 들린다!

시선을 돌려보니 아까 왔던 그 금발의 아가씨!


‘어..? 어라..?’ 나는 당장 달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고 상관없으니 가능한 때 줘도 된다는 거였는데..!’

가까이 보니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돈을 손에 쥐고서 왔다. 근데 그 모습만 봐도 무슨 마음인지 느낄 수가 있어서 너무 감동이었달까! 말로 하진 않았지만 꼭 그 행동과 모습만으로도, ‘날 믿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너무 잘 먹었어!’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달까.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손에 꼬옥 쥐어온 현금을 내게 건네준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간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홀로 여행 온 미녀의 금발친구였는데, 이후 덴마크 손님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되었지만 처음 몽상가에서 만난 덴마크 손님이라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반갑기도 하고, 전혀 연고가 없던 나라의 사람과 처음 만나 주고받은 믿음과 정 같은 감정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훈훈해서 따사롭기까지 했던 이 날.

시간이 지나고 문득 생각해 보니, 그러게. 그냥 식사만 하고 돈을 안 내고 갔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당연하듯 믿음이 갔고 행동이 갔을까?

그건 아마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미소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믿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걸 알아준 금발의 미녀손님도, 그 마음에 보답하듯 뜨거운 땡볕아래 뛰어다니며 현금을 찾아서 내게 온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녀가 가게를 나서서 atm기를 찾아 뛰어다니고, 다시 현금을 찾아 이곳을 향해 송골송골 땀까지 흘려가며 뛰어왔을 모습을 상상하니 다시 마음이 애잔하니, 고맙다.

아주 먼 북유럽과 동아시아의 작은 한 나라의 사람 둘이, 자그만 카페 어느 곳에서 처음 만나 나눈 믿음과 정! 작고도 너무 따스한 이 기억은 훗날, 다른 손님분들에게도 같은 에피소드가 되어 이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말 단 한 번도 그냥 가신 손님분들은 없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건네주는 믿음과 믿음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럴 때면 사람 사는 세상엔 아직 아름다움이 많다는 생각이 정말 진하게 든다. 정이랄까. 처음 보는 이에게 건네는 믿음과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한 또 다른 마음.


이렇게 쉽게 감동받고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유난스러워지는 내가 청승스럽고 철없는 아이같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떻고 아무렴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그리고 또 우물우물거려 본다..

아직 세상엔 아름다움이 많아….



나중에 친구가 이 에피소드를 듣고 물었다.

"근데, 만약에 그 손님이 영영 돈을 주지 않고 그냥 갔으면 어땠을 거 같애? 다른 손님들도!!"



'흠. 생각도 안 해봤는데.'


"글쎄...?

기분 좋게 식사 한 끼 대접했다고 생각했을 거 같은데! 근데 그 뒤에도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다음부터는 꼭 돈을 받고서 음식을 내겠지..? 푸하하. 나도 이게 생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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