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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Aug 01. 2024

몽상가의 마지막날, 먼 조지아에서 날아온 헌터

마지막날까지 모두, 고마워요.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정말로 이 공간에서 마지막으로 손님을 만나 뵙고, 요리를 내어드리고 커피를 내려드리는 날.

마지막 영업일.


그런 뜻깊은 날에 예상치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다름 아닌, 헌터 hunter!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리는데, 이렇게 얼음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번 놀랍기도 하고 너무 감격스럽기도 하고 고맙고 즐겁기도 하다. 그 순간이란, 분명 지구 반대편에 있어야 할 친구가 갑자기 내 눈앞에, ‘몽상가’에 들어와 있는 그 순간말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내가 지금 잘 못 보고 있나..?’ 생각 드는 찰나, 깜짝 서프라이즈 방문에 놀란 내 눈을 보고 흐뭇함과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 채 늘 그들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한 껏 보이곤 하는데 그 천진난만하고도 애정이 가득 찬 눈빛과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본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곧장 내 입에서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




“you… you.. you!!! how can you come to here!!!!” ‘도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헌터는 22년 12월에 몽상가에서 손님으로 만났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사랑스러운 금발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친구 첼시와 함께 왔었다. 그날 왔던 헌터는 내게 다가와 사랑스러운 음식사진을 올리고, 사랑스러운 인사들을 건네주었다. 공간이 예쁘고, 음식도 맛있고 당신도 사랑스럽다! 그 말에 어떻게 입꼬리가 안 올라가겠냐며. 칭찬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웃음이 한껏 나버리는데, 헌터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며 내 사진까지 카메라에 담아 갔더랬다. 지나고 보니 그 날의 내 행복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 같아서 다시금 좋은 기분들로 몽글몽글 차오른다.


22년겨울, 헌터가 보내온 사진. 헌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이렇구나! 내가 봐도 너무 해맑다. 너무 좋았다는 거겠지- 히히.


호의와 애정이라는 것의 힘이 그런 거 같다. 뭐랄까….

그런 손님분들이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얼굴만 보아도 의심의 여지 한 톨 없이 순백한 호의와 애정을 가득 채워 바라봐준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손님. 그런 손님분들을 만나면 이상하게도 서로 말을 하기도 전에 마음이 화사하게 누그러지고 따스한 온기가 사~악 퍼지는 기분이 든다. 그 호의의 눈빛을 내 눈으로 받아내면 마음속에서 꽃이 피고 따스한 감정이 온몸으로 퍼져녹아내려가는 느낌이랄까.

헌터가 그런 손님이었다.


그런 헌터가, 1년이 다 지나 마지막 영업날 이곳을 다시 방문해 주었다.

꿈처럼 여전히 그 호의와 애정만이 넘치는 얼굴과 눈빛을 가지고.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긴가민가하며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문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헌터가 맞다.

그녀의 입꼬리가 자꾸만 천연덕스레 올라가고 꼭 나를 아는 사람인 듯 대한다.

“헌터……?”




“맞아요!!!!!! 사장님 보러 왔어요!”

“세상에. 진짜네!!!! 진짜 헌터네!!!! 한국에 또 놀러온거에요??!? 오늘 영업 마지막날인데…!”

“그 소식 보고 왔어요! 일부러 마지막날 얼굴 보러 왔어요! 여기가 마지막이라니.”


그러니까, 헌터는 마지막 영업일을 알고서 온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이던지. 그리고서 헌터 얼굴을 보니 그 호의가 어쩐지 작년보다도 더 깊어진 것만 같아, 오랜 친구를 만난 거 같았다. 날 정말 소중히 대해주는 오래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


헌터가 미국에 산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해 보니 미국 어디에서 사는지를 들은 기억이 없다. 크고 넓은 땅을 가진 미국에서 너무도 다양한 도시에서 온 손님들을 마주하다 보니 이제 반가운 도시 이름들도 생기고 여전히 생소하고 낯선 새로운 도시의 이름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소중한 손님을 만날 때면, 어디에 사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지는 거처럼. 가장 기본적으로 그 사람을 알고 싶다면 단연 떠오르는 건 그 사람이 머무는 곳.

헌터는 조지아에 산다고 한다. 분명 영화나 책에서는 자주 접하던 미국 ‘조지아’. 그렇게 많은 미국 손님분들을 만나왔으면서도 생각해 보니 조지아에서 온 손님을 만난 적은 없었다. ‘헌터는 조지아에 살구나!’

“조지아는 미국 어디쯤에 있어? 캘리포니아랑 가까운 곳이야? 시카고처럼 중간쯤에 있으려나?”

“아니, 완전 다른 쪽에 있어.”

그리고 이내 핸드폰을 켜 구글맵을 펼쳐서 미국지도를 보여주며 조지아의 위치를 알려준다.

“마이애미가 있는 플로리다 위 쪽이야.”

미국 지도를 살펴보니 미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새삼 또 한 번 느낀다. “세상에. 미국은 정말 크다. 봐도 봐도 다 모르겠어.”

“우리도 그래. 너무 넓으니까 어디를 가도 비행기를 타서 가야 돼.“


미국의 지도를 보자면 이렇다. 보기에도 넓은 미국은 주가 많이 나뉘어있다.

즐거운 인삿말이 길어졌고, 헌터는 이번엔 첼시가 아닌 다른 친구와 자리를 잡아 앉고는 식사를 즐겼다.

그녀가 전과 같은 자리에 위치해, 다른 계절을 품은 옷가지들을 입고 또다른 친구와 함께 전과 같은 메뉴를 놓고 일상을 보내는 모습. 그것을 보는 것이 참 아늑했다. 아주 먼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아니라, 한 공간 안에서 해를 거쳐 만나고, 다정한 안부를 묻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일상처럼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은 또다른 특별함이었고 따뜻함이었다.


‘친구사이에 거리가 문제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식사를 끝낸 헌터는 정말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다시 내게 다가왔다.

헌터는 아마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이 나라에 자주 오는 것일 테고, 그만큼 한국문화가 자연스레 배어있는 친구다.

당연하듯 한국예절을 제 나라예절처럼 행동하는 친구인데 “고마워요”, “아유, 감사합니다.”, “최고예요” 등 좋은 말들을 정성스럽고도 정중스레, 정말 한국인스러운 제스처와 미소를 곁들여 건네주는 것이다. 그런 헌터의 배려에 감동한 순간순간들이 많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헌터.’



“마지막 영업이라니 너무 아쉽지만 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곳에서 너무 좋은 추억이 있어요. 아쉽지만 응원해요! 나중에 다시 가게를 열게 되면 소식을 꼭 알려줘요!!”

(참. 헌터는 이런 말을 한국어로도 건넬 줄 알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정작 본인은 부끄러운 수준이라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고마워요, 헌터. 뱃속에 아기도 좋아할 거예요. 한동안은 아기랑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시작점이 있다면 멋지게 알려드릴게요!”


“아기요????!!!”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헌터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며 초롱거린다.


“사장님 아기 가지셨어요!!!???”


“네, 맞아요! 여기 배 보여드릴까요? 배가 많이 나왔죠? 벌써 6개월 차예요! 히히. 그래서 가게를 그만둬요. 아무래도 몸에 점점 무리가 오는 거 같아서….”


동그랗게 올라온 배를 서스름없이 내밀어 즐거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사장님~~!!!!!!!!!~!~!!!! 너무 축하해요!!!! 꺄악!!! 웬일이야!!!!”


헌터가 너무 놀래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돌고래 소리를 꺄악꺄악 지르며 축하의 인사를 끝없이 건네주었는데, 갑자기 눈망울이 촉촉하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어..? 어..?”

“사장님, 어떡해요. 아 어떡해.”

갑자기 헌터가 고개를 황급히 치켜들고 올려 두 손으로 부채질을 시작한다.

“나 눈물 날 거 같아요.”





애기를 가졌다는 소식과, 불룩해진 내 배를 보고는 헌터의 눈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이 차오른다.

이상스럽게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가다, 나까지도 뭉클해지는 느낌.

이렇게 순수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얼마나 있을까!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와 반짝이는 눈망울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이기에 내가 헌터를 떠올릴 때마다 식상하리만큼 ‘사랑스러운’ 헌터. 라고 자꾸만 말하게 되는지 모른다. 정말 이리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것에 대해 꼭 자신의 일인 듯 너무도 감격스러워하던 헌터의 얼굴과, 눈물이 생생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각자가 서로를 찍은 것이 아니라, 함께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한 프레임 안에 두 얼굴을 함께 했다.


그리고 나는 헌터 덕분에,

조금 우울했을지도 몰랐을 혹은 감성에 젖어버렸을지도 몰랐을 영업의 마지막날 오전부터 빛나는 기분을 가졌다. 그녀 덕에 이 날의 가게도 환하게 빛났고, 나의 마지막 영업날의 시작도 반짝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몽상가는 아주 따사로운 사랑과 추억을 건네받았다. 마지막날까지 동화같은 공간을, 그녀가 만들어준 것이다.






헌터, 고마워요!

나의 마지막을 응원해 주고,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해 주고, 새로운 내 식구, 귀여운 생명까지 제 일처럼 감격스럽게 맞이해 주고 축복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조금 우울했을지도 몰랐을 영업의 마지막날, 오전부터 가게가 환하게 빛났어요.

내 마음도 빛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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