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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Dec 04. 2023

프랑스에서 온 10년 차 비건생활 부부, 그 멋진 인연

“프랑스부부” 소중한 사람, 셀린언니.


“셀린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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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언니를 처음 알게 된 날은 22년 9월 7일.


대략 세시가 다 되어갈 때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가게에 한 부부분이 들어오셨고 메뉴판을 둘러보다 검은콩두유라떼와 스파클링 음료 한잔을 주문하셨다. 그리고 셀린언니는 그날 정말 빛나는 눈으로 내게 여러 말을 건네주셨는데, 아직도 그날의 팡팡 튀던 대화들과 셀린언니의 에너지들을 잊을 수가 없다.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그날 단번에 느꼈던 거 같다. 셀린언니의 빛.


그날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던 건, 두 분은 비건생활을 하고 계시고 무려 십 년 동안 비건생활을 유지하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프랑스에서 오셨다는 것, 부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비건카페들과 음식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것. 그렇게 몽상가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

‘비건’이라는 주제를 통해 닿게 된 인연이었으니, 역시 셀린언니와의 첫 대화의 주제는 ‘비건’이었다.

그것에 대해 먼저 말을 건네온 건 셀린언니였는데, 그때 셀린언니의 초롱초롱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호기심이 가득 차 빛나는 눈동자, 긍정적이고 밝고 순수한 열정이 넘치던 눈동자, 건강함이 넘실대던 에너지 넘치는 눈빛.


그렇게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본 적이 또 있었을까?


어떻게 하다가 비건 메뉴를 넣게 되었는지 물어왔던 셀린언니의 질문에 조금은 조심스럽고 수줍게 대답하던 나도 기억이 난다. 내가 직접 비건 생활을 하고 있진 않지만 비건에 대한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차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비건생활을 완벽히 스스로 할 자신은 없지만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접하다 보면 조금은 가까이 가질 것도 같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건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식문화가 비건이든 아니든, 모두 다 공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비건인 손님분들도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메뉴에 넣게 되었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던 건, 내가 비건을 생활하고 있지 않으면서 비건메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은 오해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있고 다양성에 대한 ‘공존’ 보다는 ‘오직’ 비건주의자라면, 이 말에 불쾌함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는데, 되려 셀린언니는 내 말을 더 반가워해주었다. 비건이지만 무조건적이고 극단적으로 비건을 찬양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고. 점차점차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또 많은 얘기들을 건네오셨고 그 이야기들이 즐거워서 흥미롭게 듣다 보니 어느새 긴긴 대화들이 오가게 되었고, 두 분은 즐겁고 재미난 정보들과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어다 주셨다.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대화를 끝으로 두 분과 만나고 헤어졌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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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9월 15일.

두 분을 처음 만났던 날 하고 일주일정도가 지났던 이날엔, 이른 오전에 두 분이 카페를 다시 한번 더 찾아주셨고 이 날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많이 분주하고 바빴던 날이었다. 그리고 두 분은 이 날 테라스에 자리해 주셨는데, 햇볕이 많이 강했음에도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앉아계셨다. 어닝이 없어서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것이 마음에 꽤나 많이 걸려서, 괜찮으신지 여쭤봤는데 셀린언니는 그날도 그렇게 밝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나는 유럽에 살았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햇볕을 그대로 쬐고 있는 걸 좋아해요. 오히려 좋아요. 너무 좋아요.” 하며 웃어 보였다. 그것이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어서, 나까지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것이 셀린언니의 매력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리고 두 분은 커피 두 잔과 와사비토푸샐러드, 과카몰리를 주문하셨는데 그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비건이신 두 분이 주문하실 수 있는 비건메뉴가 단 그 둘 뿐이었고 과카몰리는 사이드메뉴라서 배가 찰 메뉴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들었던 내 생각은, 내가 비건인 손님분들에게 배려가 아직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엔 내가 한참 새로 만들어보고 있던 메뉴가 있었는데, 훗날은 잘 정착되어서 꽤나 많이 사랑받고 팔렸던 ‘아보카도타프나드토스트’.


한참 새로운 비건메뉴를 개발하고 있을 때 꽤 여러 번 만들어보고 테스트도 해보았지만 어쩐지 메뉴로 올리기에 겁이 나기도 하고 재료를 다루기에 조금 번거로움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여러 가지로 망설이고 있었던 메뉴였다. (양식이나 빵을 좋아하지 않고 꽤나 직설적이고 솔직한 남편이, 몇 번이나 너무 맛있다며 메뉴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마저도.)


그리고 순간, 두 분이 여기까지 한번 더 찾아와 주셨는데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메뉴엔 없지만 그럼 이 음식이라도 내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보카도가 한가득 들어가는 꽤나 비싼 재료에 정성스런 음식이지만 아무렴 그것이 아깝지 않았으니, 내 마음에 진심이 많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두 분이 비건생활을 오래 하시고 많이 드셨으니, 아마 두 분께서 이 음식을 드시고 입에 맞다면 메뉴에 올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두 분의 반응이 좋지 않다면 메뉴로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두 분께 토스트를 서비스로 한 접시 내어드렸고, 테스트 중인 새로운 비건메뉴인데 드시고 피드백도 솔직하게 달라는 말도 전해드렸다.


그리고 이 날은 카페 안이 한가득 만석인 채로 시끌시끌하고 다정하고 정겨운 대화소리들로 줄곧 공간이 메워져서 온기가 가득한 날이기도 했다. (사실 그 덕에 나는 줄곧 식은땀 가득 흘리며 요리하랴, 서빙하랴, 뛰어다니기 바빴지만! 그것 역시 얼마나 쾌활한 시간인지!) 나는 그날 그날, 아침의 풍경과 걸맞는 무드로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편인데 이 날은 왜인지 샹송이 아침부터 듣고 싶었던 날이었고 그래서 카페 안은 내내 달콤한 프렌치팝이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인사를 먼저 건네오는 반가운 손님분들이 많았고 바쁜 와중에 작은 대화들이 많이 오가기도 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리를 일어나셨던 두 분은 계산을 하시면서 정말 좋은 대화들을 한껏 가져다주셨다. 그때에도 여과 없이 셀린언니의 눈빛은 정말이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타프나드 토스트가 너무 맛있었다는 말, 프랑스에서 내내 듣기도 했고 여전히 한국에 와서도 집에서 즐겨 듣는 샹송들이 흘러나오니, 정말이지 프랑스에 있는 거 같아서 너무너무 행복했다는 말, 타프나드토스트에 아보카도가 올라가면 재료값이 너무 비싸니, 단호박퓌레도 좋을 거 같다는 말, 프랑스 현지에서는 타프나드토스트 위에 호두도 꽤 많이 올려서 먹는다는 말도.


그 행복감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이었어서 아마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다. 그리고 셀린언니의 사랑스러운 눈빛은 잊기 힘들기도 하다.


-


그렇게 두 분을 두 번째 만났던 날 뒤로,

한참 시간이 흘러 한 날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왔다.



네이버플레이스를 통해 연결된 수화기 너머,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긋하게 물어오던 목소리.

“카페몽상가죠? 귀은씨인가요? 아, 저 이전에 들렸던 프랑스부부예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아! 당연히 알죠!”


그렇게 시작된 통화의 내용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나는 매 순간 손님분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흩날리고 싶지 않아서, 피곤해도 꼭 하루를 기억하며 인스타그램에 손님분들을 만난 순간들을 기록해 두곤 했는데 셀린언니의 내용도 만났던 날마다 내가 꼭 남겨두었던 걸,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감동이었다고 말문을 연 셀린언니는, 우연히 내 개인계정까지도 보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게시물들의 글들을 다 읽게 되었다며 날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번 만날까요? 어때요?”라는 물음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나도 잊혀지지 않았던 셀린언니의 눈빛을 다시 보고 싶었던 마음이 일렁였다.


그리고 며칠 뒤, 셀린언니와 나는 몽상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만남을 약속하고 처음으로 바깥에서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설레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날의 스토리.


그렇게 셀린언니와 만나기로 한 날은 9월 22일.

퇴근하고 다섯 시에 해운대바닷가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

전날부터 꽤나 많이 설레이기도하고 걱정되기도 했던 이 날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셀린언니의 삶과 내 삶에 대해.

지나쳐 온 인생들에 대해.

카페에 대해, 만나온 인연들에 대해, 음식에 대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사랑에 대해, 미래에 대해.


셀린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정한 사람이었고, 멋진 사람이었다.

‘멋진’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양할 터인데, 나의 ‘멋진’ 기준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사람마다 겪는 일들과 고통과 행복이 다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다르고, 그 받아들임에 따라 앞날의 인생도 달라진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연관되는 것들.

그것에 있어서 나는 셀린언니가 참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서로가 끌리는 데에는 분명한 접점이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고, 더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아마

셀린언니와 나는 많은 것들을 같이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왜 이렇게 나를 응원해 주실까?

왜 이렇게 나를 애정 있게 바라봐주시는 거지?


움츠러들고, 도망가고, 용기내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열정적인 그 모든 나를 아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마, 셀린언니도 이런 시기들을 거쳐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셀린언니와 나는 너무 다른 경험들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나는 셀린언니 삶의 어느 단계 중간쯤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 생각에 미쳤을 때 뻗쳐든 생각은, 이 이후 내 삶의 생각과 깊이와 전환이 셀린언니와 같다면 참 좋은 인생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넓어지고 비워내고 행복을 찾고 열정으로 충만한 삶을 나이가 들면서도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것이 꽤나 긍정적이었다.

언니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대학시절에, 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이 자주 떠오른다.

“귀은이는 바보 같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선 영리해. 사람을 빠르게 판단하거든. 마음을 열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셀린언니를 처음보고 두 번 보고 세 번째 볼 때까지만 해도 좋으면서 긴장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더 감동을 받기도 했던 이유는_ 초롱초롱하고 우아하면서도 나를 신뢰하는 그 눈빛 사이로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이 있다는 걸 단번에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첫 만남에서 바로 풍겨졌던 느낌은, 셀린언니는 확실한 사람이라는 느낌. 그 ‘확실하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할 거 같다. 느낌이니까.

그치만 말로 풀어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에 대한 판단력이 빠르고 확실한 사람일 거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정직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더 정확하고 확실하고 옳은 행동을 해야겠다고 은연중에 의식했던 것도 같다.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 곧장 들켜버릴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건 아마 나와는 너무도 다르게 셀린언니에게서 풍겨지는 아우라 같은 것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그건 비단 느낌으로만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삶의 태도에서 오는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알았다. 셀린언니의 아우라는 그냥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역시 셀린언니는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던 날.


셀린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단함을 대단함으로 내비치지 않는 사람. 오히려 꽁꽁 숨겨두는 사람. 정말 극과 극을 다 겪어보고 그것들을 지나쳐 와, 진짜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옳게 이해하고 앞날의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사람.


그런 셀린언니를, 몽상가를 통해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고, 통하게 되었고,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피드 속에서 “프랑스 손님”이었던 손님은, 어느새 나에게 “셀린언니”가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셀린언니의 집에 초대되었다. 예쁜 꽃다발을 들고 두근거리며 찾아갔던 셀린언니네. 참 언니스럽다, 생각했던 언니를 닮은 집.
내가 안겨드린 큰 꽃은 다른 화병에, 작은 꽃은 이렇게 귀여운 테이블화병에 꽂아두셨다. 그리고 곳곳에 묻어있는, 섬세하고도 깔끔하고 어쩐지 유머러스함이 엿보이던 언니의 감각_.




이 날, 언니가 날 위해 맛있는 비건식사를 차려주었다. 후식으로 건강하고 예쁜 무화과푸딩까지. 식사를 앞에 두고 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식사시간이 어느덧 길고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중간 하나씩 코스요리처럼 언니가 내어주던 음식들을 즐기다 보니 꼭 나도 프랑스사람이 된 것만 같다. tv에서, 식사시간을 아주 길게 길게 보내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어찌 저 음식들을 두고 저렇게나 길게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지?" 했는데. 맛난 음식을 천천히 하나씩 음미하며, 좋아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나누다 보니 과식할 틈도 없이 적은 양이 자연스레 배를 채우고, 종류별 다양한 음식들을 하나씩 즐길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긴긴 식사시간이, 무엇보다 참으로 아늑하고 따스하다. 티비소리나 어떤 소음도 없이,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상대방과 마주 앉아 음식과 서로에게 집중하며 즐기는 식사시간. 그 얼마나 따스한가!

셀린언니 덕에, 멋진 경험을 하나 더 한 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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