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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sido Jul 24. 2021

우리들의 부서진 계단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Tatsuro Kuchi_behance



아이들은 꿈꿨지

멋진 누구가 되기를

저가 될 수 있는 건 저뿐인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티브이에 등장하는 누구를

빛나는 눈에 담으면서


여름을 이긴 매미소리에도

깡깡 언 빙판에도

절대 지지 않는 웃음을 달고서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어떤 드라마의 가장 행복한 과거처럼

시야는 조금 히뿌옇고

그런 길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달리면

출발!

시작!

같은 말 없이도 멋들어지게

가장 눈부시게

막은 열리고

순식간에 끝이 났지만


그 뒤로 여러 번

시작! 시작!

알리는 목소리가 울리고


출발!

누군가 신호를 줘도


남아있는 숙제를 끝내 해치우지 못한 학생처럼

의기소침한 얼굴로

저도 알아요, 하지


나도 다 알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

그러고 나서는 아주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알아서,

자꾸 더 알게 되어서


그런데 연약하다는 건

맘껏 부서질 수 있다는 말 아닐까

뭉그러지거나 부서져도 여기저기가 상해도

넘어져 뒹굴어도

다치고 아파서 까딱 못하는 하루들이 반복되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강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원래 연약하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건

매일 자라나던 우리의 키 눈금도 아니고

깡깡 얼어 표정이 비치던 빙판도 아니고

동네를 감싸듯 떠있던 무지개도 아니고

모서리가 부서져버린 계단인걸


울기 직전의 어떤 얼굴은

함께 울 수 있으니 다 괜찮다고 말하는 걸


서로의 옆에 앉으면

언제든 울 수 있는 얼굴을 들고

곁으로,

곁으로 모이면,

그럼 드디어 씩씩했던 얼굴도

그렁한 눈물을 드러내는 걸


그제야 우리의 계단은

온통 연약한 마음들로 단단해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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