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꿈꿨지
멋진 누구가 되기를
저가 될 수 있는 건 저뿐인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티브이에 등장하는 누구를
빛나는 눈에 담으면서
여름을 이긴 매미소리에도
깡깡 언 빙판에도
절대 지지 않는 웃음을 달고서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어떤 드라마의 가장 행복한 과거처럼
시야는 조금 히뿌옇고
그런 길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달리면
출발!
시작!
같은 말 없이도 멋들어지게
가장 눈부시게
막은 열리고
순식간에 끝이 났지만
그 뒤로 여러 번
시작! 시작!
알리는 목소리가 울리고
출발!
누군가 신호를 줘도
남아있는 숙제를 끝내 해치우지 못한 학생처럼
의기소침한 얼굴로
저도 알아요, 하지
나도 다 알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
그러고 나서는 아주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알아서,
자꾸 더 알게 되어서
그런데 연약하다는 건
맘껏 부서질 수 있다는 말 아닐까
뭉그러지거나 부서져도 여기저기가 상해도
넘어져 뒹굴어도
다치고 아파서 까딱 못하는 하루들이 반복되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강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원래 연약하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건
매일 자라나던 우리의 키 눈금도 아니고
깡깡 얼어 표정이 비치던 빙판도 아니고
동네를 감싸듯 떠있던 무지개도 아니고
모서리가 부서져버린 계단인걸
울기 직전의 어떤 얼굴은
함께 울 수 있으니 다 괜찮다고 말하는 걸
서로의 옆에 앉으면
언제든 울 수 있는 얼굴을 들고
곁으로,
곁으로 모이면,
그럼 드디어 씩씩했던 얼굴도
그렁한 눈물을 드러내는 걸
그제야 우리의 계단은
온통 연약한 마음들로 단단해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