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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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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Sep 01. 2023

노력과 천재: 우리 집에는 천재가 산다

노력(努力):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
천재(天才):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7세 호제의 늦봄과 여름 사이, 달밤의 줄넘기를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Y도, 말랑 할머니도 함께 했다.


다니던 유치원과 펜싱클럽에서 줄넘기를 한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스스로 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줄넘기에 꽂혔다.


호제는 말랑 할머니에게 유치원 하원할 때 꼭 줄넘기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한두 달간 이어졌다. 하원하고 집 앞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고 집에 갔다. 저녁에는 숙제를 끝내고 어서 줄넘기를 하러 가자고 말했다.






둥근달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밝은 어둠이 드리운 밤. 놀이터에서 나와 호제가 줄넘기 시합을 했다. 어떤 날은 분수대 옆 시계광장에서 줄넘기를 했다.


분수대에서 줄넘기 연습을 하던 날. 드디어 호제가 줄넘기다운 줄넘기를 한다. 처음에는 팔로 줄을 돌리고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조금 지나 팔의 회전과 발의 뜀박질이 엇박자로 한 번 제대로 성공할까 말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었다. 이제는 쿵쿵쿵 투박한 소리를 내며 있는 힘껏 두 발을 올리고, 줄을 휘돌려 줄넘기를 한다.


기뻤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기뻤다! 아! 이제 달밤의 줄넘기는 그만해도 되는구나 싶어서. 하하하. 나는 체지방이 빠지기는커녕, 다리가 띵띵 부어 종아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장하다 호제야!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달밤의 줄넘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며칠 뒤, 유치원 선생님이 체육시간에 호제가 줄넘기를 너무 잘해, 체육선생님은 물론 친구들도 모두 감탄했다는 소식을 전하셨다. 호제는 달밤의 줄넘기 노력은 얘기하지 않았었던 듯하다. 대신 내가 선생님께 알려드렸다. 달밤의 줄넘기를 계속한 결과라고.


호제의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바랐던 때가 있으니까.


문제집 종류까지 기억난다. EBS 수학. 한 친구가 수학문제 하나를 질문했다. 마침 전날 그 문제가 안 풀려 30분은 족히 낑낑 대며 풀었던 문제였다. 마치 처음 보는 문제이지만 단번에 뚝딱 푸는 것처럼 스르륵 풀어댔다. 마치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처럼.




한때 노오력이 미련한 사람들의 것처럼, 전략적이지 않은 사람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력 밖에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적 흐름도 있었다. 그런데 호제를 만나 같이 살아나가다 보니, 노력이야 말고 귀한 가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노력을 기반으로 자라왔다. 능력치의 정도는 다르지만, 유달리 뛰어난 아이들도 분명 있지만, 노력해서 얻어낸 것 천지다.


고개 들기, 뒤집기, 앉아있기, 걷기, 대소변 스스로하기, 숟가락, 젓가락 잡고 혼자 밥 먹기, 연필 잡기, 글씨 쓰기 등 생존을 위한 습관들도 노력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자연스럽게 한 것 같지만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일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집에도 매일 노력하는 이들이 산다. 하루하루 노력의 강도가 다르고, 힘듦에 짜증과 비명, 때로는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한 노래와 춤이 가득 찰 때도 있다. 노력이 당장의 결과로 나오지 않을 때는 무수히 많고.


말랑 할머니는 노력하는 자를, 특히 “매일” 노력하는 자를 천재라 칭했다.


줄넘기를 능숙하게 된 날에도, 밥을 혼자서 잘 먹게 된 날에도, 맞춤법이 틀릴지언정 즐겁게 일기를 쓴 날에도, 뚝 떨어졌던 영어점수가 올랐을 때도 말랑 할머니는 이렇게 외치셨다.


“매일 꾸준히 한 결과야. 호제야, 할머니가 그랬지? 천재는 누구랬지? 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천재야.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우리 호제, 천재야! 천재!”


그렇다. 우리 집에는 천재가 산다.

그렇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댁의 그 누군가도 천재일 거다.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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