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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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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Aug 10. 2023

인생: 하기 싫은 것도 하는 것


인생(人生):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호제의 감기약이 다 떨어져 간다. 토요일 오전, 이비인후과로 출동! 말랑 할머니랑 평일에 가다가 오랜만에 나랑 주말에 갔다.


이비인후과 원장님이 호제를 그렇게 예뻐해 준다고 말랑 할머니가 신이 나서 얘기하곤 했다. 어떻게 해주시길래 말랑 할머니는 그렇게 좋게 보셨을까.




휴가철인 토요일 주말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많았다. 이비인후과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이 시즌은 보통 비수기였는데, 지금 각종 바이러스가 난리를 친다고 한다. 좀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종이접기를 하며 대기했다. 그러다 대뜸 호제가 묻는다.


“엄마, 오늘 코 빼?”

“코랑 목을 보실 거야. 콧물을 뺄지 안 뺄지는 선생님이 상태를 보고 결정할 거야.”


“나 코 괜찮아서 안 빼도 돼.”

“선생님한테 보여드리자. 코맹맹이 소리하는데 괜찮아?”


“응. 나 괜찮은데?!”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다크서클이 주욱 내려와 있다.

“이따 한 번 보자.”


“코 빼기 싫어.”

“그럼 호제가 직접 선생님한테 말씀 드려봐.  불편한 게 있으면 직접 말해보는 거야.”


“엄마가 얘기해 주면 안 돼?”

“응. 호제가 직접 해봐. 할 수 있어.”






한 시간을 기다렸을까.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호제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나도 목이 칼칼한 듯해 같이 진료를 신청했다.


“안녕하세요!” 호제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증상을 설명드리고 선생님은 호제의 목을 먼저 살폈다. 그다음 귀를 살폈다.


오른쪽 귀, 왼쪽 귀를 차례로 살피며 선생님은 호제에게 물었다.


“엄마 말 잘 들어?”

“아니요” (오, 알긴 아는 군)

“할머니 말은 잘 듣는다며. 왜 안 들어?“

”……(침묵)“

”기분에 따라 달라?“

”네! 히히“





이제 드디어 코를 볼 차례다. 선생님은 흡인기를 장착하고 호제 얼굴에 빠르게 다가갔다.


그 순간 호제도 다급하게 힘주어 말한다.


”코 빼기 싫어요.“


이미 흡인기는 콧구멍으로 들어가 콧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시며 나머지 한쪽 콧구멍에 흡인기를 넣어 휘저었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그게 인생이야.

어떻게 하고 싶은 거만 하니.”


호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콧물을 빼낸 뒤, 무언가를 묻힌 솜을 호제 코에 잠시 넣어주셨다. 엄마 진료 끝나고 빼고 가야 한다고 이어 말했다.


아, 통쾌한 순간이었다. 매번 자기가 하기 싫은 숙제가 나오면 하기 싫다고 투정 부릴 때마다 나와 Y가 하던 말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해야 할걸 해야 한다고. 하기 싫은 걸 해내야 하는 순간이 더 많다고. 그럴 때마다 그래도 싫다고 으르렁 거렸다. 그래도 하기 싫다고.


나까지 진료를 받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치료실로 이동해 호흡기 치료를 호제와 나란히 앉아 받았다. 처방전과 마이쮸 3개를 받아 약국으로 향했다. 보통 2개 주시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1개 더 주셨다! 마이쮸 하나로 전달되는 따스한 마음에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렸다. 약국이 바로 앞에 있다. 약국으로 몇 발자국을 옮겼다. 호제가 두 문장을 조용히 되뇐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지.

하기 싫은 것도 하고 살아야지.”


상반되는 두 문장을 읊으며 호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 까.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다짐하는 목소리는 아니었겠지. 그러려나.


약을 사서 나왔다. 나와 호제는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호제야, 엄마, 아빠가 하는 소리를 원장님도 하시지?! 오늘 의사 선생님은 철학자 역할도 해주셨네. 크크크크크크크크.“


호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진료실에서부터 통쾌함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통쾌함을 숨길 수 없었다. 미소를 띠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보다 내가 하기 싫은 걸 해내고 나서 얻는 가치가 컸다. 허들을 하나 넘었을 때의 쾌감. 그 쾌감이 쌓이면 하고 싶은 걸 더욱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거야. 나도 여전히 하기 싫은 것 투성이지만. 해보려고. 이따금 피하기도 하지만. 같이 하자. 호제야.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그게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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