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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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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Sep 08. 2023

비교와 직면: 찌질한 나를 바라볼 용기

• 비교(比較):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하는 일.

• 직면(直面):
어떠한 일이나 사물을 직접 당하거나 접함.


“엄마, 이번 익산 대회에는 몇 명 나와? 예선전에서 떨어지는 사람 있어?”


“제천 경기에서도 떨어지는 사람 있었잖아. 이번에는 제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나온대. 익산에 있는 펜싱클럽에서 좀 나오는 것 같더라.”


“그럼 예선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거네? 으아아아앙 그럼 나 메달 못 따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앙 나 안 갈래 그럼.”


“호제야. 잘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는 거야. 끝까지 해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지난번 경기에서도 1학년들의 반란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이런 마음들 이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거지. 메달 못 딸까 봐 두려워서 나가려는 마음을 접는 건 좀 그래.


이번 익산 대회 등수 목표는 어디까지로 생각하고 있어?“


”8강!“

”그래 호제야. 해보자. 이런 마음들 이겨내는 거 연습해 보자.”






내가 바라는 나가 아닌 못난 나를 직면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호제와 나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이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지인들의 근황이 소셜미디어 피드에 떴다. 한 지인의 채널 구독자는 몇십만이 되었고, 알고리즘은 지인이 등장한 영상을 좌아아아아악 펼쳐줬다. 수많은 칭송과 응원 댓글이 펼쳐졌다. 또 다른 지인의 멋들어짐도 피드에 떴다. 꾸준함에 대한 감탄과 멋짐, 부러움, 질투가 내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왔다.


부정적 생각 고리가 켜졌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그리고 내가 망설이고 피했던 기회들을 떠올리며 비교와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 속상한 일들을 덮고 넘어갔더니 마음이 건드려진 듯하다. 마침 인바디 결과도 나의 편이 아니었다. 참으로도 정직한 몸과 삶이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나아진 게 있으면 성장이고, 위로 올라가는 에너지만 보지 말고 옆으로 뻗어나가는 에너지도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내가 보는 결과물은 다들 시간을 쪼개어 노력하고, 무수히도 많은 넘어짐과 일어남을 반복하고 지속해 온 결과라는 것을. 화려함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을 쌓고 견뎌낸 결과가 빛을 보는 거라는 것을.


그래서 나에게 더 화가 났다. 정성 들여 사는 삶을 꿈꾸었지만 움직임이 더딘 것 같고. 악착 같이 미쳐본 적이 있었던 가 싶고. 지금까지 뭘 이뤘나 돌아보고, 괜히 하찮게 보이는, 나를 향한 어두운 물방울이 뭉게뭉게 모여 먹구름처럼 커졌다.




저녁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 호제가 쩌렁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엄마!!!! 오늘 우리는 펜싱대회를 할 거야. 준비해서 와. 알겠지?!“

”응, 나는 가서 바로 씻고 할게.“

”그래! 바로 하는 거다?!”


부정적인 생각고리를, 마음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즐거웠던 순간을 끌어모으고 있던 중에 호제의 밝은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밤에는 메달을 못 딸까 봐 울며 대회를 안 나가겠다는 아이였다. 자고 일어나니 그저 재미있어서, 좋아서 다시 펜싱을 곁에 두는 신난 아이가 됐다.


신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찌질한 나의 모습을 보기 싫을 수 있지. 뭐. 먹구름을 걷어내고 최선을 다했던 오늘의 나도 있으니까. 두려워했던 나도, 열받은 나도, 이 모든 것이 나니까. 후회가 됐던 순간은 다시 해보면 되고, 아쉬움이 남으면 또 해보면 되지. 즐거운 일, 곁에 두고 하면 되지!


집에 들어가 곧장 씻고, 플라스틱

펜싱 칼로 우리만의 경기를 시작했다.


플렛, 알레!

prêt, allez!

준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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