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기댈 곳 2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예지 Oct 06. 2023

변화와 끈기: 3개월은 해보자

• 변화(變化):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 끈기(끈氣):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


호제가 또 운다. 트니트니를 다닌 지 3개월이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수업시간마다 소나무 선생님을 보고 운다. 트니트니 수업 장소로 들어갈 때면, 내 품에서 내려 강의실 천장부터 시작해 온 사방을 구석구석 훑는다. 이걸 3개월 동안 매주 반복했다. 바뀐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내게도 알려준다. 관찰력이 뛰어나구나 싶으면서도 내심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소나무 선생님은 수강 첫 시간에 보호자들에게 당부했다.

 

“아이가 울 수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계속 나오세요. 수업 중간에 울어도 괜찮아요. 아이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

 

소나무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호제의 울음이 지속될수록 더욱더 가열하게, 점점 더 이른 시간에 문화센터로 향했다. 문화센터 내 복도를 서성이기도 하고, 강의실이 빈 날이면 먼저 들어가 강의실을 탐색했다.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더라도 환경을 익숙하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해질지 싶어 생각해 낸 내 나름의 방책이었다.

 


 

놀랍게도 두 번째 분기 수업이 시작하는 4개월 차 첫날, 호제는 벌떡 일어나 소나무 선생님 앞으로 성큼성큼 가서 수업 시작 율동을 함께 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부모들과 아이들이 커다랗고 둥글게 앉아 있는 가운데에 호제가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선생님의 율동을 따라 하고 있다. 불과 지난주까지는 엉덩이를 내 품에 꼭 넣어두었던 아이였다. 기뻤다. 매우 기뻤다. 감격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었다.

 

3개월 동안 호제의 우는 모습을 지켜봤던 다른 아이의 부모님도 손뼉 치며 함께 기뻐해줬다. 소나무 선생님도 그런 호제를 보며 아주 활짝 웃으며 더 열심히 위로 아래로 뛰고 호제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셨다. 이후 호제는 매시간 수업 시작 율동시간에 흥을 마음껏 풀어냈다. 같이 앞으로 나온 친구와 마주 보며 손을 번쩍이기도 하고,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기도 했다.

 

호제의 변화를 목도한 아주 소중한 순간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어떻게, 왜, 갑자기 호제가 돌변했는지. 일주일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돌변이지만, 호제는 3개월 동안 스르륵스르륵 스며들며, 용기를 뿜어낼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영역, 적응하는 시간, 마음을 여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발달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니까. 이때부터 나는 호제를 더 믿게 됐다. 3개월이라는 시간을 견뎌내면 호제가 해낼 거라고. 중간에 생기는 나의 불안과 답답함은 오롯이 나의 몫인 거고.

 


 

보통 습관 형성으로 66법칙을 얘기하곤 한다. 처음 시작은 1950년대 액스웰 몰츠(Axwell Maltz) 성형외과의사가 성형수술한 환자가 새로운 얼굴이나 팔다리 절단 시 익숙해지는데 “최소” 21일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960년에 Psycho-Cybernetics 오디오북을 발간하여 대히트를 쳤다.


이후 자기 계발 전문가들에게 회자되며, “최소”라는 단어는 사라진채 21일 만에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신화가 생겨났다.


2009년 필리파 랠리(Phillippe Lally)와 연구진은 행동이 습관화가 되기 위해서는 평균 2개월, 정확한 일수로 66일이 소요된다는 것을 찾았다. 사실 이 뒤의 결과가 더 중요하다. 습관화를 위한 시간은 행동, 사람, 상황에 따라 18일에서 254일까지 걸린다는 것이다. 즉, 8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까지도 걸릴 수 있다는 것.


2023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습관 형성의 마법일 수보다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여러 요인에 따라 습관 형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니 66일이 지났는데도 습관화가 안 됐다고,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각자 필요한 시간이 있는 법.

 



호제는 행동이 익숙해지는데 주로 3개월이 걸렸다. 일수로는 100일 정도. 첫 단체 생활을 시작한 유치원 등원을 시작했을 때도, 첫 한 달은 수면 패턴이 뒤바뀔 정도로 힘들어했다. 온 가족이 새벽 3시에 깨어나 놀이를 하기 일쑤였다. 말랑 할머니는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3개월이 지나자 안정기를 찾았다. 두 번째 바꾼 유치원 숙제에 적응할 때도 딱 3개월이 걸렸다. 3개월은 그야말로 온 가족이 고난이었다. 호제의 해야 한다는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시기였다. 이때도 말랑 할머니의 눈 실핏줄이 터졌다. 내 한쪽 눈의 실핏줄도 터졌다.

 

초등학교 1학년 첫 학기 적응에도 약 3개월이 걸렸다. 첫 달의 호제는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몸이 힘드니 짜증도 늘었다. 말랑 할머니에게 “할머니, 초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할머니, 초등학교 안 다녀봤어?”라며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외치기도 했다. 학교를 왜 가야 하며, 화/목/금만 가면 안 되냐고 묻기도 여럿이었다. 어떤 날은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서 점심 먹고 급식실 앞에서 앉아 하늘을 보며 엄마아빠 생각을 했다고 한다. 눈물이 찔끔 날 뻔한 날도 있었다고 얘기도 해줬다.

 

이제는 어엿한 1학년 2학기 생으로 씩씩하게 학교를 간다. 활동지를 학교에 두고, 숙제를 안 해 가서 받침 두 개짜리 받아쓰기 19개 중 2개만 맞더라도 끄떡없다. 받아쓰기 시험은 지나갔으나 매일 조금씩 연습하며 알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괜찮다고 한다.




‘변화’는 ‘끈기’에서 온다. 습관은 변화를 이끌고, 변화를 이끄는 습관화의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할래와 하기 싫어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절하는 시간 속에서 변화는 이뤄진다. 이 과정이 시냅스가 형성으로 설명이 되건, 강인한 마음으로 설명이 되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해보는 거다.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인 끈기를 길러보는 거다. 변화는 끈기의 힘으로 이뤄지니까.


타인의 습관화 시간과 비교해서 좌절하지 말고, 나의 습관화 시간에 들어가 보자!




호제야, 쉽게 되는 건 별로 없더라. 살다 보면 3개월 보다 더 걸리는 일을 무수히 만날 수 있어. (아직 내가 경험하지 않아서 그럴까) 무언가의 마스터라는 건 없더라. 오히려 하면 할수록 모르고 부족한 게 보여할 게 더 많더라고. 무언가를 하다가 부족함과 좌절감을 느낀다는 건, (능력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계속 시도해보고 있다는 걸 테니 일단 꾸준히 해보자. 지나가는 누군가 넌 안 되나봐,라고 얘기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말고, 호제의 시간을 봐봐. 꼬꼬마 호제가 꾸준히 하며 변화했던 경험치들을 떠올리며, 최소 3개월, 100일은 해보자!




참고문헌

Buyalskaya, A., Ho, H., Milkman, K. L., Li, X., Duckworth, A. L., & Camerer, C. (2023). What can machine learning teach us about habit formation? Evidence from exercise and hygien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0(17), e2216115120.


James, C. (n.s.). How long does it actually take to form a new habit? (Backed by science). Retrieved 10/06/23 from https://jamesclear.com/new-habit ​


UCL (2009). How long does it take to form a habit?  Retrieved 10/06/23 from https://www.ucl.ac.uk/news/2009/aug/how-long-does-it-take-form-habit


이전 23화 비교와 직면: 찌질한 나를 바라볼 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