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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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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Oct 09. 2023

에필로그 Epilogue

2022년 나의 생일날, 오후 반차를 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나는 여행과 음식 도슨트가 같이 진행되는 아워플래닛(OURPLANEAT)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나머지 하나는 망설이고 망설였던 브런치에 올릴 첫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수성계곡 벤치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글을 썼다. 스마트폰을 하늘로 향했다가, 땅으로 향했다가를 반복했다. 


글쓰기는 나의 아주아주 오래된 염원이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직업인/직장인을 오고가며, 온전한 ‘나’는 무엇인가라는 혼돈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모든 영역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답답함과 머릿 속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었다.


그 시작을 호제와의 관계에 대한 글로 시작했다. 호제가 튼튼이였던 시절부터 차근차근 글을 남겨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긴 출퇴근 시간에 글을 쓰려고 아이패드도 샀지만, 다른 마감일들에 쫒겨 소재만 가득 모아뒀다. 이제는 이러다가 호제가 곧 열 살이 되겠다 싶어, 의미를 한 가득 부여해 2022년 생일날, 첫 글을 업로드했다. 내년 생일은 스스로 좀 달라져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호제에게 기댈 곳을 주고 싶다며, 글을 썼지만 오히려 내가 힘을 얻었다. 여러 역할을 오고가는 나를, 서툰 모습의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 그 모든 것이 ‘나’라고. 내가 지나왔던 모습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거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로 그려질 것이기에 앞으로가 매우 기다려진다. 뭐, 여전히 좌절과 일어섬은 꾸준히 반복 중이다. 


한 사람과의 만남은 삶에 크건 작건 파장을 일으킨다. 호제와의 만남은 내 삶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나와 닮은 모습에 기쁘기도 하고, 내 모습을 직면해야 해서 괴롭기도 하다. 나와 다른 모습에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제의 수많은 질문, 호제의 경험, 호제와의 살맞댐은 호제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기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호제와의 일화를 적으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호제에게 전하고 싶은 말보다는 제일 먼저 나에게 전하는 말이 될 때가 많기도 하다. 어른이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아이의 성장이 어른의 성장을 돕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어른은 아이의 시절을 지나왔다. 아이의 성장을 거쳐 어른이 된 것이다. 혼자 자고, 밥을 먹고, 말을 하는 일상들이 당연한 것 같지만 나 스스로 애쓰며, 멀건 가깝건 주변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자라왔다. 살아오는 과정에 주변의 배신과 소외, 성취보다는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서 잊었을지도 모른다.


앞선 글들을 읽고,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며, 살아갈 힘을 얻었길 바란다. 별 것 아닌 것에 까르르 웃고, 작은 성취에 어깨 뿜뿜했던 순간들을,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힘들 때 하나씩 꺼내 달콤함을 나에게 선물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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