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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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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an 09. 2023

죽음: 난 지구가 터질 때까지 살 거야!

죽는다는 것


죽음: 죽는 일.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른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살다 보면 잊곤 한다. 죽음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떠나가는 일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서 떠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이 부재를 의미한다는 걸, 60~66개월 무렵 호제가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이순신>이었다.


이순신 동화책을 보고 난 뒤, 매일 같이 이순신 장군으로 변신했다. 블록은 배가 되고, 호제는 이순신, 나는 적의 장군 역할을 맡았다.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군을 물리친 명량대첩 놀이도 빠지지 않았다. 놀이의 마지막은 노량대전이었다. 적군의 총탄을 맞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외치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를 쓰러지며 외쳐야 놀이가 끝났다.

 

어느 날, 호제가 말했다. 그렇게 많은 싸움을 하다가, 왜군이 쏜 총탄 한 방에 죽는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 무렵 도서관에서 빌린 <왕할머니는 100살>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왕할머니는 100살>은 ‘더책’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오디오북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 손자, 친척들의 목소리가 실감 나게 들렸다. 100살 생일잔치를 축하하러 온 친척들의 하하 호호, 시끌벅적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100살을 맞이한 할머니가 혼자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 사진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을 바라봤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편 사진을 방에 고이 둔 장면이 떠오른다.)


말랑 할머니와 이 책을 읽을 때면, 호제는 꼭 말랑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몇 살까지 살 거야?”


몇 살이라는 대답이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 150살까지 살아!”


말랑 할머니는 대답했다. 아주 성심성의껏.


“그래. 호제 여자친구도 사귀고,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주 생기면, 할머니가 호제 손주도 봐줄게.”


2주 뒤, <왕할머니는 100살> 책을 도서관에 반납했다.





이후, 죽음에 관한 질문은 더욱 다양해졌다.


“사람은 다 죽어?”

“죽으면 어디로 가?”

“몇 살까지 살아?”


이 무렵, 호제는 부처를 부처로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어릴 적에는 금빛을 두른 ‘왕’이라 생각했다. 이집트의 투탕카멘을 4-5살 무렵부터 계속 좋아했던 터라 동일하게 왕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주말이면 방방곡곡 부처를 찾아다녔다. 산에 가면 절에 들어가 절을 했다. 부처에게 절을 할 때면, 호제는 정성스레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으며 몸을 숙였다. 그리고 두 손을 뒤집어 하늘로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소원을 빌었다. 할머니 오래 살라고 절하고, 우리 가족 오래 살라고 절하고, 자기도 오래 살고 싶다고 절하고.


“말랑 할머니 150살까지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부처를 선물로 꼭 받고 싶다고 해서, 조계사 앞에 있는 불교용품점에서 석가모니 좌상도 샀다. 중앙박물관의 부처 전시도 보고. 조계사 앞 불교용품점에서 석가모니 좌상을 사기도 했다.


매일 밤마다 집은 절로 변신했다. 은은한 주황 조명아래 석가모니 좌상, 반가사유상이 자리를 지켰고, 투탕카멘도 이따금 놀러 왔다. 불경이 온 집안을 감쌌다. 불경은 호제 취향에 따라 달라졌다. 부처, 스님, 절 방문객. 세 역할을 나눠서 역할극을 몇 개월 정도 지속했다.


(좌)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중) 석가모니 좌상 (우) 투탕카멘 흉상



내심 이러다 동자승이 된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공세리 성당을 방문하고 한시름을 덜었다. 호제는 아산 공세리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앞자리에 앉았다. 앞에 걸린 십자가, 천장을 훑더니  손을  모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레고 60239 사주세요.”




동자승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었으나, 죽음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주는 좋을지 난감했다. 호제 존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 자기에 대한 존재론을 나름 정리해가고 있을 텐데(거창한 듯하지만 말이다.) 두려움보다는 자연의 진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현재에 충실했으면 하는, 내 자식은 좋은 것 다 가졌으면 하는 어미의 마음이 들었다.


마침,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을 때, 표유진 작가의 <엄마의 어휘력>에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발견했다. 아주 반가웠던, 도움이 많이 됐던 문구였다. 열심히 외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얘기해 줬다.


“응. 엄마도 언젠가는 죽겠지.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걱정할 거 없어. 엄마는 아주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래서 형아가 되고, 어른이 돼서 결혼하는 것도 보고, 나중에 아빠가 되는 것도 볼 거야. 아주 먼 나중 일이니까. 지금은 하나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주 아주 아주 나중에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도 걱정할 거 없어.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나고 신나는 추억 많이 만들면 돼. 그렇게 서로 엄청 사랑하며 즐겁게 지내면 엄마가 네 마음속에 진짜 행복하게 남아 있을 걸.”

표유진 (2021). <엄마의 어휘력>. 앵글북스. 152쪽 발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는 예상치 못한 답을 하기도 했다. 아주 멋들어진 얘기였다.


“엄마, 나는 지구가 터질 때까지 살고 싶어!.”

“엄마, 지구는 언제 없어지는 줄 알아?”


“음, 한 몇 십억 년 뒤? 가스가 폭발하려나? 아니다. 한 몇 백억 년 뒤?”


“엄마,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없어지는 거야. 내가 없는 데 어떻게 지구가 있겠어!”






죽음을 이야기할 때면, 외운 문장을 마지막으로 꼭 얘기해 줬다. 몇 십 번을 반복해서 얘기했을 때, 이제는 또 다른 말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다. 아이의 성에 안 차는 표정을 보았다. 엄마랑,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마음속에 행복이 남아 있을 거라는 말했으나 으르렁 거리기도 했으니까.


나 또한 내 성향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호제가 애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는 모습을 내가 못 볼 수도 있고, 나는 먼 미래라 생각하지만 호제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호제의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하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로 백상 TV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조현철 배우가 남긴 수상소감을 접했다.


 "지금 저희 아버지가 투병 중이세요. 아마 진통제를 맞고 시상식을 보고 계실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습니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1980년대 상봉동 진폐증 사건 피해자), 김용균 군(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작업 도중 사망), 변희수 하사(군 복무 중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전역 판정을 받은 뒤 극단적 선택) 그리고 이경택 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모.... 나는 이들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

(백상 TV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


두 번째 문단을 조금 바꿔 호제에게 얘기했다. 듣고 호제가 이해를 바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죽음에 관한 질문은 점점 줄어들다 사라졌다.






2022년 12월 다시금 죽음에 대해 얘기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내가 질문했다.


“죽는다는 건 존재양식의 변화라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


“응. 근데 그게 뭐야?”


“아, 죽으면 세상을 떠나서 사람 모양으로는 없지만 다른 걸로 바뀌는 거야. 나는 죽으면 바람이 되고 싶어. 나중에 바람이 불어 호제 얼굴에 닿으면 아, 엄마구나! 하고 생각해 줘. 호제는 뭐가 되고 싶어?”


“난 바다!!!”


“우와, 바다가 되면 세계 곳곳도 다니고 땅 속도 다니고 재미있겠다!”


“아! 난 귀요미 강아지도 좋은데!” 두 손을 움켜쥐고 두 눈을 말똥말똥 뜨며 귀여운 강아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그러니까 항상 호제 곁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거야. 저기 보이는 꽃으로도 있을 수 있고. 와,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꽃을 꺾지도 못하겠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없어지는 거야.
내가 없는 데 어떻게 지구가 있겠어!


 



* 참고문헌


· 고정석 (2022.5.23.). 조현철, 백상 수상에 “죽음 앞둔 아버지, 무서워하지 마세요... 김용균·변희수·세월호 희생자도 여기에.” <한국일보>. URL: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523500072


· 이규희 저, 신민재 그림 (2013). <왕할머니는 100살>. 책읽는곰.


· 표유진 (2021). <엄마의 어휘력>. 앵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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