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의 패션이야!
방식(方式):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
2021년 12월 21일 화요일 저녁이었다. 11월 초 급하게 옮긴 유치원에서는 쓰는 숙제를 매일 냈다. 이 날도 어김없이 쓰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날 유난히 연필 잡는 호제의 손이 강렬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올바른 연필 잡기가 아니었다. 엄지가 검지 위로 올라간 형태였다.
코끼리 모양의 연필 잡는 실리콘을 연필 잡을 때 끼워주기도 했으나, 불편하다며 다 뺐다. 인스타그램 공구로 독일에서 건너온 연필교정 연필도 사봤다. 효과 봤다는 인증 글이 꽤 많았으나, 호제는 아니었다.
이제 새해가 바뀌면 한 살 먹으니, 올바른 연필잡이를 이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조바심은 독이라는 걸 알지만 (이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 날은 조바심이 이겼다.
나는 다시 코끼리 모양 연필교정 실리콘을 연필에 끼워줬다. 호제는 바로 뺐다.
“그렇다면 실리콘을 빼고,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이 만나게 잡아보자.”라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며 흰 종이에 글씨를 쓰며 보여줬다.
그리고 “자, 이제 써봐 봐.”라고 호제에게 얘기했다.
‘봐’를 꼭 두 번이나 썼어야 했을까. 과함이 물씬 느껴지는 ‘봐봐’이다.
호제는 냉큼 자기 연필을 본인이 익숙한 방식으로 잡고는 단호하게 외쳤다.
“엄마, 이건 나의 패션이야!!”
호제는 패션의 ‘ㅍ’를 꼭 ‘f’ 발음하듯 내뱉었다. 윗니를 아랫입술에 닿게 한 뒤, 복부에 힘을 주고 호흡을 강하게 밀어내며 말했다. 평소와 다르게 화가 나면, 초인의 힘이 어디선가 오는 듯하다. 말과 눈빛이 또렷해진다.
‘응? 뭐라고? 패션? 으하하하하하하 귀엽잖아. 하지만 웃으면 안 된다. 지금 화난 사람 앞에서 웃으면 안 된다. 패션은 또 어디서 배워서,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지금은 웃을 타이밍이 아니야. 올바른 연필 잡기를 하도록 알려줘야지 귀엽다고 웃으며 스르륵 넘어가면 안 돼.’라며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호제는 뒤이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엄마는 누가 시키면 좋겠어?!”
부인할 수 없었다. 올바른 연필 잡기 방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질문이 너무나 강력했다. 더군다나 내가 딱 싫어하는 그 부분을 콕! 집은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간명했다.
“싫지!!!! 당연히 싫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 부분이 딱 내가 스트레스받는 지점이지.”
이 날, 연필잡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호제는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쓰며 숙제를 마쳤다.
다음 날부터 사람들의 연필 잡는 모습만 보였다. 나의 연필 잡는 방법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연필 잡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다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떻게 제대로 된 연필 잡기를 알려줄 수 있을까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때, 타이밍 좋게도, 아이를 존중하며 자식교육을 하는 직장선배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위에 일화를 선배에게 들려줬다.
선배는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내용 2가지를 내게 건넸다.
첫 번째는 글은 빠르게 알아볼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두 번째는 부모가 아이에게 부모의 희망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카드는 인생에서 많아봐야 1-2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카드를 연필잡기에 쓰실 거예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요! 싫어요!”
선배와의 대화 이후로, 연필 잡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대신, 글을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써야 하고, 말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적당한 목소리로, 너무 빠르지 않게 얘기해야 한다는 점을 기회가 될 때면 얘기해주고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나의 부모는 어땠나 생각해보곤 한다. 나의 부모는 부모의 희망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카드를 나에게 아직까지 1개도 못 쓴 것 같다. 온통 내 마음대로였군.
"누가 시키면 좋겠어?"
"이건 나의 패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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