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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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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Feb 06. 2023

규칙: 흰색 실내화를 신어야 하는 이유


규칙(規則): 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또는 제정된 질서.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호제가 선언을 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가족 모두 함께 나가야만 했다. 호제 혼자서 집에 두기에는 아직 연습이 안 됐다. 해야 하는 일을 말해주고, 호제도 즐길거리를 줘야 되겠다 싶어, 학교 가서 신을 실내화를 사러 가자고 꼬셨다. 그래도 안 나가겠다고 하다가, 피카츄 실내화를 사겠다며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예비소집일 때 받은 책자에 적혀있던 준비해야 할 실내화의 조건이 떠올랐다. 해당 페이지를 펼쳤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앞뒤가 막혀서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운동화 모양(흰색 실내화)”




호제에게도 말했다.


“호제야, 이런 신발을 사야 한대.”

“나 슬리퍼 신고 싶은데”

“슬리퍼는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해. 그리고 <앞뒤가 막힌 흰색 실내화>를 준비하래.”


“아이! 근데 왜 꼭 흰색 실내화를 신어야 해?!!

다른 색깔 신으면 안 돼?”


나도 나갈 준비를 하느라 이 방 저 방을 오고 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두둥~!!!!!!!!!!!!!!!!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뭐라고 답할지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두둥!!!!!!!!!!!!!!!!!!) 흰색 실내화여야 한대.”

“아, 왜!?!?!?!??!?!?!?” 소파에 앉아 투덜거리며 왜!!! 를 외친다.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고, 화장실로 이동해 핸드크림을 바르면서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시간을 벌어봤다.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학교는 이데올로기 기관’이라고 배웠을 때의 충격적인 순간.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순간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얘기를 해야 할 테니 이 대답은 넘어가야 했다. 이데올로기 설명부터 난관이니.






옆에 있던 Y가 호제에게 말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면 지켜야 할 게 많다는 류의 얘기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빠 때는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라고 해서 엄청 짧게 깎기도 했어.”


Y도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질문을 빗겨 나간, 라떼는 말이야,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나도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호제야, 왜 그럴까? 왜 흰 실내화를 신어야 할까? 엄마도 잘 모르겠네.

그런데 우선 그 질문 참 좋은 질문이다!!!

왜 흰색 실내화를 신어야 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자.”


Y와 나는 어떤 실내화를 사야 할까, 얘기하다가 학교 앞 문방구에 파는 실내화를 사면 좋지 않을까로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실내화는 사지 않았다.






조만간 다시 실내화를 사러 가야 한다. 이때 뭐라고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직장 선배 태준에게 일화를 전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태준 선배는 역시나 현명하게 짠! 하고 답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요? 위생상 다른 색보다 흰색이 더러워지는 게 잘 보인다. 학교의 한 반 인원은 유치원보다 많다. 그래서 한 선생님이 돌보는 인원수가 적어 세심하게 돌볼 수 있었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다.”


“(브라보!) 역시! 납득이 됐어요. 위생! 좋아요. 이렇게 얘기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이 또 훅 들어올지 모른다.


‘노란색이 더 잘 보이는 거 아니야? 각자 다른 신발을 신으면 내 신발 찾기가 더 쉬운 거 아니야?’ 같은 추가 예상 질문도 떠올려본다.


내심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훅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흰색 실내화를 사러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질문, 들어와, 들어와! 환영한다!




근데 왜 꼭 흰색 실내화를 신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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