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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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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an 12. 2023

방식: 올바른 연필 잡기란

이건 나의 패션이야!


방식(方式):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


2021 12 21 화요일 저녁이었다. 11  급하게 옮긴 유치원에서는 쓰는 숙제를 매일 냈다.  날도 어김없이 쓰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날 유난히 연필 잡는 호제의 손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올바른 연필 잡기가 아니었다. 엄지가 검지 위로 올라간 형태였다.


코끼리 모양의 연필 잡는 실리콘을 연필 잡을 때 끼워주기도 했으나, 불편하다며 다 뺐다. 인스타그램 공구로 독일에서 건너온 연필교정 연필도 사봤다. 효과 봤다는 인증 글이 꽤 많았으나, 호제는 아니었다.


이제 새해가 바뀌면 한 살 먹으니, 올바른 연필잡이를 이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조바심은 독이라는 걸 알지만 (이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이 날은 조바심이 이겼다.






나는 다시 코끼리 모양 연필교정 실리콘을 연필에 끼워줬다. 호제는 바로 뺐다.


그렇다면 실리콘을 빼고,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이 만나게 잡아보자.”라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며  종이에 글씨를 쓰며 보여줬다.


그리고 “, 이제 써봐 .”라고 호제에게 얘기했다.


   번이나 썼어야 했을까. 과함이 물씬 느껴지는 ‘봐봐이다.


출처: Flickr.com @ClaudiaOseki


호제는 냉큼 자기 연필을 본인이 익숙한 방식으로 잡고는 단호하게 외쳤다.


엄마, 이건 나의 패션이야!!”


호제는 패션의 ‘ㅍ’를 꼭 ‘f’ 발음하듯 내뱉었다. 윗니를 아랫입술에 닿게 한 뒤, 복부에 힘을 주고 호흡을 강하게 밀어내며 말했다. 평소와 다르게 화가 나면, 초인의 힘이 어디선가 오는 듯하다. 말과 눈빛이 또렷해진다.


‘응? 뭐라고? 패션? 으하하하하하하 귀엽잖아. 하지만 웃으면 안 된다. 지금 화난 사람 앞에서 웃으면 안 된다. 패션은 또 어디서 배워서,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지금은 웃을 타이밍이 아니야. 올바른 연필 잡기를 하도록 알려줘야지 귀엽다고 웃으며 스르륵 넘어가면 안 돼.’라며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호제는 뒤이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엄마는 누가 시키면 좋겠어?!”


부인할 수 없었다. 올바른 연필 잡기 방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질문이 너무나 강력했다. 더군다나 내가 딱 싫어하는 그 부분을 콕! 집은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은 간명했다.


싫지!!!! 당연히 싫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 부분이 딱 내가 스트레스받는 지점이지.”


이 날, 연필잡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호제는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쓰며 숙제를 마쳤다.






다음 날부터 사람들의 연필 잡는 모습만 보였다. 나의 연필 잡는 방법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연필 잡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다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떻게 제대로 된 연필 잡기를 알려줄 수 있을까 미련이 남아 있었다. 이때, 타이밍 좋게도, 아이를 존중하며 자식교육을 하는 직장선배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위에 일화를 선배에게 들려줬다.


선배는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내용 2가지를 내게 건넸다.


첫 번째는 글은 빠르게 알아볼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두 번째는 부모가 아이에게 부모의 희망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카드는 인생에서 많아봐야 1-2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카드를 연필잡기에 쓰실 거예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요! 싫어요!”


선배와의 대화 이후로, 연필 잡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대신, 글을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써야 하고, 말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적당한 목소리로, 너무 빠르지 않게 얘기해야 한다는 점을 기회가 될 때면 얘기해주고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나의 부모는 어땠나 생각해보곤 한다. 나의 부모는 부모의 희망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카드를 나에게 아직까지 1개도  쓴 것 같다. 온통  마음대로였군.


"누가 시키면 좋겠어?"

"이건 나의 패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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