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기댈 곳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예지 Jan 18. 2023

장래 희망: 똥꼬가 될 거야!


장래 희망(將來希望): 장차 하고자 하는 일이나 직업에 대한 희망. 


식탁에 앉아 나는 저녁을, 호제는 과일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대뜸 호제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니, 엄마에 대한 거! 엄마가 뭐가 되고 싶냐고!

지금 하는 거 말고.”


(건성으로 대답한 걸 딱 알아챘군.)


“난 아티스트! 글 쓰는 작가도 되고 싶고, 그림 그리는 작가도 되고 싶고, 곡 쓰는 작사가도 되고 싶고.”



“그럼, 엄마는 내가 뭘 했으면 좋겠어?”

“호제가 하고 싶은 거.”



“아니,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냐고!”

“아, 기본적으로 호제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 호제는 하나를 관찰하고 파고드는 것도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몰두만 하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머리건, 몸이건, 마음이건 응축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일이면 좋겠어.”


이번에도 말이 길었다. 나의 대답 초반에는 내 눈을 보더니, 중반부터는 귤 까는데 집중했다. 껍질을 까고, 귤을 하나씩 뜯어 입에 넣고 알맹이가 터지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질문은 이미 저 때가 두 번째였다. 세 번째 질문을 할 때는 어떤 대답을 해주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 호제가 맨 처음 하고 싶다, 되고 싶다고 얘기했던 게 무엇이었나 더듬어봤다.


저 사람은 뭐가 될까?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내 자식이라면, 내 손주라면 그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어느 명절날이었다. 나, 동서, 아버님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동서네 첫째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버님이 묻고, 동서는 대답했다. 이제 나의 차례였다.


“호제는 뭐가 되고 싶어 하는가?”

“똥꼬가 되고 싶다고 해요.”


시아버지는 본인이 무엇인가 잘못 들었는가 싶은 눈치였다.


“... 뭐?”

“아, 아버님. 똥꼬! 항문이요.

몇 개월 째 똥꼬가 되고 싶다고 해요.”


정말이었다. 똥, 방귀를 좋아하는 나이라지만, 난 똥꼬! 가 될 거라고를 외쳐댔다. 호제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익숙한 세상과 다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직업은 없어지거나 가치가 바뀔 테고. 그래서 호제가 내가 모르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자식의 첫 꿈이 ‘똥꼬’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반년이 넘도록.


이 사연을 들은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생산적인 걸 좋아하네!”


아,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역시 생각의 전환은 중요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무렵, 호제가 하고 싶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주여행 관광객, 잘 자는 사람, 경찰, BTS, 작곡가, 대통령, 요리사, 선생님, 축구선수, 펜싱선수, 의사, 아티스트, 과학자. 이 세상 모든 직업을 다 얘기할 판이다.






어떤 일을 할지에 관해 아빠와 얘기 나눴던 순간이 떠올랐다. 출장을 온 아빠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재잘거리며 걸어갔다. 산울림소극장이 보이던 순간,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정할 때,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 봐. 첫 번째는 내가 잘하는 일인가, 두 번째는 사회에 올바른 일인가.”


“나는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데. 두 개 중에 한 개는 겹치네.”


학부에서 자연과학 분야와 사회과학 분야를 복수 전공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며 사회과학으로 전향했을 시기였다. 여전히 다양한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두 가지 기준 외에 다른 기준이 더 있었으면,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잠시 상상도 해본다.






그렇다면, 호제에게는 무엇을 얘기해 줄까. 고민 끝에 결론은 아빠와 걸으며 나눴던 대화를 호제에게도 전할 계획이다. (어서 다시 질문해 줘.)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임금이 무엇인지 살짝 가미해줄까 싶다.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했지만, 나도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밥벌이를 얘기해 봤자 본인이 하고 싶은 거 할 거라는 거.


내가 아빠의 기준을 차용하지 않고, 결국 내가 생각했던 기준으로 선택해 나갔듯이 호제도 본인만의 기준으로 하고 싶은 일을 택할 것이다.






그래, 뭘 하든 굳건하게 밀고 나가렴!


누구의 떠밀림도 없이 내가 한 선택에서는 남 탓도 안 되더라. 도망치고 싶어도 결국 나한테 도망치는 거라 견디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더라.


선택이 아니다 싶을 때는 바꿔도 되니까, 자유롭게 택하고 아쉬움은 남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선택한 건 쭉쭉 밀고 나아가길 바란다.


자기가 스스로 택하고, 노력해 본 힘은 자신만이 갖는 무형 자산이 되어 다른 길을 갈 때도 큰 힘이 될 거야.






이전 06화 식사예절: 좌빵우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