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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댈 곳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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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an 20. 2023

식사예절: 좌빵우물



식사예절(食事禮節): 끼니로 음식을 먹을 때 갖추어야 할 예의범절.


우주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 호제와 함께 우주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무 설명 없이 대뜸 기쁨을 듬뿍 담아 우주가 결혼한대!라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을 때, 호제는 깜짝 놀랐다.


“어!? 엄마! 우주가 결혼을 할 수 있어?!”

“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 친구 우주. 엄마 대학 친구 중에 우주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결혼해!”


“아, 그 우주! 유니버스맨이네.”






코로나로 아이와 함께 결혼식장을 거의 못 갔던 터라 오랜만에 호제와 함께 하는 결혼식장 나들이었다. 결혼식 날 아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호제는 노란색, 나는 핑크색 우산을 들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우주와 우주 부모님, 신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교 선배, 동기 가족들과 원형 테이블에 함께 앉았다. 호제가 분유를 먹던 시기에 봤던 삼촌들이었다. 그때도 결혼식장이었다. 우주와 수호가 호제와 놀아주고, 원욱과 아내분께서 호제 분유를 타줬던 기억이 난다. 엄마로서 여전히 서툰 나와 꼬맹이 호제가 단둘이 갔던 결혼식장에서 내밀어준 고마운 손길이었다.


이제는 두 발로 걷고, 자기 의사표현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결혼식에 참석했다. 원욱의 사랑스러운 두 딸도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동갑 여자아이와 여동생이었다. 호제 옆에 원욱이가 앉았다.


이 날 호제에게 모든 삼촌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그중 최고는 원욱이 삼촌이었다.






나는 어김없이 여기저기를 설명하느라 바빴다.


“저기 보이는 건 파이프 오르간이다. 파이프 오르간 아주아주 어릴 때 들어봤는데, 기억나니. 피아노랑 또 다른 소리가 나. 이따 연주를 하려나? 들어보면 좋겠다. 말랑 할머니가 학교 다닐 때는 교실에 오르간이라는 게 있었어. 오르간을 엄청 잘 연주하셨대. 호제야, 여기 그릇이랑 메뉴판 보이지. 나이프랑 숟가락도 있고. 이 앞에 나이프랑 숟가락은 작지? 이건 디저트 먹을 때 쓰는 거야....” 줄줄줄줄.


그러다 어느 쪽 물컵이 내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원욱이의 모노드라마가 시작됐다.


“상무님이랑 함께 식사하는데, 내가 물컵을 헷갈려하니까 상무님이 말씀하셨어.”


원욱이는 목소리 톤을 낮춰서 상무님으로 변신했다. 어깨는 조금 더 꼿꼿이 펴고, 단호하게 내가 알려주겠다는 모양새를 잡았다.


“(굵은 목소리로) 아니! 자네는 사람도 많이 만나는 사람이 아직 이걸 헷갈려 하나! 비즈니스의 기본을 말이야.

자, 기억하라고!

좌! 빵! 우! 물!”


원욱이의 오른쪽에 앉은 본인의 딸에게도, 왼쪽에 앉은 호제에게도 ‘좌! 빵! 우! 물!’을 다시금 외쳤다. 원욱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호제는 나름 티 내지 않으면서 귀 기울이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입꼬리가 씰룩이는 게 보였다. 그러다 마지막 좌빵우물에서는 미소를 보였다.


원욱이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수호가 이어갔다. 형식보다 내용에 신경 쓰라는 류의 내용이었다.


“우리 회사 신입사원 교육에 식사예절이 있었어. 모 호텔 직원분이 와서 가르쳐 주시는데, 기본적인 예절이 있긴 하지만, 어느 쪽이 내 것일까, 어느 것부터 써야 할까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식사의 목적, 중요한 비즈니스를 해치면 안 되니 너무 심각하게 신경 쓰지는 말래.”


호제는 수호의 말도 귀 기울여 듣는 눈치였다.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호제의 관심은 여전히 좌빵우물에 머물러 있었다. 집에 가서 아빠한테도 ‘좌빵우물’ 이야기를 꼭 해주자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 호제는 아빠에게 말했다. 좌빵우물!






우주 결혼식에 다녀오고, 2~3일이 흘렀다. 호제가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빵과 우유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냉동실에 있던 식빵 한 조각을 데우고, 우유를 컵에 따라 작은 쟁반에 담아 호제에게 건넸다. 호제는 식빵 그릇과 우유를 책상에 놓고 나에게 퀴즈를 냈다.


“엄마, 이게 뭘~~~~ 까요? 맞춰봐!”


‘헛, 이번에는 또 뭐지. 뭘까. 난 뭘 말해야 하는 거지. 책상에 노트북이 있고, 식빵이 있고, 컵이 있어. 연필깎이도 있고, 스탠드는 켜져 있고, 연필꽂이가 있군. 난 여기서 뭘 얘길 해야 하지.’


“아, 너무 어렵다. 힌트를 좀 줘.”

“흐흐흐흐, 좌!? 빵이 어디 있지?”

“아!!!!!!!!!!!!!!!!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좌빵우물?!”

“맞아쒀!” (꼭 이렇게 써줘야 한다. 본인이 낸 문제에 대한 뿌듯함과 재미가 느껴지는 발음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호제와 나는 좌빵우물과 함께 했다. 호제가 먼저 외치면, 내가 뒤이어 외치고, 내가 외치면, 호제가 외치는 좌빵우물 놀이를 지속했다.


I say 좌!

You say 빵!

I say 우!

You say 물!






좌빵우물 덕분에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코로나19가 들이닥치지 않았으면, 사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예절이 더욱 많았을 텐데, 자연스러운 사회화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앞으로라도 이런 기회를 늘려보면 좋겠군. 하지만 이 어미가 양껏 제공은 못해줄 텐데 하는 미안함도 함께 든다. 어쨌든 내가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봐야지.


두 번째는 어떤 부분이 이렇게 호제에게 한 번에 딱! 각인되고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원욱이 말의 매력은 뭘까를 고민하다 ‘간명함’과 ‘생생함’이 떠올랐다.


아들에게는 짧게, 단순하게, 한 가지만! 전달하라는 육아서들이 많다. 원욱이의 말은 짧고 간단했다. 한 가지만 전달했다. 게다가 생생함이 있었다. 워낙 에너지가 많은 친구이긴 하지만.


그리고 잊고 있었던 원욱이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원욱이는 연극동아리를 했었다!!!! 거기서 배우도 했었다!!! 아주 잠깐 몇 분의 모노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




좌 빵 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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