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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Aug 16. 2024

10년 걸렸다, 태도 바꾸기

KTX 지연에 초연해지기


태도:
1. 몸의 동작이나 몸을 가누는 모양새.
2.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
3.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에 대해 취하는 입장.


KTX 열차가 안 온다. 오늘 유난히 집에서 일찍 나왔다. 플랫폼에 6:18경에 도착했다. 보통 6:20분에 Y의 차를 타고 역사 앞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려 빠르게 걸어 2분 만에 열차가 들어올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진입한다는 안내 메시지를 듣는다.


지난밤 집중호우로 선로가 침수돼 열차 운행이 아침부터 지연되고 있다고 방송한다. 지연시간은 28분, 38분으로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나의 마음이 평온하다. 그간 열차가 지연했을 때의 나와는 사뭇 달랐다.






정기승차권은 지연 통보를 따로 주지 않기 때문에 지연 상황은 역에나 가야 안다. 그럴 때마다 내 속은 뒤집혔다. 어떤 날은 ktx가 서울에서 언제 출발할지 몰라 무궁화를 타고 집으로 와야 했다. 정시퇴근을 했음에도 집까지 오는데 3시간이 걸린 때는 상황 자체가 그저 화가 났다. 그러다 체력이 소진되어 화날 힘마저 없어진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지연한 상황 속에서 이쪽 플랫폼으로 가라 했다가, 저쪽 플랫폼으로 가라 했다가를 반복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폭염으로 철도 선로가 힘들어했고, 어떤 날은 인명 피해로 운행이 지연됐고, 어떤 날은 집중호우로, 어떤 날은 선로 이상으로, 어떤 날은 전기 공급 이상으로 출발이, 도착이 늦어졌다. 어떤 날은 달리다가 멈춰서는 날도 여럿이었다.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한 승객이 창문을 깨고 수동으로 문을 열고 나간 날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내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다. 귀한 시간을 이렇게 써야 낭비해야 하는 걸까부터 시작해 어떤 방법이 집에 가는 가장 최적의 방법일까를 요리조리 생각했다.






그런데! ktx를 타고 출퇴근 한지, 10년째가 되는 여름날 아침. 38분 지연에도 내 마음은 차분했다. 45분 동안 꼼짝 않고 줄을 서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는 나에게 놀랐다. 그리고 사람의 태도는 변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됐다.


‘와, 나 태도가 변했다!! 변했어!!!

와, 대견하다, 권예지. 와, 이건 기록해야지.‘


이 시간 동안 다른 거 하면 되지라고 하며, 스마트폰으로 토막글을 썼다. 열차 지연으로 마음이 부글거릴 때면, 서서 때로는 앉아서 토막글을 적었다. 브런치 글 중 뭔가 애잔함이 더 느껴지고, 사람들의 공감이나 언급이 많았던 부분은 거의 대부분 부글거리는 마음이 승화해 나온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연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지연시간 38분이 41분이 되는 순간, 감정이 꿈틀거렸다. 스멀스멀 욱함이 올라왔다. 무릎은 어째 더 아픈 것 같다. 지연 58분이 되어서야 기차가 들어왔다. ‘와, 이 시간에 운동을 했으면 득근이라도 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태도가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던 거지.

추억 한 스푼 또 들어갔네.’라고 생각하다가, 다시금 빨끈했다.


‘아니, 이 태도를 바꾸는데 10년이나 걸릴 일인가?!’


그러다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이라도 조금 바뀐 게 얼마나 다행이야.

노력하고 결실을 맺은 나, 대견하다.

그래, 사람의 태도는 바뀔 수 있다. 바뀔 수 있어!

그래, 나도 럭키비키 사고, 가질 수 있어!

그래, 젊을 때는 뾰족뾰족 가시 잎이었다가, 늙을 때는 둥글둥글 둥근 잎으로 바뀌는 호랑가시나무처럼 나도 변할 수 있어!’


바뀐 태도가 ‘유지’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호랑가시나무 잎 어릴 때(좌), 나이 먹었을 때(우) /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4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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