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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pr 11. 2024

취미가 같다고 친해지는 거 아닙니다.

팀장님 책 좋아하세요?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친근감을 느낀다. 특히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보면 이런 친밀감은 더욱 강해진다. 게다가 그 취미가 희귀한 경우에는 말해 뭐 하랴.      


나도 그렇다. 내 취미는 독서다. 책 사는데 한 달에 십만 원 이상씩 쓰고 있고 회사의 취미를 적는 란에도 독서라고 적혀 있다. 참고로 특기는 글쓰기다.


본격적으로 독서한 지는 오 년 정도 됐다. 이십 대 초반까지는 일 년에 스무 권가량 보다가 오 년 전부터 일 년에 평균 100권가량 보고 있다. 이 정도면 취미 이상인 것 같다.

    

미디어에선 책이 좋다고 그렇게 소리쳐대는데 정작 독서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도 대부분 책을 읽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책을 보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방송에서 나오는 저런 혜자스러운 식당은 우리 집 근처에는 없다는데 독서인도 그렇다. 운 좋게도 우리 집에 한 명 있다. 우리 와이프가 책 좋아한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 아니 들고 있는 사람만 봐도 눈이 간다. 길이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가거나 읽는 사람만 봐도 호감도가 급증한다. 책에 있어서는 난 금사빠다.


근처를 서성이며 책 제목을 보고 아는 책이면 속으로 흐뭇하게 웃는다. "그 책 재밌지 않아요? 특히 캐릭터나 구성이 특이하지 않아요?"라며 주접부리고 싶지만 경찰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싶지 않아 간신히 참는다.

  

대신 책을 꺼내서 같이 읽는다. 이렇게 같이 지하철에서 독서를 하면 화살이 핏발 치는 전쟁터에서 방패로 전우와 등을 지고 싸우는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책 좋아하는 내가 파트를 옮겼는데 새로운 팀장님이 책을 읽으신단다. 유레카! 거기다 좋아하는 분야가 철학이란다. 이거 운명인가? 안 그래도 철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철학은 내게 이상형과 같았다. 너무나 바라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만약 다시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철학과를 선택했을 거다. 이런 점들을 다 떠나서라도 상사와 책으로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면 나쁠 게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자리에서 취미가 독서임을 강하게 어필했다. 이때는 몰랐다. 내가 성급했다는 것을. 이런 나에게 팀장님은 내게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으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웃으면서 "있어 보이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이동진 작가의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에서 허영으로 책을 읽어도 좋다는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통해 삶이 변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단 책을 보는 것만이 아닌 실천한다는 전제하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회피형이었던 내가 실제 책을 통해 변화했기 때문에 한 말이기도 했다. 이런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장난스럽게 대답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 후로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팀장과 핀트가 안 맞는 걸 느꼈다.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그리곤 내가 순진한 착각을 하고 있음을 이때 깨달았다. 취미가 같다고 나랑 맞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은 이 사실을 몰랐다. 왜냐하면 독서하는 사람은 극히 적으므로 내가 이런 경험을 할 기회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가끔 나누던 사담에서 “철이 없다”,“가벼워 보인다”등 팀장님이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찔렀다. 물론 농담으로 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말고는 안 하는 걸로 봐서 농담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책 얘기를 할 때면 왠지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 "음 너 책 읽는다고 얼마나 읽는지 한 번 보여줘 봐"이런 느낌이었다. 쇼잉 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평가받는 느낌이 들고 내가 말할 때마다 반론을 제시하니 말하기가 싫어졌다.


모든 이야기가 핀잔처럼 느껴지자 몸이 긴장되고 말이 안 나왔다. 이런 영향은 실제 일해서도 나타났다. 팀장님에게 보고할 때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버버 댔다. 나조차도 이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까지 오니 섣불리 내 취향을 드러내고 속마음을 드러낸 게 후회됐다. 이래서 다들 조직생활에 말을 많이 하면 손해라고 하는 건가 싶다. 


처음에 속내를 밝히지 않고 과묵하게 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 얘기가 나오는데 입 다물고 가만히 있지는 못했을 거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땐 주체가 안 된다.  


그럼에도 하나는 배웠다. 같은 취미를 가졌다고 맞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쓰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겪으니 또 색다르다. 


Image by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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