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균 작가 신작인 <마음 지구력>을 읽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그는 전작인 <자존감 수업>으로도 유명했다. 사실 이런 심리 관련 책들은 내 일상이 힘들거나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주로 읽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크게 힘든 일은 없어서 그런지 이런 책에 영 손에 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전작의 유명세와(읽어보진 않았지만) 유튜브에서 나온 저자 인터뷰가 인상 깊어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내용이 어렵진 않다. 글도 술술 읽히고 유익하다. 거의 다섯 장에 한 번씩은 형광펜으로 줄을 치고 페이지를 접었다. 읽는 시간보다 이것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내 기대보다 만족스러운 독서 중이다. 유익함과 재미 두 마리를 토끼를 다 잡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하다.
이렇게 형광펜을 강하게 친 것 중 하나는 단계적으로 사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 이론이 나온다. 우리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봤음직한 내용이다. 즉, 죽음이나 이별 같은 부정적인 일을 겪을 때 우리는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다섯 단계를 거친다는 거다.
책에서 여기까지 소개했다면 이렇게 글까지 적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더 나아가 힘든 일을 겪을 때 본인이 지금 어떤 단계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힘든 시기를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힘들 때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때다. 나만해도 취준 할 때 힘들었던 점은 취직이 언제 될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만약 군대에서 언제 제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 혹은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얼마나 힘들까? 아마 인간 사회는 유지될 수 없었을 거다. 다행히 이런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래서 우리는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이나 안 좋은 일등 본인에게 힘든 시련도 마찬가지다. 이런 힘든 시련들도 본인이 어떤 단계이고 어떤 단계를 거쳐서 끝나는지 알 수 있다면 이런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에서 실수를 해서 그런가 이 내용이 더욱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연차를 전산으로 올리는데 실수로 내 이름이 아닌 팀장 이름을 넣어 연차를 올렸었다. 심지어 이 날은 팀장이 처음으로 부임한 날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문서가 결제까지 완료됐고 나는 이를 수정하기 위해 퇴근해서도 진땀 흘리며 수습했다. 다행히 잘 처리가 됐지만,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 보면 이 다섯 단계를 거쳤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5단계로 표현해 보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부정 – 내가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지? 지금까지 이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잖아. 어제 야간에 잠을 조금밖에 못 자서 그런가. 결재 올릴 때는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분노 – 이게 다 빠른 인사 발령 때문이야. 이렇게 인사를 갑작스럽게 하는 법이 어딨어. 내가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협상 – 그래도 이 일이 큰일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조기에 전화해서 수습하기도 했고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우울 – 이 일로 팀장님이 날 낙인찍진 않겠지. 하필이면 팀장님 처음 오시는 날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수용 – 실수한 건 어쩔 수 없다. 전화해서 실수했다고 말하고 조치를 취하자. 그리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자. 시간이 지나고 나면 큰일 아니다. 다음에는 올리고 나서도 한 번 더 확인하자.
막상 이렇게 적어 보니 신기하다. 완전히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나도 이런 단계를 거쳤다니.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단계별로 내 감정을 적어보니 감정이 한결 나아진다. 좀 더 객관적으로 일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 심리학을 배우는 건가 싶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게 되니 현재 힘든 상황을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단계별로 생각하는 마인드는 이런 일뿐 아니라 인생에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직업적 커리어라고 치면 현재 내 단계가 어디고 어떤 단계를 거쳐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확신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현재 내가 어떤 감정이 드는지 파악하고 다섯 단계 중 어디에 있는 확인 한다. 그리고 어떤 단계를 거쳐서 좋아질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내가 위에 한 것처럼 써보면 더욱더 좋다. 이렇게만 해도 힘든 시기를 좀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나 직위들은 작가에 의하여 모두 임의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림 출처 : Ai Copilot